재회
디스맨 결말 이후
시간이 흘렀다. 아마 며칠, 아니 몇주가, 혹은 몇달이, 아마 수년이 지났을 것이다.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예민해도 나를 조금 꺼리는게 다일 뿐, 헤메이던 꿈속에서 굳이 숨어있는 엑스트라에게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고, 여느 괴담이 그렇듯 아무리 오싹한 미스테리라도 회자되고 나이를 먹으면 점차 가벼워지기 마련이었다. 나의 밤산책 루틴은 금새 아주 순조롭게 돌아와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무심했다고 하기에는... 고백하자면, 누구라도 방심할만 하지 않았는지 변명해본다.
이상하게 낯이 익은 창문은 밖에서 봤을 때 어둡게 꺼져있었으니 당연히 꿈속의 꿈을 꾸고 있는거려니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광 센서등이 켜지면서 식탁에서 현관을 보고 앉아있던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도 놀랐는지 눈이 토끼눈이 되었다. 그의 처음보는, 생동감 있는 표정에 더 놀라 숨을 삼켰다.
"아...ㄴ녕? 이거 실례."
"저기."
멋쩍게 바로 돌아 나가려는 나를 그가 불러세웠다.
"밥 먹고 갈래?"
그때 주고 간... 레모네이드. 보답으로.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훌륭한 식사는 아니었다. 애초에 먹는 꿈이 그렇게 내 취향은 아니기도 했고. 보통 뭔가 성에 안차는 일이 있거나 슬슬 감기 기운이 올라와서 된통 아프기 전에 많이 꾸는 꿈이 먹는 꿈이라서 그런지 대부분 먹는 꿈은 뒤끝이 더부룩했다. 그래도 호기심을 못 이기고 초대를 수락했는데 대접을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메뉴는 소박한 오므라이스와 조금 눅눅한 해시브라운이었다. 둘 다 좀 많이 싱거웠지만 생각보다 부드럽고 따끈한게 나쁘지 않았다.
서로가 말 없이 그릇을 다 비워갈 때 쯤 집 내부를 빙 둘러보았다. 전등을 환하게 밝힌 집은 원룸 크기에 모든 가구와 벽지가 색이 옅었다. 공들여 꾸며놓은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 깔끔하니 생활감이 느껴졌다.
"크기를 엄청 줄였네?"
"한참 못 들어왔더니 줄어있더라고."
그가 덤덤이 대답했다. 막상 나는 말해놓고 아차 싶었는데. 그날의 일이 거짓말인 것처럼 평범한 그가 신기했다.
잠시 그를 관찰했다. 여전히 그렇게 건강해 보이는 혈색은 아니었지만 창백한 남자라는 호칭은 살짝 안 어울리게 된 것 같았다. 그때보다 조금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꿈의 채도가 낮아서 확실하진 않지만 분명 조금 밝아져있었다. 옷도 달라붙은 검은 옷이 아니라 흰티에 운동복 바지라 그렇게까지 깡말라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 꿈을 돌아다녔어?"
그가 접시에서 눈을 떼지 않고 표정을 숨긴채 물었다. 누군가 던지는 질문이 정말 오랜만이라 묘하게 기분이 들떴다.
"그렇게까지 오래된건 아니고. 그냥 심심해서 걷다보니."
"남의 꿈 보는게 재밌어? 그냥 궁금해서."
"재밌어. 늘 다양하고."
"사실 다들 비슷비슷하지 않아?"
"그렇지만도 않아. 소재는 잘 겹치기도 하지만 의외로 다들 보는게 달라. 바라는게 같아도 전혀 다른 꿈을 꾸기도 하고..."
그는 처음 마주친 이후 한번도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대화는 막힘없고 잔잔히 흘렀다. 대부분 그가 물었고 내가 답했다. 우린 오늘 처음봐서 아무런 공통분모가 없는 어색한 사람들 같기도 했고 아무리 오랜만에 봐도 대수로울 것 없는 십년지기 같기도 했다.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슬슬 일어날 시간인 것 같았다. 접시는 치워졌고 나는 말 없이 일어나 간단히 작별을 고했다. 가만히 아무 말이 없던 그는 내가 현관 문고리를 잡는 순간 내 팔을 붙잡았다.
"가끔, 와줄래?"
그가 두번째로 내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조바심이 난 얼굴을 보고 나서야 그가 그리움에 매몰되면 도시를 통째로 잠에 가둘 수 있는 괴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 당혹스러움을 읽었는지 그가 괴로운 표정을 웃음으로 덮으려 애쓰며 손을 놓았다.
나는 그를 찾아오는게 그에게 좋은 일인지 잠깐 고민하다, 그보단 이 꿈이 아깝다고 결론지었다.
"가끔 올게. 아주 가끔.
네가 까먹을락 말락 할때쯤,
기다리기 지루하다 느껴질 정도로 아주 가끔만."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괴로움이 걷히고 아주 엷고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문을 나설때, 들어올때는 듣지 못한 종소리가 짤랑였다.
원우가 A와 거의 같은 존재인건 맞지만 동일인물이라기보다는 A가 정한에게서 잊혀질 때 비로소 자아를 가지게 된게 원우라는 해석입니다...만
떠오른 썰을 글에 녹이는거 너무 어렵네요
이런 컨셉 자주해주면 좋겠다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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