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플

세븐틴 / 민원

키워드 : 민규를 귀여워하는 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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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가 민규를 처음 만난 건 석 달 전의 일이었다. 묵직한 가방을 들고 캠퍼스 언덕을 내려가는데 키 큰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어찌나 걸음이 급하던지 저러다가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가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실례, 실례합니다!”

눈매가 날카롭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락 말락 하는 순간, 남자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헤헤 웃었다. 강아지? 원우는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 상대에게 실례라는 생각에 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는 원우가 경계한다고 생각했는지 한 걸음 훅 물러나며 공손하게, 그러나 더없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민규인데요. 마음에 들어서…… 아, 그러니까! 제가 언덕 위에서부터 그쪽 분을 봤는데요. 처음 보자마자 너무 근사하셔서요. 혹시 제 번호 알려드려도 괜찮을까요?”

“음, 저희 처음 봤는데요?”

“네! 저도 처음 봐요! 그래도 같이 과제도 하고, 운동도 하고, 친해지면 좋을 것 같아서요. 밥도 같이 먹을까요? 저 맛집 진짜 많이 아는데. 아, 근데 친구보다는 음, 그러니까…… 작업 거는 거예요.”

원우는 딱 한 마디만 했는데도 민규는 무안한 기색 없이 술술 말을 뱉었다. 원우는 이런 사람을 두고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하는 거구나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나중에 민규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너무 긴장해서 손이 다 저릴 정도였다고, 친구들이 자기 혼자 매운 거라도 집어먹은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얼굴이 새빨갰다고 했다. 원우가 그걸 눈치채지 못한 건 아마 그도 민규에게 첫눈에 반한 까닭이겠지. 그만큼이나 처음 마주한 민규는 찬란한 봄처럼 예뻤다. 그러니 평소라면 단칼에 거절했을 번호를 받고, 고민 끝에 연락까지 넣었던 거였다.

그 이후에 만난 민규는 정말 좋은 애였다. 가끔 그 왕성한 활동량에 아찔해질 때가 있긴 했지만, 원우는 자기 주변을 쉼 없이 맴도는 민규가 마냥 귀여웠다. 졸졸 쫓아다니며 밥 좀 챙겨 먹어라, 늦게까지 게임하지 말고 잠 좀 자라, 옷 좀 잘 챙겨입어라, 잔소리를 해댈 때도 이상하게 듣기 싫지 않았다. 그렇다고 민규 말을 엄청 잘 듣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한 달 반 정도를 친구와 썸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늦은 밤 놀이터 그네에 앉아 키스하며 연인으로 발전했다. 키스하고 나서 발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민규를 보고, ‘아, 내 남자친구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거 아니야?’ 하고 팔불출 같은 생각이나 했다.

그러니까,

“형, 이쪽이야.”

이런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데이트 날, 민규는 정장까지는 아니어도 꽤 반듯한 무채색 옷을 입고 나타났다. 심지어 처음 보는 차를 타고 원우의 집 앞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평소처럼 점퍼 하나를 걸치고 나온 원우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는데, 민규는 거기에 더해 원우를 위해 조수석 문까지 열어주었다.

“내가 열어도 되는데.”

“정식 데이트잖아.”

아무리 정식 데이트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나? 의문을 품으면서도 차에 올라타기는 했다.

“운전할 줄 알아?”

“응. 아빠한테 배웠거든. 아빠가 나 가르쳐주면서 한 번도 화 안 낸 거 알아? 내가 이런 건 또 타고났잖아. 오늘 형도…….”

민규는 신이 나서 얘기하다가 갑자기 말을 뚝 멈추더니 한동안 조용했다. 원우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민규는 원우 쪽으로 씩 웃으며 답했다.

“……아무튼 편하게 데려다줄게.”

민규는 블루투스로 클래식한 음악을 틀고 부드럽게 운전했다. 호언장담한 대로 민규는 운전을 꽤 잘했다. 아마 대학생 중에 이만큼 매끄럽게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게 분명했다.

“민규야, 너 운전 진짜 잘한다.”

“음, 고마워. 이 정도로 뭘.”

덤덤한 답에 원우는 또 한 번 의아해졌다. 정말로 이상한 건 민규가 조금도 수다 떨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따금 목이 마르냐던가, 춥지는 않냐던가 하는 식으로 원우의 상태를 체크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조용했다. 입을 다물고 있으니 민규를 처음 봤던 1초의 순간처럼 날카로운 인상이 도드라졌다. 이 모습도 잘생기고 좋아하긴 하지만 어쩐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민규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래서 원우는 민규가 가장 좋아하고, 또 재미있어할 만한 화제를 꺼냈다.

“민규야, 오늘 가는 식당은 뭘 잘해?”

“헉! 웬일로 그런 걸 궁금해해? 거긴 다 맛있어. 사실 유명하기는 다른 메뉴가 더 유명한데 나는 그곳 양파 수프가 진짜 진짜 별미라고 생각하거든? 형도 그거 한 번 꼭 먹어봐야 해. 그게 무슨 맛이냐면…….”

역시. 민규가 좋아하는 화제를 잘 골랐다는 뿌듯함과 민규의 재잘거림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반가움에 원우의 얼굴 가득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번에도 민규는 말을 하다 말고 뚝 멈췄다.

“……아무튼 쉐프님께 추천받아보자.”

이쯤 되니 원우는 정말 알 수가 없어졌다. 화가 났나 생각하기에는 둘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없었다. 만약 있다해도 민규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회피하기만 할 애가 아니었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나? 하지만 양파 수프 얘기를 할 때 분명 ‘진실의 미간’이 떴었는데…….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지 못한 채, 차는 레스토랑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지금은 좀 그렇고, 식사하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야지. 원우는 그렇게 결심하며 조수석에서 내렸다.

“우앗!”

그런데 운전석에서 내리던 민규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더니 문을 붙잡고 한참을 낑낑거렸다. 살펴보니 옆 차와의 간격이 생각보다 좁아서 나올 공간이 부족한 것 같았다.

“차를 다시 대야겠는데?”

원우가 걱정스레 말하자 민규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고작 이걸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민규가 “금방 할게!”하고 외치며 다시 차로 쏙 들어갔다. 차를 다시 대고 나온 민규는 어쩐지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남자친구가 기가 죽었는데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드디어 내 남자친구 같네!”

원우는 그렇게 말하며 민규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러자 민규의 입꼬리가 아래로 축 내려갔다. 그뿐이랴. 눈썹이며 어깨, 등까지 뭐 하나 바로 선 것이 없었다. 민규는 울망울망한 얼굴로 물었다.

“난 바보 같은 모습이 어울려?”

그 말에 원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바보 같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어.”

“하지만…… 형이 얼마 전에 그랬잖아. 영화에서 나온 남자 멋있다고. 그 사람은 말도 적고, 옷도 멋지게 입고, 에스코트도 잘하고, 운전도 엄청 잘했잖아? 그 사람은 주차하다가 문짝에 끼이는 일 따위 없겠지…….”

“응?”

그제야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얼마 전, 민규의 자취방에서 함께 영화를 보다가 그런 대화를 한 것 같기도 했다. 민규가 먼저 ‘형은 저런 사람 어때? 멋있어?’라고 물었고, 원우는 별생각 없이 ‘당연히 멋있지.’라고 답했다. 그야 영화 속 주인공은 멋있게 포장해서 내놨으니까 당연히 멋있지 않겠는가.

그 대화를 시작으로 원우는 차츰 오늘 하루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민규는 근사한 레스토랑을 데이트 장소로 잡고 옷이며 차, 음악, 심지어 대화까지 모든 걸 신경 썼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원우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었던 거겠지.

원우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기 시작했다.

“아, 혀엉! 웃지 말고!”

“아하하! 민규야, 너는 진짜…….”

원우는 찔끔 새어 나온 눈물을 닦아내고는 민규의 양 뺨을 감싸 쥐었다. 민규는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원우의 손안에 잡혀주었다. 단단하고 예쁜 턱, 반듯한 이마, 짙은 눈썹. 이 모든 것들이 민규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준다는 걸 잘 안다. 그리고 원우는 그런 점까지 포함해서 민규를 좋아했다. 그러나 원우가 가장 좋아하는 민규는…….

“너 너무 귀엽다, 민규야.”

눈앞에 있는 이 귀여운 민규였다.

원우가 먼저 그 주인공을 멋있다고 한 것도 아니고, 자기 혼자 짐작으로 멋있냐고 물어본 거면서 여태까지 내내 신경을 썼다는 사실이 너무도 귀여웠다. 어떻게든 원우의 마음에 들어보려고 발 동동 구르며 준비했을 걸 상상하니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과묵한 컨셉 하나 유지하지 못해서 말을 막 쏟아내다가 뒤늦게 깨닫고 조용해지는 어설픈 모습은 원우를 영원히 행복하게 만들어줄 기억 상자에 담겼다.

원우는 고개를 기울여 민규의 입술에 쪽, 가볍게 입 맞춰주었다.

“민규야, 난 귀여운 남자친구가 더 좋아.”

“……그래?”

민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기분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자기 뺨을 감싼 원우의 손을 꽉 쥐는 것만 봐도 반 이상 풀린 게 틀림없었다. 이거 봐라. 자기 귀여운 건 또 알아? 연하 남자친구의 자신감에 웃음이 비식비식 샜다.

“응. 그리고 너는 네 일에 충실할 때 충분히 멋있어. 그럴 땐 네가 세상 누구보다 멋져.”

귀엽다고 말할 때는 괜찮았는데, 멋지다고 말하려니까 원우 역시 목덜미가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다행히 원우의 진심은 민규에게 제대로 닿은 듯했다. 오늘 하루 중에 가장 환하게 미소 짓는 얼굴을 보여줬으니까. 그 얼굴을 보니 다시 입 맞추고 싶어져서, 원우는 민규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그러자 이번에는 민규가 원우의 얼굴에 뽀뽀를 잔뜩 퍼부었다. 입술은 물론이고 뺨, 코, 이마까지 쪽쪽 거리니 입술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원우는 달큼한 웃음을 터트리며 민규의 어깨를 짚고 허우적거렸다.

“그만, 그만해! 개도 아니고 정말!”

“응, 정말 좋아해, 원우 형!”

원우의 하나뿐인 남자친구는 누구보다 멋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

거기에 하나 더, 아무래도 인간으로 둔갑한 강아지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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