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sh in Apocalypse 돌아가는 필터 소리가 조용하다. 권순영은 어항 속에서 얌전히 멈춰있는 손톱만한 물고기를 보고있다. 숨을 쉬기는 하는건지 그걸 빤히 쳐다보고만 있느라 뒤에서 제가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자외선이 켜진 창백한 조명과 조악한 자갈, 플라스틱 해조류, 멈춰있는 물고기. 잃어버린줄
And I snuck in through the garden gate Every night that summer just to seal my fate And I scream, for whatever it’s worth “I love you, ain’t that the worst thing you ever heard?” “뭘 한다고
시샘달 열이틀 겨울의 추위가 한 걸음 물러난 지도 꽤 되었다. 봄에 들어선 덕에 서당은 또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 생원들은 농사일을 돕기 위해 사유서를 내고 황룡들을 찾아 다니기 바빴다. 나비들 중에서는 이번에 외출하는 생원이 단 한 명도 없어 삼삼오오 모여 돌아다닐 뿐이었다. 담장 너머 소란을 듣던 명호가 지겹다는 듯 한숨을 쉬며 뒤로 벌러덩
시샘달 열하루 서당에 들어서기 위해 대문 앞에 섰다. 신라의 기풍을 이어받은 경주의 서당은 한양과 제주의 대문보다 수십 배는 더 화려했다. 금으로 감싸진 문고리를 잡고 두드리자 거슬리는 소리 하나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가장 가운데에 서 있던 경주의 생원이 복조리 다섯 개를 품에 안은 채로 다가왔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는 길이 험하진
시샘달 이틀 봄이 시작됐다. 전보다 햇볕이 따스해진 느낌에, 순영이 입춘축을 핑계로 서당을 나섰다. 지훈도 함께였다. 아직 개나리도 안 피는 이른 봄에 나가서 무얼 할 거냐고 주절대면서도 순영을 위해 볼끼 하나를 챙겨 나섰다. "아직 동백이 다 지지도 않았는데 봄이라니." "...그러니까. 설 지나고 와도 됐을 것 같은데." "그래도 제주에는 수선화랑 복
해오름달 열아흐레 삐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청룡 침소의 창문이 열렸다. 밤새 맺어진 이슬이 그새 얼어붙은 모양이었다. 적당히 시원하기만 할 정도로 틈을 내어 열어두고 찬의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헝클이려다가, 시험을 준비하느라 인시가 다 되어 잠들었을 것이 뻔하여 도로 거두었다. 대신 바로 옆에 있는 예비 수문장에게로 방향을 바꾸었
해오름달 이틀 김민규는 행운이 따라다닌다. 원우는 항상 그리 생각했다. 수문장을 입 밖으로 낸 지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운명적으로 온 용왕의 서찰이 이를 증명했다. 열어본 서찰에는, 용궁의 수장을 선출할 시기가 되었으니 적절히 조건에 부합하는 생원을 하나 뽑아 데리고 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한 각 서당에서 데려온 세 생원끼리 대결을 하여 최종
눈이 많이 내렸다. 침소의 디딤돌이 겨우 보일 정도로 내려, 강의는 대부분이 취소되었다. 나비 중 황룡인 사형들은 잠시 단체로 사유서를 내고 영묘산으로 간다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많은 황룡이 자리를 비운다는 공고를 해야 하니 그리 알린 것이고, 서당에 남은 나비들은 이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었다. 홀로 백호에서 남은 한솔은 찬이 지냈던 사월촌에는 눈
마름달 스무하루 첫눈이 내렸다. 그런데도 아직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탓에 눈이 소복하게 쌓이지는 않았다. 청룡 침소는 햇빛이 가장 빠르고 깊게 들어온다. 정한이 창문을 열어둔 채로 결계를 둔 덕에 따스한 햇살만 침소 내로 들어오고, 찬 바람은 빗겨나갔다. 창에는 민규가 야무지게 걸어둔 건시乾枾가 있었다. 겉에 눈이 묻어 반짝였으나 눈에 비치는 것이 작아
입동이 되자마자 날이 이렇게 차다니. 한솔이 메마른 목을 축이며 생각했다. 영조례라 당연히 침소에 저만 있을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순영이 곤히 자고 있었다. 창을 굳게 닫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바람이 차서, 조금이라도 새어 들어오면 순영이 깰 것만 같았다. 일찍이 습의를 끝마친 황룡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러 들어온 것이고, 제비뽑기에서 홀로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