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마루 토우마: 청춘 로맨스

ŹOOĻ 토우토라 (トウ虎)

Tender by 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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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마루 토우마는 둔감했다. 본인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이야기다. 멤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인에게 좋은 일은 상상하지 않는 주제에 뻔뻔히 타인의 약점을 찌르는 호인. 둔감함의 원인은 상상력의 부재다. 무대를 구현하는 아이돌의 입장에서 상상력이 부족한 건 문제가 되지만, 이누마루 토우마는 오직 자기 일에만 수치가 하락하는 것처럼 굴곤 했으니 일에는 문제가 없었다.

일에‘만’ 문제가 없다는 게, 멤버 전원이 그들의 리더를 답답하지만 혼자 두면 안 되는 존재로 여기게 된 이유였다.

그리고 그게, 다른 문제를 부를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누마루 토우마: 청춘 로맨스

짝사랑, 실패했습니다.

W. 복치

 

 

최근의 토라오는 이상했다. 먼저, 토우마는 리더라는 이유로 자주 주변을 살피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토라오와 시선이 마주쳤다. 여기까진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토우마가 주변을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토라오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챈 뒤에는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나? 토라에게 잘못한 일, 잘 모르겠는데. 힐끔 살펴본 토라오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냥 토우마를 보고 있을 뿐이라 그 기행은 금방 감각 저편으로 밀려났다. 화가 난 게 있으면 말해주겠지. ŹOOĻ의 유대는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토라오는 속을 자주 감추지만, 토우마는 그보다 더 많이 토라오를 신뢰했다. 애초에 감추고 싶은 거라면 캐지 않는 게 평범한 관계다.

 

다음으로 토우마가 이상을 느낀 건 미나미와 하루카의 반응이었다. 어떤 시점부터 두 사람은 토우마가 토라오에게 다가가는 걸 말렸다. 조금 분하지만, 토우마가 스스로 알아낸 건 아니었다. 개인 라디오 스케줄을 가던 중에 우츠기로부터, ‘이누마루 씨, 최근 다른 멤버들과 싸우고 있나요? 이전의 일처럼 고민이 있다면 알려주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토우마는 읽던 대본도 두고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고개를 퍼뜩 드니, 리어 미러로 이쪽을 보는 우츠기와 시선이 맞았다.

 

“농담이지?”

“싸웠냐는 질문도, 고민이 있으면 알려달라는 것도 농담이 아닙니다.”

“……하?”

“그 반응을 보면 싸운 건 아니네요. 혹시, NO_MAD에서 연락이 왔나요?”

“안부 인사 말고는 딱히……. 나는 ŹOOĻ의 리더고, 한 가지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했으니까.”

 

우츠기는 토우마의 래빗챗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과, 그리고 ŹOOĻ의 리더 이누마루 토우마를 믿는 마음으로 나뉘어 고뇌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세한 건 후자다. 세심한 매니저라 프라이버시를 존중한다기 보단, 이누마루 토우마가 거짓말을 할 정도로 능숙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믿었다. 우츠기의 내면에서 한 차례 혼란이 지나가는 동안, 토우마는 하루카가 차에 둔 스트레스 볼을 꽉 쥐었다. 머리를 건드리는 건 라디오 녹화에 가는 아이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걸 인지한 행동이었다. 도대체 뭐지? ŹOOĻ에 토우마가 필요하다, 꼭 있어야 한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토우마는 이전 그룹의 일을 안줏거리로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누마루 토우마는 ŹOOĻ다. 멤버들과 같이 끝까지 가기로 했다. 미나미의 음악과 하루카의 반짝임, 토라오의 퍼포먼스라면 몇 번이고 실패하더라도 일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냥, 이 녀석들과 무대에 서는 게 즐거워 죽겠으니까, 포기하는 길따위 고려 대상에 없다. 자연히, 멤버들과 싸울 일도 없는데……. 토우마가 고뇌하는 걸 보던 우츠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심스러웠던 종전과는 다르게 산뜻한 어조였다.

 

“그럼 이누마루 씨가 미도 씨에게 뭔가 잘못한 모양이네요.”

“엉? 결론이 왜 그렇게 나는 거냐고.”

“나츠메 씨랑 이스미 씨가 미도 씨의 편을 들고 있어서요.”

 

또 폭탄이 떨어졌다. 이쯤 되면, 이누마루 토우마도 최근 그룹 내의 분위기를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라이브 무대 전후, 화보 촬영의 대기실, 라비튜브 영상, 인터뷰, 그 외의 모든 사적인 시간……. 자기 행동과 멤버들의 행동을 차근차근 되새긴 뒤, 이누마루 토우마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 여태 몰랐나 싶을 정도로 멤버들의 행동에는 노골적인 구석이 있었다. 하루카가 특히 그랬다. 어쩐지 요즘 게임의 이야기로 말을 걸거나, 디저트 사달라는 부탁을 하거나, 학교까지 데리러 오라고 하거나……. 토우마를 잔뜩 불러서 더 친해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하루카의 부탁은 대체로 토우마가 토라오와 일정이 겹치거나, 대기실에서 대화하던 중에 생겼던 걸 보면 떼어내려던 게 분명했다.

 

“대화해 보는 건 어떤가요? 라디오 녹화가 끝날 즈음이면 미도 씨의 화보 촬영도 끝날 것 같은데.”

“……번거롭지 않겠어? 그냥, 내가 토라한테 연락해서 거기로 가면,”

“두 사람을 픽업하는 건 원래 제 일이고, 번거롭지도 않아요.”

“그럼, 부탁합니다…….”

 

하아아아아아……. 잠깐 늘어진 채 한숨을 뱉은 토우마는, 곧 옆에 내려둔 대본을 다시 손에 들었다. 내용이야 외우고 있고, 몇 번이나 혼자 대답을 시뮬레이션했다. 미나미에게 연락해 곡에 대한 것도 확실하게 들었다. ŹOOĻ의 음악을 다루면서, 밴드 명반을 같이 소개하는 내용의 라디오. 뭘 의식하고 기획한 건지 잘 알겠지만, 이건 특집 프로그램이라 이미 합의가 되었다고 들었다. MEZZO"의 당사자에게 래빗챗을 받았으니 문제는 없겠지. 토우마는 잠시 토라오, 그리고 미나미와 하루카에 대한 걱정을 미뤄두고 일에 집중했다. 방송국에 도착해 라디오 녹음을 하고, 얼떨결에 분위기를 타 신곡까지 부른 건 좋은 징조였다. 담당하는 PD가 다음에는 ŹOOĻ의 라디오를 기대하겠다고 말했으니, 고무적인 성과였다.

 

우츠기가 토라오를 태우고 토우마를 데리러 왔다. 토우마는 토라오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 얼굴에는 당혹이나 불쾌함 따위는 보이지 않아 여전히 모든 게 오리무중이었다. 왜 미나와 하루가 날 토라한테서 떼어두려던 거지?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가까이에서 본 토라오의 얼굴은 최근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토우마를 빤히 바라보면서, 그러니까, 뭔가 생각하는 얼굴……?

 

아, 이거다.

토우마의 머리에 벼락같은 깨달음이 스쳤다.

미도 토라오의 얼굴에서 저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지만, 토우마는 토라오의 눈에 일렁이는 감정이 뭔지 알았다. 이누마루 토우마는 둔감한 편이다. 어디까지나, 자기 일에 한해. 누구나 감탄할 정도로 멋진 얼굴, 생각에 잠긴 깊은 눈동자, 그 안에 일렁이는 풋풋하고 간질거리는 감정. 토라오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모양이었다. 반절의 확신이지만, 그런 이유라면 미나미나 하루카의 행동도 설명할 수 있었다. 미리 눈치챈 거겠지. 아마 토라는 ŹOOĻ에 전념하기 위해 감정을 정리하고 있는 중인 게 분명했다. 토우마 자신도 겪고 있는 일이니 이해할 수 있었다. 멤버들이 자신에게 비밀로 한 건 조금, 아주 조금 서운하지만……. 그게 멤버를 위한 일이라면 괜찮다. 역시, 좋은 녀석들과 그룹을 결성하게 되었구나. 토우마는 토라오가 조금 부러워졌고, 그보다 더 큰 동질감을 느꼈다. 사랑하는 마음을 접는 건 어려운 일이다. 토라의 연애 상담이라도 들어줘야겠다. 그런, 그, 사람의 관계에 대해선 토라가 더 익숙하겠지만……. 원래 고민이란 말하고 나면 조금 홀가분해지는 구석이 있지 않나.

 

“거기 앉아 있어. 커피? 주스? 차나 위스키도 있는데.”

“엄청 많잖아……? 밤이니까 차로 부탁해.”

 

토라오가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동안, 토우마는 얌전히 거실에 앉아 있었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맨션이다. 들어오는 동안 경비원도 있었고, 실내 인테리어도 깔끔했다. 중간중간 ŹOOĻ의 앨범이나 굿즈가 있는 게 토우마의 마음을 간지럽게 했다. ‘할 이야기가 있어, 토라. 너희 집에 가도 돼?’ 비장하게 말하고 따라왔지만, 사실 이누마루 토우마는 내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토라오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거라면…… 이누마루 토우마가 하는 연애 상담은 기만이다. 짝사랑 상대의 연애 상담을 제대로 해 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연애 상담, 들어줄 거지?”

 

망했다. 토우마는 첫사랑은 대부분 짝사랑이고, 첫사랑이 이뤄지는 건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란 이야기를 믿기로 했다. 토라오가 연애 상담이라고 할 정도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겠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토라오의 표정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직전까지 비밀을 들킨 사람처럼 날카롭게 굴던 건 온데간데없이, 우츠기의 차 안에서 토우마가 발견한 얼굴과 같았다. 눈동자 안에서 일렁이는 건 누군지 모를 상대를 향한 마음이다.

 

“내가 그 녀석을 좋아한다고 깨달은 건, 바보 같은 점이었는데…….”

 

바보 같은 점?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그렇게 말해도 되나? 그래도 그 말을 하는 토라오의 얼굴이 여전히 부드러워서, 토우마는 그 표현을 하루카의 투정 같은 걸로 이해했다. 바보 같은 점을 보고 좋아할 정도면 굉장한 거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사소했다. 남을 잘 챙겨준다, 표정에 생각이 다 드러난다, 가끔은 토라오에게만 관심을 주면 좋겠다……. 오늘만 기다렸다는 듯, 줄줄 이어지는 토라오의 말에 토우마는 한참 전에 다 마신 찻잔을 만지작거리다 손을 저었다. 바보 같은 꼴이다.

 

“뭐야, 토우마?”

“저기, 토라. 진짜 미안한데…….”

 

그 순간, 토라오는 조금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미묘한 체념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째서지? 토우마는 토라오의 표정을 조금 살폈다. 본의 아니게 말을 꺼내고 뜸들인 꼴이 되어서, 토라오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 균열을 알아챈 토우마가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

 

“그, 나 말이야. 연애 상담은 못하거든.”

“토우마가 이런 주제랑 거리가 먼 건 알고 있어.”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라?”

“진짜 미안! 토라, 사실…… 지금 하는 짝사랑이 내 인생 최초라…….”

 

미나미와 하루카가 막아줄 때 피했어야 했다. 아니, 그렇지만 그룹의 불화처럼 보이는 걸 그냥 둘 수는 없었겠지. 토우마는 어쨌든 자기가 짝사랑하고 있단 사실을 고백해야 했다. 상대를 말하진 않기로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상대에게 내가 널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무례한 일처럼 느껴졌다. 토라오는 좋은 녀석이고, 토우마는 토라오가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 전력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토우마가 토라오를 좋아하는 마음은 그랬다.

 

“잠깐, 뭐?”

“난 연애라곤 해 본 적이 없다고. 그래서 제대로 된 상담을 해 줄 수가 없어. 미안하다.”

“그거 말고.”

“응?”

“토우마, 좋아하는 사람 있어?”

 

토우마는 입을 다물었다. 이 시점에 그게 문제였냐!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토라오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보면 그 감정을 알아챌 수 있는데, 토라오는 유난히 그게 어려웠다. 평상시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토우마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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