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마루 토우마: 미스터리

ŹOOĻ 토우토라 (トウ虎)

Tender by 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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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자각했을 때, 미도 토라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을 감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알면 놀란 표정을 짓다, 금방 난처한 기색으로 ‘내가 널 도망치게 만든 거냐?’고 묻겠지만 별수 없다.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도,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 녀석에게 거절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의지를 꺾어 체념하는 건 미도 가의 셋째에게 익숙한 일이다. 근래에는 좀처럼 그럴 일이 없었지만, 전과 같은 감각으로 억누르면 어려울 일도 아니었다.

 

그래,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누마루 토우마: 미스터리

W. 복치

사랑을 자각한 계기는 터무니없다. 방송의 무대가 끝나고 백스테이지로 내려오면, 그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사람들을 챙겼다. 데뷔 초처럼 ‘거리감’을 유지하는 전략을 그만둔 게 다행이었다. 사람 엄청 좋아하잖아. 심지어 주변 사람들도 호의적이고.

‘ŹOOĻ의 토우마입니다. 감사합니다.’

‘미야케 씨! 다음에도 ŹOOĻ의 스케줄로 불러주세요.’

‘전에 말한 역할, 사무소에 물어보니 OK 사인을 받아서. 이스미 하루카라고, ŹOOĻ에 대단한 녀석이 있는데…….’

한때의 소란이 거짓말인 양 꼬박꼬박 그룹의 홍보를 했다. 그때 일을 의식해 요란하게 구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섬세하지 않은 걸 알고 있다. 저 녀석은 바보니까. 어디까지나 ŹOOĻ의 리더고. 스태프와 어울리는 중에도 시선은 종종 하루카나 미나미, 그리고 토라오에게 닿았다. 우츠기는 성실한 매니저고 무례한 방송도 아니었으니 걱정할 건 없는데도, 꼭 주인을 지키려는 개처럼 구는 게 싫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도 저런 점을 좋아하는 거겠지. 사람의 기분을 살피는 게 아니라, 좋은 점을 기탄없이 말한다. 멋져, 대단해, 굉장해, 목소리가 좋아, 같이 무대에 설 수 있어서 다행이다……. 토로하건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조금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날도 그 녀석은 평범하게 칭찬했다.

“토라, 오늘 정말 멋지더라. 무심코 감탄했어. 거기서 그만큼 뛸 수 있는 거, 토라 말고 없겠지. 대담하잖아! 난 바닥이 홀로그램일 때는 가끔 울렁거려서……. 그런데, 옆에서 망설임 없이 움직이는 걸 보면 이끌리게 되거든. ‘너도 여기까지 오도록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말야.”

부끄럽지 않은 건가? 그 녀석의 부끄럼은 이상한 방면에서만 발휘되는 게 분명했다. 토라오의 앞에 선 그 녀석은 아직 무대의 고양감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직전까지 시야를 어지럽히던 무대 조명과 팬 라이트만큼 반짝이는 눈으로, 가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멋대로 남을 짐작했다. ……최악의 상대다. 대꾸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더니, 숨을 고르고 있는 거라 생각한 건지 어깨를 두드리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떠난 녀석이 하루카를 데리고 뭔가 먹일 생각으로 대기실로 가는 걸 지켜보다 토라오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평범한 칭찬이었다. 그런 소리라면 몇 번이고 들었다. 가까워진 뒤에 좀 더 후해진 감이 없지 않지만, 전에도 표정에서 ‘대단하다.’ 정도의 단순한 감상은 느껴졌다. 줄줄 말을 뱉은 본인도 대단한 일을 했다는 자각은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문제가 있다면 미도 토라오, 본인이었다. 무책임하게 칭찬하고, 사람을 끌어올리고, 신경 쓰여 죽겠다는 얼굴을 하다가도 한 점 의심 없이 사람을 믿어버리는 거…… 강아지인가? 가슴이 울렁거렸다. ŹOOĻ의 미도 토라오를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무대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거겠지. 그 녀석, 나한테는 간식 권유를 하지 않네. 아니, 침착하자. 물을 마시면 좀 나아질지도 몰라. 심호흡을 어떻게 하더라. 아, 정말…….

‘토라 말고 없겠지.’

집에 돌아가 한참 곱씹은 끝에 결론을 내렸다. 그 말 때문이다. 동료에게 할 수 있는 칭찬에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되는데, 차곡차곡 쌓아둔 마음에 불이 붙었다. 다음 날, 미도 토라오는 대기실에서의 시간 내내 그 녀석을 관찰했다. 그게 질리지 않고, 오히려 날 조금 더 신경 써 달라는 응석을 부리고 싶어지는 걸 보면 이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한 번 더 말해주면 좋겠어. 아니, 다시 날 칭찬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걱정 반, 알겠다는 미묘한 표정 반으로 찾아온 미나미가 주고 간 사탕을 입에서 녹이며 미도 토라오는 기민하게 자신의 상태에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구석에 이름표가 달린 마음을 집어 던졌다.

 

짝사랑.

※주의: 평생 밀봉할 것.※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하루카의 요청으로 산 간식을 그 녀석의 몫만 빼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술이 끓었다. 어차피 토하지 않을 마음, 아예 평생 모르고 살았다면 편리했을 텐데. 인제 와서 진정한 사랑이니,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니, 시선을 오래 마주하면 도망치고 싶어지는 기분 같은 걸 떠들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생각보다 감추기 어려웠다. 단순히 동경하거나 좋아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사랑이 이렇게 숨기기 어려운 일인 줄 몰랐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짝사랑 상대의 눈치가 줄줄 새는 감정보다 심했다. 심하다는 건, 하루카조차 가끔 그 녀석을 보며 혀를 차는 마당에 혼자 무슨 문제인지 짐작도 못 한다는 뜻이다. 미도 토라오가 사랑을 자각한 순간, 결심한 일은 본인의 실수와 달리 상대방의 끔찍한 눈치로 이루어졌다. 어쨌든 토라오는 만족하기로 했다. 마음에 금이 간 것처럼 사랑이 줄줄 새는 건 어쩔 수 없다. ‘토라, 팬들이 요즘 네 표정이 섹시해서 좋대.’ ‘이누마루 씨, 시작 전에 집중하고 싶으니 조용히 해 주세요.’ ‘……어?’ ‘토우마, 사람 괴롭히지 말고 게임 좀 같이해.’ ‘내가 누굴 괴롭힌다는 거야. 근데, 그 게임 어렵던데…….’ 끝내주게 눈치 없는 상대가 열받게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이겠지. 미도 토라오가 느낀 사랑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고, 그는 최근 로맨틱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 호러 영화 따위를 보면서 영혼의 안식을 취했다.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어떻게든 해결했고. 이젠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녀석을 그냥 대놓고 쳐다보며, 미도 토라오는 애써 안도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평범한 멜로 영화는 다 거짓말이었다. 사랑이 길 가다 물벼락을 맞는 일이라는 걸, 왜 사랑을 다룬 소설도 영화도 설명해주지 않은 걸까?

차라리 지구 절반이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게 더 설득력 있는 일 아닌가?

 

“……뭐라고?”

“너, 요즘 고민 있지 않냐고. 볼 때마다 뭔가 생각하는 얼굴이라.”

“그건, 그냥 생각하는 얼굴이었겠지.”

“그것보다는…….”

“하?”

 

우물쭈물, 답잖게 망설이는 얼굴로 말을 고르는 게 보였다. 무슨 바람이 분 건지, 스케줄이 끝나고 토라오의 집에 가도 되냐고 묻는 걸 거절했어야 하는데. 금이 간 마음 사이로 새는 사랑이 뭔지, 미도 토라오는 한 마디의 거절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불공평한 일이다. 그렇게 집에 데리고 와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단 소리에 조금 긴장했다. 차랑 과자를 꺼내는 걸로 마음을 다스릴 시간을 벌었더니 리더와의 고민 상담 시간이 도래했다. 미도 토라오는 ‘널 좋아하는 게 최근 내게 벌어진 제일 심각한 일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호러 영화를 떠올리자. 조심성 없이 나서는 사람이 먼저 죽는 클리셰나, 함정인 게 뻔한 곳으로 발을 들이는 인간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을 잡아먹는 유령……. 좋아, 됐어. 이제부터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다 지난주에 본 호러 영화 탓이다.

 

“그것보다는, 그……. 토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 거야?”

 

미도 토라오는 집에 있는 호러 영화 DVD 전부를 미나미에게 줄지, 아니면 다른 그룹 녀석들에게 줄지 고민했다. 저 녀석의 한 마디로 호러 영화 테라피는 폐기물이 되었다. 다음은 미스터리 영화가 좋겠다. 저 녀석은 미스터리한 존재다. 실내에서 아무런 장치 없이 물벼락을 맞는 일이야 말로 미스터리겠지.

 

미도 토라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을 감춰야겠단 결심을 포기했다. 대신, 이누마루 토우마가 어느 시점에서 눈치채고 사과할지 지켜보기로 했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상대에게 상냥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 않나? 미도 토라오는 무골호인이 아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쯤 되니 심기가 뒤틀렸다. 조금 ‘나쁜 짓’을 해도 합법이겠지. 적어도 ŹOOĻ에 있을 문제는 진작 줄줄 새는 사랑을 눈치챈 미나미와 하루카가 도와주지 않을까. 토우마는 바보고, 사람을 찬 것과 무대는 별개로 생각할 게 분명했다. 이번에도 토라오는 제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토우마의 장르는 멜로도 호러도 아니고 미스터리니까.

 

“핫, 너한테 들킬 줄은 몰랐는데. 토우마, 건방져.”

“어이, 토라!”

“연애 상담, 들어줄 거지?”

 

반박은 안 받아. 내가 그 녀석을 좋아한다고 깨달은 건, 바보 같은 점이었는데……. 토라오는 좋아하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체념하지 못하게 하는 건 이누마루 토우마의 나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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