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교

거짓 진술은 중죄입니다

* 연성 교환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소재는 살인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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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 형...“

쿠죠 텐은 프로 아이돌이었다. 아이돌로서의 프로 의식을 논하자면 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프로페셔널한 사람이었다. 그 말인즉슨 카메라가 돌아갈 만한 곳에서 절대 당황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고, 자신만이 남아있는 대기실로 뛰어 들어오는 쌍둥이 동생의 손에 피칠갑이 되어있더라도 당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텐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깜짝 카메라? 아니다. 리쿠는 분명 '쿠죠 씨'가 아닌 '텐 형'이라는 호칭을 내뱉었다. 이것까지 방송의 일부인가? 적어도 텐이 이제까지 겪어온바, 그 정도까지 조작된 적은 없었다. 자신이 주의를 준 바가 있으니 더더욱 그럴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손에 피가 잔뜩 묻을만한 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상이었다. 그는 나나세 리쿠의 머리에서 시작해서 발끝까지 닿도록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멤버 중 한 명이 다쳤나? 그가 속한 그룹은 일곱 명이다. 멤버가 다쳤다면 분명 주변에 도움을 청할만한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없더라도 그는 멤버나 매니저를 찾아가야 했다. 쌍둥이 형이 아니라.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사실을 쿠죠 텐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나세 리쿠는 왜 자신을 찾아왔는가? 긴박한 상황에 제대로 된 판단이 이루어지지 않아 가장 가까운 이인 가족을 찾고자 하는 본능? 하지만 우린 이제 가족이 아니잖아. 표정이 절망감으로 일그러지는 순간 나나세 리쿠는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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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이었다. 쿠죠 텐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쓰러지는 리쿠를 받아냈고 그의 옷과 손은 리쿠의 것과 같이 붉어졌다. 리쿠는 정신을 잃었다. 가쁜 호흡을 내쉬는 것이 느껴졌고, 어느새 호흡의 속도마저 쓰러진 이와 같아진 그는 초조했다. 도움이 될 만한 건 없나? 쿠죠 텐은 다급하게 선반 위를 더듬었다. 끈적한 액체가 손가락 사이마다 늘어붙는 감각이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손이 선반 위를 핏자국으로 더럽혔다. 바깥이 시끄러웠다.

“텐 씨!“

관계자가 열려있는 대기실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내부의 광경을 보고 두어 걸음 물러난 그는 떨리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부여잡고 이야기했다.

바깥에서 스태프 한 명이... 칼에 찔려 쓰러져있는 걸 막내 스태프가 발견해서, 지금 경찰을 불렀거든요? 발견했을 때는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범인은 아직 못 잡았는데... 아, 그러니까, 녹화는 밀리거나 취소될 것 같아요. 그런데, 두 분은 왜...

쿠죠 텐은 무의식 중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애초에 자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일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다. 아니, 그 전에 대답부터.

"네, 알겠습니다. 혹시 구급차 좀 불러주실 수 있나요? 보시다시피... 나나세, 씨가 쓰러지셔서."

아이돌리쉬 세븐의 매니저분도요. 부탁드려요.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밖으로 나선 관계자의 뒷모습을 뒤로 하고 텐은 주변의 옷가지를 받혀 리쿠를 바닥에 조심스레 눕혔다.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최초 발견자는 막내 스태프다. 그렇다면 리쿠, 너는? 넌 왜 주변에 알리지 않은 거야. 왜 그런 꼴로 내게 달려온 거야? 가쁜 호흡이 잦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쿠죠 텐은 다급하게 나나세 리쿠의 어깨를 잡고 몸을 붙여 호흡을 확인했다. 색색거리는 차분한 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무슨 걱정을.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한 명은 아니었다. 적어도 서너 명. 리쿠, 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익숙하다. 부탁한 건 매니저 뿐이었는데, 너를 신경 써주는 사람이 많네, 리쿠. '쿠죠' 텐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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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이 있었지만 지금은 기절했을 뿐이라고 했다. 데리고 있어 줘서 고맙다고 아이돌리쉬 세븐의 매니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변이 어수선했다. 경찰 몇 명이 스태프들에게 경위를 묻고 있었다. 쿠죠 텐은 곧 자신의 차례가 다가올 것이라 직감했고 빗나가는 일은 없었다.

​“트리거의 쿠죠 텐 씨?

“네, 맞습니다.“

쿠죠 텐은 프로페셔널한 미소를 유지했다. 지은 죄는 없었지만 수상쩍게 보여서 좋을 것도 없었다. 그의 손과 옷이 피투성이였어도 말이다. 정리하고 싶었지만 경황이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야 아이돌로 살아가면서 살인사건 현장에 휘말릴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으니까. 더군다나 그 현장에 피투성이인 채로 서 있을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경찰은 그를 끈질기게 살피더니 질문을 뱉었다.

“나나세 리쿠 씨와 함께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스태프 말로는 두 분 다 피투성이셨다고 들었는데, ... ... 무슨 일이 있으셨죠?“

“아, 나나세 씨가...”

목소리가 멎었다. 왜 리쿠는 자신에게 먼저 찾아왔을까? 텐은 지금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상황에 대한 판단이 과도하게 길어진 나머지 터무니없는 가정에까지 도달해버린 것이다. 쿠죠 텐의 머릿속에 최악의 가능성 하나가 떠올랐다. 나나세 리쿠가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라면? 허나 그 가능성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텐은 리쿠가 살인을 저지를 인물이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이는 나나세 리쿠라는 인물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긍정할 만한 문장이었다. 그는 사람을 죽일 인물이 아니다.

단, 이어서 흘러가는 생각. 자신이 내뱉은 말로 인해 그 용의선상에 오른다면? 애초에 피칠갑으로 나타난 시점에서 용의자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쿠죠 텐은 지금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나세 리쿠는 발작을 일으켰다. 피투성이로 나타났으니 현장을 목격했을 게 분명했다. 그 자체로 이미 과한 자극이다. 여기서 압박적인 수사까지 들어간다면? 지금도 겨우 버텨냈을 뿐인데, 그때도 리쿠의 몸이 버텨줄 수 있을까?

쿠죠 텐은 마지막 생각에 도달했다. 피투성이인 채로 대기실에 뛰어 들어온 것이 리쿠가 아닌 자신이라면? 자신이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 사람을 찾아 대기실까지 뛰어 들어온 것이다. 운이 좋게도 두 그룹은 합동방송을 위해 같은 대기실을 사용 중이었고, 둘은 쌍둥이였다. 리쿠는 범인이 아니니 이 정도 조작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이게 먹혀들어 갈 리는 없었다. 주변인의 증언만 몇 번 맞춰보면 금방 거짓임이 들통날 것이 뻔했고, 오히려 더 의심을 받을 게 분명했다. 정신이 흐렸던 쿠죠 텐의 안일한 판단이었다.

​“텐 씨?“

“죄송합니다. 말을 정리하는 중이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나나세 씨의-“

“잠시만요.”

멀리서 제 앞의 경찰을 부르는 소리였다. 범인 잡혔답니다. 그런 말이 들렸다. 자수했고, 흉기까지 확인했다고 한다. 앞에 선 경찰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잠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추후에 목격자 신분으로 진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반대편으로 뛰어 사라졌다.

쿠죠 텐은 몸에 힘이 풀리는 걸 느꼈다. 벽에 부딪히듯 기대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천천히 제정신이 돌아왔다.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당장 CCTV만 돌려보아도 리쿠가 단순히 목격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범인은 바로 잡히고, 리쿠가 용의자로서 심문을 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자수가 10초만 늦었더라도 쿠죠 텐은 거짓 진술을 뱉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사건이 꼬이고 꼬여 큰일이 났을 것이다. 자신의 팬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물론 리쿠의 아이돌 인생까지 망쳐버리고 말 뻔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자각한 쿠죠 텐은 벽을 따라 흘러내려 주저앉았다.

동생 생각에 마음 약해져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이나 하다니. 아니, 이제는 동생도 아니잖아. 이제 와서 이딴 방식으로 형, 가족 노릇을 해보겠다고? 차분히 되돌아보아도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고작 이런 일 한 번에 공사구분이 무너지다니, 아직 진정한 프로가 되긴 멀었구나. 쿠죠 텐은 그리 생각하며 피투성이인 손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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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달리는 강아지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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