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우주 먼지
1. 힐타샤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닿을 때면 가슴속에선 항상 폭죽이 터졌다. 힐과 눈이 마주칠 때면 도파민이며 세로토닌 같은 호르몬이 마구잡이로 분출될 게 분명하니 꽤 직접적인 비유였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일평생 동안 사랑은 어린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말을 들어왔지만, 힐과 함께 있을 때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그가 어디까지 이
산드라 프랜스키가 있다면 나타샤 로마노프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를 납치하거나 위해를 가할 필요 없이 망치기 쉽지 않은 요리 재료와 주방만 있어도 나타샤의 머릿속에서 산드라의 집은 다양한 시나리오로 난장판이 되고는 했다. 물론 모든 시나리오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예측에 가까웠으므로, 브리핑을 듣다 산드라로부터 주말에 치즈를 만들겠다는 포
나타샤에게, 안녕, 나타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 것 같네. 너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걸 그렇게 좋아했는데, 왜 편지를 쓸 생각은 못 했을까. 너라면 세상을 구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답장을 써줬을 텐데. 그러면 다시 들여다보면서 너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 하나라도 늘었을 테고 말이야. 이제 와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야. 사
“I told you, Boss. I’d die for you.” “Don’t be dramatic!” 페기는 그가 덧붙인, 레드룸에서 그렇게 극적으로 구는 걸 가르치기라도 하느냐는 말에 나타샤 로마노프의 표정이 굳은 건 보지 못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건 목숨을 버리기 딱 좋은 행동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블랙 위도우는 다중작업에
멜리나 보스토코프가 기억하는 졸업식은 늘 겨울이었다. 혹한으로 유명한 나라의 겨울은 늘 뼈가 시리도록 추웠지만, 그와는 달리 처음으로 졸업을 맞이하는 아이를 마주할 때 척추를 타고 흐르는 오한은 겨울이 주는 달콤한 마비와는 달랐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과 약간의 자부심은 잘 정돈된 무표정 아래 숨어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