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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냇] 산드라가 우유에 레몬즙을 탄 이유

산드라 프랜스키가 있다면 나타샤 로마노프를 불안하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를 납치하거나 위해를 가할 필요 없이 망치기 쉽지 않은 요리 재료와 주방만 있어도 나타샤의 머릿속에서 산드라의 집은 다양한 시나리오로 난장판이 되고는 했다. 물론 모든 시나리오가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예측에 가까웠으므로, 브리핑을 듣다 산드라로부터 주말에 치즈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담긴 메시지를 받은 나타샤가 최단 시간을 갱신하며 돌아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임무 보고도 제대로 마치지 않고 캣슈트 차림으로 산드라의 집에 들어선 나타샤는 집 안이 연기로 가득 차 화재 알람이 울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그는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온갖 기구가 잔뜩 늘어져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조금 시큼한 냄새가 날 뿐 주방도 멀쩡했다. 하지만 나타샤는 드디어 산드라가 요리에 성공했을 거라며 순진하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집에 불을 내지는 않았네.”

“나타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냄비에서 끓고 있는 액체를 휘젓던 산드라는 주걱도 내팽개치고 나타샤에게 안겨들었다. 지독하게 풍길 화약 냄새와 땀 냄새를 핑계로 물러서는 대신 온 몸을 던지는 포옹을 받아준 나타샤는 피식 웃으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산드라는 나타샤를 한 번 꽉 끌어안고 다친 곳은 없는지 살핀 후에야 한 걸음 떨어졌다. 싱글싱글 웃으며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 나타샤의 첫 마디를 떠올린 그는 다시 냄비를 바라볼 때처럼 얼굴을 구겼다.

“잠깐만, 설마 그래서 일찍 돌아온 거야?

나타샤는 어깨를 으쓱하고 산드라를 지나쳐 하얀 액체가 끓고 있는 냄비로 다가갔다. 노란 액체에 둥둥 떠다니는 하얀 가루는 좋게 봐 주어도 치즈가 되기엔 힘들어 보였다.

“공주야, 이거 타는 것 같은데.”

“뭐? 이게 마지막 남은 우유였는데…”

마지막 우유라는 건 이게 처음은 아니라는 소리겠군. 등 뒤에서 느리게 고개를 저은 나타샤는 처참한 몰골일 냄비를 굳이 한 번 더 확인하는 대신 풀이 죽은 산드라를 끌어안아 어깨에 얼굴을 부볐다.

“내일 같이 만들어 보자.”

“재료 다 떨어졌는데.”

산드라는 최선을 다해 시무룩한 척했지만, 최고의 스파이에게 실룩거리는 입꼬리를 숨길 수는 없었다. 나타샤는 말랑한 뺨에 쪽 입을 맞췄다.

“장도 같이 보면 되겠네.”

“그럴 시간이 돼?”

“오전에 잠깐 나갔다가 오기는 해야 해.”

“진짜 이것 때문에 일찍 온 거 맞구나?”

짐짓 화난 척하는 산드라의 허리에 감은 팔을 풀어낸 나타샤는 캣슈트의 지퍼를 내리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나 샤워해야 하는데, 공주도 같이할래?”

“너 진짜 약았어.”

“그래서 싫어?”

산드라는 이미 벌어진 슈트 사이로 드러난 살갗을 훑어보느라 바빴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나타샤는 휙 몸을 돌리고 욕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싫으면 나 혼자 씻을게.”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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