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엘]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는 미친 게 분명했다.

https://youtu.be/NyxKftJszJA?si=V_vBLX83RB3zco7i


어째서 그랬느냐고 묻고 싶다. 어째서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런 일들을 벌여왔느냐고 묻고 싶었다. 숨이 턱 막혀오던 풍경들. 차마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것들. 두 손으로 가려진 저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암행이. 저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이. 비참했느냐면, 그렇지 않았다. 충격에 빠졌느냐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충격을, 나는. 나의 것이 숨겨오던 진실로 인하여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나를 상처 입혔던가. 네가 입은 상처에 비하면 아픈 바가 못 되었다. 그러니 물었다, 아버지에게. 어째서 그랬느냐고. 그리고, 펼쳐진 것은.

 

 

 

필립이랑 같이 갈 걸 그랬어. 그러한 핑계를 대며 말을 돌렸다. 제가 여태까지 몰라왔던 진의를 깨우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에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으므로. 네게 짐을 건네며 너의 눈치를 살폈던 것도 같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 내가 너의 눈치를 보는 일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기에, 아.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어쩌다, 여행을 떠나게 됐더라. 어쩌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더라. 시작은 언제나 사소하다. 내 것이라 명하게 되는 것도, 친구가 되는 것도,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게 되는 일조차. 그렇기에 이번의 시작도 사소했으리라. 내가, 너의 흉 진 자리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이대로 죽 유지됐을지도 모르지. 아버지와의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어쩌면…… 이 모든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엘, 그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제가 태어난 날. 저의 이름에 담긴 것은 태어난 날을 의미하는 명명. 함박눈이 쏟아지던 밤. 저는 돌아왔다, 그 어두운 곳을 등지고서. 그 어두운 곳에서 도망치듯 달려왔다. 묻기 위해. 어째서 그랬느냐고. 왜 제게는 말하지 않았느냐고! 어째서, 내 것을. 그렇게, 몰아붙였는지. 묻기 위하여. 노엘, 그 소년은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시작은 사소했다. 조심스럽게 띄운 운. 너는 몰라도 된다는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 왜 나만 모를 수 있냐는 되물음에 자리를 피하려 들던 아버지. 왜, 왜 그랬어? 내 거잖아. 내 거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따지듯 묻는 철없는 음역대에, 그의 아버지는 무심코 화를 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순간의 기억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래, 제가 태어난 날도 함박눈이 내렸다고 들었다. 오늘처럼 말이다.

 

 

 

쨍그랑,

 

그리고 들려오는 것은,

 

쿵.

 

 

 

제 손에 들려있는 것은 깨진 와인병 하나였다.

 

 

 

찰나로 돌아가자. 그 순간을 들여다보자. 무엇을 했지? 노엘. 아버지와 대화하다가 너무 화가 났어. 내 것을 그렇게 아프게 했다는 게 슬프고, 서러웠어. 그래서? 그리고 아버지는 계속 내 말을 피했고. 그리고? 너는 몰라도 된다고, 계속 나만 몰라도 된다고 하고. 나도 다 컸는데. 나는 내 것을 충분히 가질 수 있고, 내 것을 내가 보살필 줄 아는데. 계속 어린아이 취급만 하잖아. 그게 화가 났어? 응, 화가 났어. 그래서 와인병을 휘두른 거야? 아버지에게.

 

 

 

그랬다.

 

노엘. 고요한 밤 소리죽여 내리는 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이, 마찬가지로 침묵 속 눈이 내리던 밤하늘 아래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병을 휘둘러 쓰러지게 만들었다는 진실을.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마주하는 것이다.

 

 

 

그 실제를 두 번째로 맞이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필립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가주님. 도련님! 벌컥,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년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자신의 도련님과, 쓰러진 증오의 원천. 이 모든 것의 원흉. 한 걸음, 두 걸음. 떨리는 다리를 내걸어 앞으로 향한다. 한쪽 무릎을 꿇고 원망이 실체화된 사내의 앞에 앉는다. 허연 장갑을 낀 손을 뻗는다. 사내의 코 근처에 가져다 댄다. 천 자락을 뚫고 느껴지는 것은 아직도, 따뜻한 숨결. 아, 왜 살아있지.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차라리…… 그런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더는 맞을 일도, 흉터가 늘어날 일도.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저의 주인을 앞에 두고 소년은 생각했다.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하고.

 

 

 

제 어깨를 두드린 것은 다름 아닌 저의 도련님이었다.

 

 

 

“도련님, 어디 다치신 곳은…….”

“지금 내 걱정해 주는 거야~? 필립.”

“깨진 병을 들고 계시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걱정 안 해?”

 

“…제가,”

 

 

 

걱정을 해야 하나요? 그리 묻는 듯한 눈빛. 느릿하게 쏟아지는 눈발 사이에서도 비치지 않는 빛줄기. 얼음 결정 하나 녹이지 못하는 칠흑빛 눈동자를 바라본다. 소년의 시선이 감긴다. 있지, 필립. 나, 네가…… 아버지가 아닌, 나를 걱정해 줘서 좋아. 어쩌면 우리는 미친 걸지도 몰라. 나는 내 것을 걱정하느라, 너는 미워하느라. 당장 눈앞의 가주가 쓰러졌으니 가주를 걱정해도 모자랄 지경에, 너의 도련님을 걱정하고 있잖아. 아니, 애초에. 내 것에게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 것을 괴롭게 만들지만 않았더라면. 이렇게 될 일도 아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 필립. 흰빛 소년이 떨리는 입매를 끌어당겨 미소를 짓는다. 필립.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이제는 두 번째 주인이 될 소년의 말이었다.

 

 

 

흑빛 소년은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까닭이리라. 상반되는 색. 어그러진 마음. 순수한 애정과 사랑에 대비되는 증오와 혐오. 그리고 원망. 눈앞의 도련님, 아니. 눈앞의 소년이 제 주인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을 원망해왔다. 그리고 그 원혐의 대가를 지금에서야 치르게 되었다. 웃음이 날 법도 한데. 필립, 그 소년은. 웃지 않았다. 여느 무표정으로 몸을 숙여 쓰러진 사내를 부축하듯 일으킬 뿐이다. 묵직한 무언가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나면, 창문을 여는 손이 있었다. 아, 이제. 전부, 끝이다. 제게 마지막 선택지를 쥐여 준 꼬마 도련님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전해야 하나. 아니면, 당연한 것을 내어주었으니 그깟 마음 따위 갖지 말까. 그리 생각하며, 칠흑빛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바람 소리가 났다. 바람결을 뚫고 쏟아지는 충격음이 흘렀다. 그것으로 모든 게 끝이었다.

 

 

 

소년은 두 번째 주인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미친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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