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헤라] Until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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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이 없었다면 난 약초학을 그렇게 싫어하진 않았을지도 몰라."
"그렇다고 해도, 헤라, 잘 하잖아. 대단해."
"대단하긴. 그나저나 루나 너는 공부 안 해?"
"응? 하고 있는 건데~."
헤리아가 루나의 손에 들린 책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시험과는 상관 없어 보이는 책이었으나 더는 말하지 않았다. 시험을 앞둔 레번클로 기숙사 휴게실은 한산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도서관에 가 있는 까닭이었다. 그러나 헤리아는 루나와 함께 잡담을 나눌 수 있는 휴게실을 더 편하게 여기곤 했다. 다른 사람들과는 인사 한 마디 나누는 것도 힘에 부쳤으나 어쩐지 루나와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모두가 거리를 두는 루나와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된 건 그런 이유가 컸다.
"헤라는 조금 천천히 해도 돼. 이미 잘하고 있는걸."
"미리미리 해놓지 않으면 금방 뒤쳐질 거야."
"헤라는 걱정이 많구나."
헤리아는 차마 루나가 걱정이 없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루나가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었는데, 헤리아가 보는 루나는 결코 생각이 없는 아이가 아니었다. 다만 평범한 학생들과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아이일 뿐. 결국 헤리아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나저나, 나 고백받았어, 루나. 그리핀도르 6학년 남자 선배야."
"그래? 토미인가?"
"어떻게 알았어?"
"그냥. 그럴 것 같았어. 눈을 감고 조용히 모든 것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 수 있거든."
"넌 가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해."
"헤라는 똑똑하니까 다 알 수 있을 거야."
"글쎄. 지금 당장 고백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거절할 거잖아."
단호한 루나의 대답에 헤리아가 고개를 돌려 루나를 바라보았다. 루나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표정이었다. 헤리아만이 혼란스러운 듯 표정을 갈무리하지 못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루나?"
"그거야 헤라는 날 좋아하잖아."
싱긋 웃으며 대답한 루나에 헤리아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멍하니 루나만 바라보는 헤리아를 다른 누군가가 보았다면 놀라 까무러쳤을지도 몰랐다. 항상 어른스럽고 단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헤리아는 답지 않게 얼이 빠져 있었다. 그런 헤리아와 대비되게도 루나는 덤덤한 태도를 고수했다. 루나의 말투조차 마치 정명한 사실을 말하는 듯한 어조였다. 절대 틀릴리 없다는 단호한 말투. 그게 헤리아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널 좋아한다고?"
"응. 헤라는 날 좋아하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그걸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했다. 헤리아는 더 대답하지 않고 혼자 생각에 잠겼다. 루나는 그저 웃는 얼굴로 책을 넘기며 헤리아를 기다려주었다. 루나에 대해 좋아한다던가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야 너무도 당연히 루나는 헤리아에게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루나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헤리아가 이내 낮게 탄식을 내뱉었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루나의 말 한마디를 의심할 생각도 하지 못 하고 자신을 먼저 의심하는 것 자체가 루나를 좋아한다는 증거나 다름 없었다.
"맞네..."
"응?"
"...좋아해, 루나."
인정하기까지는 쉬웠으나 오히려 말로 내뱉는 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숨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미 루나는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숨기는 건 무의미했을 뿐더러 숨기고 싶지 않았다. 처음 느끼는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신도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용기로 간신히 고백과도 같은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나도 좋아해, 헤라."
얼굴까지 잔뜩 벌게진 헤리사와는 다르게 루나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고백한 루나는 그에 그치지 않고 헤리아의 손을 잡아 올려 손등에 키스했다. 헤리아가 놀랄 새도 없이 루나의 입술이 이번에는 헤리아의 뺨에 닿았다. 생전 처음 느껴본 부드러운 감촉에 헤리아는 숨도 크게 쉴 수 없이 굳어버렸다.
"헤라, 귀엽다. 굳어버렸네~."
"루나, 너는 아무렇지도 않아?"
"아니? 엄청 좋은데. 헤라도 좋잖아."
이번에도 루나의 말투는 단정적이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한치의 의심도 없는 말투. 그 말에 헤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의 말은 항상 맞았다. 제가 루나를 좋아하는 것도 맞았고, 지금 기분이 좋은 것도 맞았다. 루나는 헤리아 보다도 더 헤리아를 잘 아는 것처럼 말했고, 헤리아는 그게 싫지 않았다. 실제로 루나는 헤라를 잘 알고 있기도 했다.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야."
"헤라는 누가 보는 게 싫어?"
"싫다기보다는 부끄러워서... 네가 부끄럽다는 건 아니고, 그냥..."
"응, 알아, 헤라. 그렇게 열심히 말 안 해도 돼."
루나가 한 번 더 헤리아의 뺨에 입맞췄다. 간신히 진정하려던 헤리아의 노력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평소에는 노력하지 않아도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게 쉽기만 했는데 오늘은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루나와 있을 때면 늘 그랬다. 루나는 헤리아의 잔잔한 마음에 늘 파동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그리고 헤리아는 그게 싫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오랫동안 루나를 좋아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자신은 몰랐을까,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내일 토미한테 잘 거절하고 와. 아마 별 말은 안 할 거야."
"응, 괜히 토미한테 미안하네."
"같이 가줄까?"
"그게 더 미안할 것 같아."
말을 마친 헤리아가 손가락을 꾸물거리며 머뭇댔다. 헤리아를 아는 모든 사람들, 친구들이나 교수님들, 혹은 가족들마저도 보고 놀랐을 광경이었다. 그러나 루나는 다 안다는 듯 웃으며 헤리아의 손을 끌어다 잡았다.
"...너는 진짜 신기해."
"다들 그렇다더라. 나는 잘 모르겠는데."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알잖아."
"헤라는 다 티가 나. 아, 내가 헤라를 좋아해서 그런 건가?"
여전히 좋아한다는 말에는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항상 직설적인 루나는 고백에도 거침이 없었다. 마치 오늘은 비가 내리네, 라고 말하는 듯한 평온한 어조.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이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말하는 사람이 루나여서일까, 그 말에 담긴 진심을 헤리아는 무엇보다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용기낼 수 있었다. 진심은 진심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나도, 많이 좋아해, 루나."
루나가 했던 것처럼, 헤리아가 루나의 뺨에 입맞추었다. 두 눈을 꽉 감은채였다. 그럼에도 루나가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빠르게 멀어지려는 헤리아를 루나가 붙잡아 안았다. 얼결에 안긴 모양새가 된 헤리아가 그대로 굳었다. 오늘은 참 평소같지 않은 행동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헤리아가 천천히 루나를 마주 안았다. 둘은 누군가 레번클로 휴게실로 들어오기 전까지 그렇게 한참을 안고 있었다. 서로의 심장 소리가 공명하듯 귀에 울렸다. 풋풋한 사랑이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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