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속아주는 날

평범한 솔의 하루

눈을 떴을 때 보인 건 키보드에 얼굴을 묻고 있는 피곤에 찌든 자신의 모습이었다.

“…언제부터 잠든 거야.”

다급히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오전 6시 22분. 마지막 기억이 새벽 3시쯤이었으니 3시간을 자버린 것이다. 마른세수를 하며 기지개를 켜도 몸의 피곤은 풀리지 않았다. 소파에는 두 선배가 서류 더미를 이불 삼아 자고 있었고, 가장 웃어른인 윤 반장님은 칠판 앞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어쩐지 조용하더라니.

코골이 소리만이 요란스레 울리는 괴도 전담반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특히나 기념일을 앞둔 괴도 전담반이라면 더더욱.

자리에서 일어나 당직 근무자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경찰서를 거닐자 딱딱한 구두 소리가 철창을 두드리는 것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시체처럼 업무를 처리하는 근무자들, 특종을 위해 민원인 의자에 목을 꺾은 채 잠든 기자, 수많은 수배 전단들. 그중 경찰서의 벽화처럼 오래된 전단을 노려보았다.

누군가는 원수 같다고 하기도 하고 친구 같다고도 하는 전단 속의 인물. 나도 동감한다. 정말 원수 같은 친구다.

슬그머니 떠오르는 아침의 태양을 찾아 경찰서를 나서자 회색빛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신선한 공기가 몸 곳곳을 때리며, 비명 대신 입김을 새어 나오게 했다. 아직 2월임에도 날은 풀리지 않았다.

경찰서의 주차장은 민원인의 호통과 안도도, 경찰관들의 다급함과 피곤도 없이 비어 있었다. 한쪽 구석 시동 꺼진 경찰차와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한 경찰관들의 개인 차량만 식어있어질 따름이다.

경찰서 앞의 거리는 소박한 소란이 깔려있었다. 장사를 종료하는 술집과 아침 장사를 시작한 백반집의 수저를 정리하는 소리가 귓가에 나지막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거리의 끝에 형형색색의 빛깔을 내며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리려는 편의점에 도달했다.

알바생은 새로 들어온 물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활기찬 인사를 전했고, 익숙히 고개만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 진열대 앞에서 고심할 필요 없이 각기 좋아하는 커피와 피로 회복제를 담았고, 도시락과 샌드위치를 대강 장바구니에 담아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아, 잠시만요!”

물건들을 진열하는 알바생을 두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화려하게 포장된 다양한 제품들. 기념일을 기념하는 건 제품이 아닌 제품의 가격 같아 보였다. 어쩌면 물질만능주의에 걸맞은 가격일지도 모른다. 비싼 것을 선물하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솔 경관님! 오늘도 오셨네요?”

“아, 네.”

“이번에도 ‘그’ 사람을 잡느라 야근 중인가요?”

새벽임에도 생긋이 웃으며 일하는 그 모습에 난 평소처럼 답했다.

“업무상-”

“업무상 비밀이죠! 그럼요!”

알바생은 즐겁다는 듯 말하며 물건들을 계산해나갔다. 계산대는 바코드 찍히는 소리만 정적처럼 흘렀다. 이내 알바생이 헛기침하며 말을 이었다.

“최근에 기자님들이 많이 들리시더라고요.”

“그렇습니까.”

“매번 저한테 와서 솔 경관님이랑 만난 적 있느냐, 만나면 ‘그’사람에 대해 좀 물어봐 줘라, 인터뷰 녹음하면 사례금을 주겠다! 그러면서 저한테 회유와 협박을 하거든요.”

삑. 마지막 도시락을 찍은 알바생이 억울함을 토로하듯 말했다.

“받아들이셨습니까.”

“받아들였다면요?”

부스럭. 봉지에 차곡차곡 물건들을 담는 알바생이 천연덕스레 말했다. 나는 덤덤히 답했다.

“거짓으로만 안 답하시면 됩니다.”

“정말요?”

“제가 답을 안 할 테니까요.”

“맞아요, 솔 경관님은 그런 분이시니까요.”

뭐가 그리 좋다는 듯 싱글거리던 알바생이 봉투에 무언가 집어넣었다.

“이건, 인터뷰 사례비에요.”

“저는 만족스럽지 못한 시민이었을 텐데요.”

“심심한 알바생한테는 좋은 손님이셨는걸요.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한테 전하는 날이잖아요?”

솔은 알바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달콤한 것을 전해주는 날. 혹은 몇몇 식품업체의 실적이 올라가는 날. 솔에게는 항상 후자의 이야기였다.

“감사합니다. 추가로 이것도 결제하죠.”

나는 알바생의 호의에 고개를 돌려 적당한 크기의 밀크 초콜릿 상자, 작은 크기의 다크 초콜릿을 계산대에 올렸다. 그리고 계산을 마친 밀크 초콜릿 상자를 알바생에게 건넸다.

“제 뇌물입니다.”

알바생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단 시선으로 조그만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어, 어- 감사합니다.”

솔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의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바라본 시계는 오전 6시 48분을 나타냈다. 여전히 활기 대신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간. 괴도 전담반의 사무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디 다녀왔어?”

죽어가는 강경사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침 사가지고 왔습니다.”

“…아, 그래?”

“조금 더 주무셔도 됩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안심한 얼굴로 사건 현장의 마네킹처럼 누운 강 경사님의 모습만이 기다릴 뿐이었다. 솔은 조용히 사 온 것들을 냉장고에 넣으며 마지막에 구매한 다크초콜릿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칼로리 낮은 거니 좋아하겠지.”

오늘 하루쯤은 상술에 속아줘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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