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08

비아틴X지휘사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라는 유명 추리소설이 있다. 제목 그 자체로 엔딩부의 스포일러이며, 반전 없는 반전으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작이 되었다.

반전없는 반전은 허무한걸까?

지휘사는 그 책을 처음 읽고 그렇게 물었다. 비아틴은 그 물음에 생각해본 적 없었던 내용이라 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야 반전 없는 반전이란 기믹 하나로 그 책은 대작이었으니까.

***

“비아틴~!! 큰일이야!”

“무슨 일이야?”

지휘사가 급하게 긴 갈색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왔다. 비아틴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리해주며 되물었다. 지휘사는 항상 덜렁거리는 편에다 털털해서 이런 사소한 부분을 자신이 챙겨줄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비아틴에게 지휘사가 급하게 말했다.

“시체가!”

“응?”

“중앙청 앞에 시체가 있어!!!”

그게 무슨 소리지? 의문이 들었지만 비아틴은 평소와 같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진정시켜주었다. 천천히 말해봐, 지휘사. 그리 말하며 그는 지휘사와 시선을 맞추었다.

“중앙청 앞에? 대낮부터?”

지휘사는 여전히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보기 힘들어. 혹시 대신 봐줄 수 있을까?”

당연하지. 비아틴은 상냥하게 대답했다. 지휘사는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 표정을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비아틴은 또 그런 생각이나 하며 차에 올라타 중앙청으로 향했다.

그 곳엔 정말로 시체가 있었다. 지휘사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만 그 시체의 모습에 비아틴은 살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시체’라고 불러도 되는걸까? 그것은 시체라기엔 너무 현실감 없었고,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한 시체였다. 어라, 이런 시체가 존재할 수 있는건가? 언젠가 이런 시체를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이 세계에선 존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비아틴이 생각에 잠긴 동안 지휘사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머리가 띵해지는 걸 느꼈다.지휘사가 그것을 계속 바라보다 휘청, 하고 쓰러지자 그는 상냥하게 지휘사를 받아들어 차에 태웠다.

이상하네. 누가 이걸 여기에 가져다뒀지? 갖다 둘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쩔 수 없네. 일단 돌아가서 생각해볼까.”

그는 운전대를 잡고 엑셀을 밟았다. 막 출발을 하려 할 때였다. 차 앞에 남자 한 명이 뛰어들었다. 비아틴은 이크, 하는 소리를 내며 운전대를 꺾었다.

“위험하네. 조심해.”

창문을 열고 비아틴이 말하자 남자는 후드를 더 깊이 눌러 썼다.

“사과는 안하는거야?”

비아틴은 어디까지나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남자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비아틴에게 총을 겨누었다. 고작 그런 것으로 비아틴을 해칠 수 없다. 악마, 용,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것. 인간의 둔기로 신기사인 그를 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하지만 그의 총구는 지휘사에게 향했다. 탕,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방아쇠가 당겨졌다. 비아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손을 뻗었지만 모든 배경이 녹아내리듯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시간이 되돌아간다. 영겁의 태엽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비아틴이 눈을 뜬 곳은 시간이 뉴스가 나오는 방 안이었다. 비아틴은 고개를 돌려 텔레비젼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나운서가 무언가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중앙청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와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 지휘사를 죽인 그 남자인가?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뉴스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뉴스 안에서는 남자의 얼굴도, 시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평화로운 중앙청의 모습만 나오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어째서 속보라고 나온건지 이해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비아틴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통통거리며 튀는 발걸음 소리, 가까이 오기 전부터 들리는 목소리.

“비아틴~!!”

아, 익숙한 목소리다.

“큰일이야!”

“...무슨 일이야?”

머리를 흩날리며 달려온 지휘사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던 비아틴은 기시감을 느끼고 작게 웃었다. 눈치채지 못할 미묘한 것이기에 애써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시체가! 중앙청 앞에 시체가 있어!!!”

“그렇구나.”

“별로 안 놀라네?? 그 시체, 엄청 이상해! 누가 사람 시체를 그렇게 만들어놓은걸까?”

그래, 그 것은 확실히 이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비아틴은 앉아서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게 어떤 시공의 것인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분명 어떤 시공에 그런 형체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계의 것이 아닌게 턱하고 나타난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아, 혹시.

“지휘사, 혹시 그 시체 주변에 수상한 사람 없었어?”

“응? 없었는데?”

“눈에 띄게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는 남자나...”

비아틴의 말에 지휘사는 눈을 빙 굴리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없었어.”

“그래. 그럼 중앙청에 가보는 게 좋겠네.”

비아틴은 방긋 웃어보였다. 지휘사가 발견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다 비아틴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두 사람이 중앙청 앞에 도착하자 경찰무리 너머에서 또 다시 시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아니더라도 악마는 알 수 있었다. 비아틴은 이번엔 시체를 잘 살펴보았다. 시체에 별 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기묘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총을 맞은 흔적. 역시 그 남자의 짓이 맞는 것 같았다.

탕. 또 다시 총 소리가 들렸다.

중앙청 한복판의 살인. 그것도 지휘사를 향한 살인. 이건 있을 수 없다. 지휘사는 이 세계의 중심점이니까. 감히 그녀를 몇 번이고 죽이며 도망다닐 수 있는 존재는 있을 수 없었다.

비아틴은 지휘사의 시침이 빠르게 돌아가기 전에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볼 수 있는 건 후드 너머에 연한 갈색 머리카락 밖에 없었다.

정말 익숙한 색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모를 리 없는 색이었다. 설마. 의문이 들어 그는 작게 조소를 터트렸다. 무슨 흔한 클리셰라도 보는 마냥…

또 다시 아침. 밖에는 먹구름이 껴 슬슬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텔레비전 너머에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앙청 살인사건. 이번에도 지휘사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비아틴은 지휘사와 마주치기 전에 창문 밖으로 먼저 가볍게 달려나갔다.

‘예상이 틀리지 않으면 좋을텐데.’

그리고 중앙청으로 가자 시체 근처에 남자가 서 있었다.

“안녕.”

남자는 비아틴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라는 소설 알아?”

이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적 있지 않던가? 비아틴은 표정을 구기지 않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남자는 가만히 입을 열었다.

“지휘사가 나한테 빌려준 소설 중에 하나야. 그리고 물었어. 반전 없는 반전은 허무하냐고.”

남자가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연한 갈색 머리에 올리브 색 눈. 다른 시공에 있는 그라면, 그가 어째서 시간이 흘러버린걸까? 지휘사는 영원히 일주일만을 사는 존재가 아니던가.

“내 세계에 지휘사를 돌려줘. 부탁이야.”

그는 건조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비아틴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 세계의 지휘사는 어디로 갔는데?”

“...돌아오지 않아.”

갈라진 목소리가 목 구멍 너머로 새어나왔다. 비아틴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더 들으려던 순간, 뒤에서 탕 하는 총성이 들렸다. 순식간의 남자의 가슴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휘사.”

비아틴은 제 뒤에 나타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헉헉거리며 달려오더니 비아틴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아틴! 어디갔었어, 같이 갔어야지! 여기 연쇄 살인마가 나온다고 뉴스도 나왔어. 큰일 날뻔했잖아!”

지휘사는 비아틴에게 척척 걸어와 자랑스럽게 웃어보였다.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다시 품에 넣은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쓰러진 비아틴은 지휘사를 가만히 눈에 담고 있었다. 아아, 이 세계로 와서 너에게 죽을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말할 수 없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눈에 담았다. 그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렇지?”

비아틴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말 없이 웃었다. 그렇네. 지휘사는 뒤를 돌아 쓰러진 남자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그를 살펴볼 때 자신이란 걸 눈치챌 수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지휘사는 별로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저 이렇게 물어보았을 뿐이다.

“그런데 이 괴생명체, 대체 어디서 나타난걸까?”

비아틴은 그제서야 남자를 본다. 그 남자를 본인으로 인지할 수 있는게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아… 하는 침음 소리를 내었다.

“그러게.”

어디서 나온걸까… 비아틴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어느 시공에서 그가 나온걸까. 지휘사가 사라진 시공이란 건 대체 뭘까. 소년의 몸에 들어와서 혼자 나이를 먹어가는 고통을 참고 있는 이 남자는 대체 어디의 ‘비아틴’일까… 그는 잠깐 생각하다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

그의 세계의 지휘사가 사라질 일은 없다. 그러니 신경쓸 일은 아무것도 없다. 비아틴은 걸어가며 되뇌이다 작게 웃었다.

어느새 어둑한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억센 폭우였다. 차에 올라타서 비에 맞을 일은 없었지만 유리창엔 쉴새 없이 물방울이 튀겼다. 

지휘사가 말한 반전 없는 반전은 정말 허무한걸까? 생각해보던 비아틴은 운전대를 잡은 채 작게 웃었다. 지휘사가 사라진 세계에서 그 어떤 반전도 없다면, 그렇게 영원히 그녀를 찾아 떠돌아야한다면.

이야기로서의 가치가 있더라도 그것만큼 허무하고 슬픈 일이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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