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09

세포신곡, 아토 하루키 드림

수진은 굳게 잠겨버린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눈 앞의 문이 잠겨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너머에선 아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은 나지 않았다. 수진은 떠올릴수록 편두통이라도 겪는 마냥 머리가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하루키 씨, 괜찮아요?"

"괜찮아. 여기 별게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수진은?"

"다행이네요. 저도 괜찮아요..."

지고천 연구소에서 생긴 모든 일들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생체실험부터 시작해서 사이비 종교단체, 그리고 아토의 어린 시절이 깊게 연관되어 있단 사실까지도.

수진은 그냥 실종된 회사 동료를 찾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는 아토가 안타깝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문에 기대 다리를 끌어안고 앉았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떡하죠?"

"음, 추리를 해야겠지?"

이런 상황에마저도 아토다운 대답이었다. 언제나 냉정하고 오만하리만큼 명석한 탐정. 그런 면모를 좋아했지만 가끔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이런 상황에도 추리를 해야겠다는 결론을 낼 수 있는지.

"정신을 잃기 전에 뭘 하고 있었는진 기억나?"

"음... 하루키 씨랑, '비전'을 봤어요."

"무슨 비전을 봤더라?"

무슨 비전을 봤더라? 이 곳에 온 이후의 기억은 어째 뒤죽박죽이었다. 시간 순서대로 천천히 정리해보려고 해도 갑자기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 생각을 가다듬을 시간이 없었다. 수진은 한참을 고민하다 대답했다.

"시나노 씨가 자기는 사실 디타검도 좋아하지 않고 오토와 탐정소 같은 곳은 질색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수진은 미간을 좁혀 표정을 찌푸렸다.

"시나노 씨의 진심이었을까요?"

"그럴리가."

"그렇죠?"

수진은 한숨을 한 번 푹 내쉬었다.

"모습도 같고 말투나, 행동... 버릇같은 것도 똑같이 하니까 구분하기가 어려워요. 뭐가 진짜인지도 알 수 없고."

"꼭 테세우스의 배 같네."

아토가 짧게 말했다. 수진은 잠시 눈을 깜박이다 고개를 기울였다.

"테세우스의 배...요? 그거랑 조금 다르지 않나요?"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는 점에서 꽤 비슷하다 생각했는데."

아토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진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진심'이나 '진짜'라는 것은 결국 본질이다. 하지만 본질이란 무엇인가?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명확히 하나로 똑 떨어지기 어렵다. 아까 한 말처럼 시나노가 진심으로 디타검에 대한 애정이 조금 식어가는 중일 수도 있고, 오토와 탐정사무소에 쥐가 나오는 바람에 질색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사람은 시시각각 변하기에 본질에 대해 간단한 산수풀이처럼 똑 떨어지는 답을 얻어내기란 불가능하다. 세상을 구성하는 양자역학 마저도 확률의 영역에 의지하고 있지 않던가?

"수진은 본질이 뭐라고 생각해?"

"어려운 질문이네요..."

"테세우스의 배 자체가 자아정체성을 다루는 형이상학 난제니까."

수진은 버릇처럼 제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기억을 더듬을때 나오는 행동 중 하나였다.

"역시 기억의 연속성 아닐까요? 그 답에 제일 공감했어요. 신체가 망가지더라도 경험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고, 그에 대한 감정이 그대로있다면... 그 사람은 대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생각해요."

아토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수진은 가만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여기 와서 나는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됐거든. 떠올렸다 해야하나."

"...네."

그는 말을 잇는다. 감정적이지 않은 목소리이다.

"내가 지금까지 의식해본 적 없는 경험이고, 떠올려본 적 없는 기억이고, 생각하지 않던 감정인데... ...그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면 나는 '아토 하루키'라고 할 수 있는걸까? 내가 전혀 모르는 내가 나를 구성하고 있다면 나는 '아토 하루키'가 맞을까?"

수진은 잠시 문을 바라보았다. 그런 경우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묻고 싶기도 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만한 상황이었기에 이상하다 느껴지지도 않았다. 한참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아토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반대쪽에 가면 다른 내 비전이 있을거야."

"네?"

"내 추리가 맞다면 수진 씨는 진짜 '아토 하루키'를 찾아야 해."

장난이라도 치는거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진지했다. 수진은 몸을 일으켜 문을 열려다 멈추었다.

정말로 진짜 하루키 씨를 찾아야한다면, 이 근처에 또 다른 문이 있을것이다. 그 안엔 있는 사람이 진짜 하루키일지도 모른다.

수진은 그제서야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반대쪽에 통로가 하나, 그 끝엔 문이 하나 더 있는 걸 발견하였다.

"수진 씨, 이해했지?"

수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런 양자택일엔 자신없는데... 일단 다녀올게요, 하루키 씨."

"의외로 망설임 없네?! 상처받을지도~"

아토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수진은 가볍게 웃었다.

"하루키 씨가 자주 하는 말이잖아요. 초절정쿨한사회인이 되어야한다고요."

문 너머에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수진은 그 웃음소리를 듣다 반대편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말은 초절정쿨해야한다 말했지만 마음이 극도로 좋지 않았다. 맙소사. 하루키 씨가 두 명. 포기해야하는 하루키 씨가 한 명? 그럼 대체 어떻게 구분해야하지?

걸음을 옮기는 동안 표정관리가 도저히 되지 않았다.

수진은 침착하게 통로 끝에 위치한 문 앞 면을 노크했다.

"...하루키 씨?"

수진의 목소리에도 문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라? 수진은 입술을 달싹이다 한 번 더 문을 노크했다.

"하루키 씨? 거기 없어요?"

"아쉽지만 난 하루키가 아니야."

어라? 예상하지 못한 미성의 목소리에 수진은 다시 노크하려던 손을 멈추었다.

"...누구..."

"내 이름은 하츠토리 하지메."

맙소사. 여기 책에서 계속 나왔던 그 사람? 그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당혹스러운 마음이 크게 밀려온 수진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후후, 놀란 모양이네. 일단... 침착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수진이 그대로 뒤를돌아 반대쪽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버리려 하기 직전이었다.

"하루키의 추리는 맞았어. 나는 하츠토리 하지메. 아토 하루키를 구성하는 세포 중 일부를 담당했어. 이해되니?"

수진은 눈을 껌벅거리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키를 본인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봐도 틀리진 않아."

"...그렇다고 해서 하루키 씨는 아니죠...?"

"하지만 내가 없으면 하루키는 존재하지 않아."

문 안의 매끄러운 미성이 흘러나왔다.

"하루키가 가진 기억, 경험, 감정, 전부 나도 가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어. 부모가 자식에게 세포를 유전하듯이 나는 하루키와 세포를 공유하고 있는거야. 비슷하지만 다르지. 이해하겠니?"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렵네요."

수진은 이마를 붙잡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는 아까 아토와 한 대화를 떠올렸다. 테세우스의 배 이론. 그럼 테세우스의 배가 사실 두 개였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거지? 진짜 배는 어떻게 구분하는거지? 세포를 공유한다면 그냥 같은 나무로 만든 배가 한 척 더 있는 것에 가까운 거 아닌가. 나무는 계속 교체될 수 있지만 원래 나무가 가졌던 기억을 계속 유지한다면...

"그럼 하츠토리 씨가 없어지면 하루키 씨는 없어질 수 있는건가요?"

"기억이나 비전의 일부를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

...어렵다. 대화를 끝낸 수진은 그럼, 좀 더 생각해볼게요... 라고 말하며 도망치듯 문 두 개의 중간으로 왔다.

> 수진은 아토 하루키의 목소리가 들린 방의 문을 열었다.

방 안엔 라디오 한 대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방 속에서 수진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

수진은 말을 잃었다. 틀린 답이었나봐. 어쩌면 좋지. 라디오가 말했다.

"왜 이 방을 선택했어?"

"하루키 씨가... ...대답했으니까요."

수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라디오에게 대답했다. 라디오는 여전히 아토 하루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건 무슨 의미야?"

"저 방을 두드렸을 땐 하루키 씨가 자기를 하루키 씨라고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발화자 본인이 정의한 내용이 답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네."

라디오는 꼭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도 하는 마냥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느새 목소리는 평소 아토의 것이라기엔 조금 더 어린아이 같은 높은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수진은 그 앞에 주저앉아 얼굴을 감쌌다.

"아니요. 아니요... 그것보다도... 저는 하루키 씨의 의지를 믿었어요."

"의지?"

"자기 자신으로 있고 싶어하는 의지요. 자신이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어떤... 강한 힘이 있어요. 하루키 씨는요."

수진은 얼굴을 감싼 채 어쩔 수 없이 착잡해지는 감각이 밀려오는 걸 실감한다.

"그 의지를 믿어요. 그러니까... ... 다시 선택한다 해도 이 방을 선택했을거에요."

"하루키를 믿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아토 하루키를 믿는다..."

라디오에선 흥미롭단 듯 후후, 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익숙한 웃음소리에 수진은 미간을 살짝 좁히고 다시 라디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거에요? 그, 라디오 너머에 혹시..."

목소리를 송출하는 아토가 있는거 아닐까, 수진은 일말의 기대를 갖고 중얼거렸다.

"아쉽지만 네가 생각하는 건 아니야. 나는 단지 존재. 명명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잡음 없는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출력된다. 수진은 손을 떼고 울 것 같은 얼굴로 라디오를 툭툭 두드려본다.

"그럼 하루키 씨는 어디 있는거에요...?"

라디오는 잠시 말이 없다.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지고천 연구소를 나올 때 발생한 건물 사고로 너랑 같이 깔렸겠지?"

"네에??"

"그 덕분에 잠시 내가 나올 수 있던거지. 난 아토 하루키의 일부니까."

라디오가 묻는다. 

"너는 그를 여전히 아토 하루키라고 명명할 수 있어? 나마저도 쉽게 연기해낼 수 있는 그 남자의 본질이 정확히 나라고 확신할 수 있어?"

> 네.

"정말로?"

>응.

라디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는, 저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하루키 씨를 믿어요. 자신이 모르더라도 자신의 존재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그 사람을, 그 사람이 가진 의지를, 힘을, 인력을..."

수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 다시 잇는다.

"믿고 있어요!"

눈이 떠졌다. 분명 방금도 눈을 뜨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귓가로 정신차리라는 소리가 웅성거리며, 눈을 떴다는 말이 오간다.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아토 하루키의 얼굴이다. 아아, 사고를 당해서, 사고를 당해서 헛걸 본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면 그가 웃으며 대답한다.

"그럼 믿어볼까. 수진이 가진 의지를."

SS+ (지고의 결의)

<포도의 의지> 를 획득합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커플링
#드림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