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10

자캐커플

새벽에 거실에 있는 수화기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한겨울 밤, 클로버는 힘겹게 침대 밖으로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이런 새벽에 전화가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추운 날에 이불 밖에 나가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니다. 

여보세요, 라고 말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엠버의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나, 사람을 죽인 것 같아.”

새벽에 걸려온 최악의 전화멘트 중 탑 3에 들 말이었다. 클로버는 제 귀를 믿지 못하고 수화기를 껌벅거리며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네?"

"급해. 3번지에 벤트와 호퍼 술집 앞으로 와줘."

곧바로 전화가 끊겼다. 이게 무슨 경우없는 일이란 말인가. 멍하니 수화기만 바라보던 클로버는 그걸 왜 저한테… 라고 생각하다가도 결국 옷을 갈아입었다. 그래, 제가 아니면 누가 가겠는가.

***

클로버는 차를 타고 엠버가 말한 곳으로 달려갔다. 겨울이라 바닥이 미끄러워 운전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는 미간을 좁혀 표정을 찌푸리며 핸들을 꺾었다. 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한참동안 엠버는 받지 않았다. 7번 정도 수신음이 반복해 울린 뒤에야 엠버가 받았다.

“어쩌다 그렇게 된겁니까?”

“그냥. 어쩌다보니까~? 나도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

엠버는 으음, 하며 말을 끌었다. 클로버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스토커가 붙었다고 했죠. 그 스토커를 죽인겁니까? 그럼 경찰에 자수하고 정상참작을…”

“음,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스토커가 아닌 것 같아.”

“네?”

클로버의 물음에 엠버는 최대한 가벼워보이려는 투로 말했다.

“모퉁이를 돌아나오다 날 따라오는 사람이 또 있어서 소름이 다 끼치지 뭐야? 그래서 있는 힘껏 팼어.”

클로버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스토커의 얼굴을 아는건가? 그럼 왜 대처하지 않았지? 아니, 그보다 팼다고? 사람을 때려 죽이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분명 그게 쉽지만은 않을텐데… 

"그럼, 죽-.."

클로버가 한참 생각을 하다 입을 여는 순간 엠버가 재촉하듯 말했다.

“오고 있어? 지금 어디쯤이야?”

“가고 있습니다. 3번지에 ‘벤트와 호퍼’ 술집 옆 도로 맞죠?”

엠버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응.”

“일단 금방 가겠습니다.”

클로버는 그리 말하며 차를 몰았다. 바닥이 꽁꽁 얼어 여전히 미끄러웠다. 새벽이니 유난히 심한거겠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클로버는 차를 가게 앞 빈 자리에 새워두고 내렸다. 술집 ‘벤트와 호퍼’는 안으로 좀 더 들어가야 있지만,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가로등 아래에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의 형체 하나와 그 앞에 서 있는 엠버가 보였다. 엠버는 목도리를 고쳐매다 클로버를 발견하고 손을 붕붕 흔들었다. 방금 사람을 죽인 것치고 지나치게 밝은 태도라 생각하며 클로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죽은 건 확실합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안 죽은 사람 앞에서 이러고 있는 꼴도 웃기니까요."

클로버는 겉옷을 덮어놓은 뭉텅이 아래로 삐죽 튀어나온 다리 두 짝이 조금의 미동도 하지 않는 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의 위로 눈이 제법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만 피가 흘러나온 흔적은 없었다. 클로버는 턱을 쓸어내렸다.

"엠버 씨."

"으응~?"

"휴대전화 내역을 도청당하고 있습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엠버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셔야 합니다. 저는 엠버 씨를 도와드릴 수 있고, 지금 상황은 누가봐도 엠버 씨에게 불리해요."

클로버는 한 손으로 제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엠버의 웃는 얼굴이 결국 살짝 일그러졌다.

"왜 그렇게 생각했어?"

"엠버 씨는 거실에 있는 수화기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평소에는 폰으로 걸었을 걸 굳이 집전화로 건게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엠버는 시선을 왼쪽으로 도르륵 굴렸다. 클로버는 차분히 말을 이어왔다.

"그리고 받자마자 본론부터 말하고 끊었죠. 아마 본인의 폰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니 공중전화 같은 걸 사용했을 것 같은데... .. 몇 분 정도 사용이 가능할지 생각을 못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게 엠버 씨나 저나 공중전화를 써본 적 없는 세대고요."

그 말에 엠버는 나름 반박하려는 표정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클로버 씨가 차에서 운전할때 폰으로 통화했잖아?"

"그것도 받기까지 꽤 오래 걸렸죠. 받아야할지 고민했을겁니다."

클로버는 쭈그려 앉아 바닥에 쓰러진 사람의 겉옷을 들춰보았다. 싸웠다기엔 상처 하나, 핏자국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코가 새빨간 걸 제외하면 싸운 흔적이 없었다. 그 코도 취하거나 추워서 얼어붙은 걸로 보였다. 클로버는 역시나, 하는 생각에 겉옷을 들어올려 엠버에게 건넸다. 엠버는 제 겉옷을 받아 주섬주섬 다시 입고 이마를 턱 잡아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폰으로 전화할때 엠버 씨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자 말을 끊으셨습니다."

"..."

"엠버 씨는 벤트와 호퍼 술집 앞 도로가 맞냐고 한 번 더 묻자 잠시 망설였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뭔지 계속 생각해봤지만 역시 어렵더군요."

클로버는 무릎을 털며 일어났다. 그는 잠시 하연 입김을 내뱉더니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엠버는 시선을 이리저리 굴려대다 입을 열었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가 뭐야? 내가 클로버 씨한테 뭔가 숨길 필요는 없잖아."

클로버는 눈을 껌벅이며 대답했다.

"엠버 씨의 스토커가 최근 저에게 붙었었습니다. 그래서 ...잘 처리했고요."

최대한 별일 아니라는 톤으로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엠버의 눈이 커졌다. 예상하지 못한듯한 표정이었다.

"그가 생전 엠버 씨를 쫓아다니던 사람이었으니 그 주변인들은 당연히 그 배후에 당신이 있을거라 의심했을겁니다. 그래서 엠버 씨의 전화내용을 해킹하거나 도청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오늘 새벽에 집전화로 연락이 오고 확신했습니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이 잠시 움찔, 하고 움직였다. 역시 시체로 추측되던 덩어리도 진짜로 죽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클로버는 그럼 그렇지, 생각하고는 엠버를 바라보았다.

"요즘 도청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말해야할까 고민하던 중... 이 사람을 발견했을겁니다. 이 사람 위에 쌓인 눈이 꽤 많았던 거, 알고 있습니까?"

엠버는 볼을 긁적거렸다.

"여기 꽤 오래 누워있었던거겠죠. 예상하기론 노숙자라기엔... ...말끔한지라, 빙판길에 넘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이 사람이 누워있는 걸 발견하고 엠버 씨는 이 사람을 빌미로 스토커의 주변인이 나오기 힘든 새벽에 부르자, 싶어져서 근처에 있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었을겁니다. 맞습니까?"

"...명탐정이네에~..."

엠버는 힘없이 대답했다. 클로버는 별말씀을요. 하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있습니다."

"뭔데?"

클로버는 눈을 빙 굴렸다. 그의 시선이 위치한 곳은 제 뒤 어딘가였다.

"왜 빌미가 필요했습니까?"

"응?"

"우리는 친구니까 그냥 불러도 괜찮잖습니까. 굳이 이런 빌미를 찾아내서 부른 게 이상해서요."

엠버는 한참 고민하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그 순간, 클로버가 제 뒤에서 달려든 사람의 턱을 발차기로 빠악, 소리 나게 날려버렸다. 재빠른 처치였다. 뒤에서 달려온 사람의 손엔 꽤 두꺼운 각목이 들려 있었다. 클로버는 음, 하는 소리를 내었다.

"스토커의 주변인이 꽤 많은 모양입니다."

엠버는 후다닥 걸음을 옮겨 거리에 세워놓은 클로버의 차로 달려갔다.

"클로버 씨, 타!!"

"네?"

"한둘이 아니야!!"

부우웅, 엔진음과 함께 자동차가 쏜살같이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클로버는 뒤에서 어딘가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걸 보았다. 엠버는 백미러를 힐끔 보더니 엑셀을 더 쎄게 밟았다.

***

어스름히 아침이 밝아온다. 점점 주변이 환해지는 걸 본 클로버는 그제서야 잡고 있던 차 손잡이를 놓았다.

"차를 사람이 쫓아올 수 있을리가 없지..."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엠버는 잔뜩 긴장했는지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클로버는 잠시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해보고는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는 왜?"

"어제 대사고가 났으니까 주민이나 CCTV에라도 잡혀서 뉴스에 보도되지 않았을까 하고요."

잠시 치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라디오에서 사람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흘러나왔다.

한참동안 밤새 일어난 사건사고가 흘러나왔지만 그 중에 3번지 술집 앞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한 기사는 없었다.

"속보입니다. **시 **주 모 술집 앞에서 마약범죄 일당이 우연히 붙잡혔습니다. 일당을 붙잡은 건 형사, 맥 버디로-..."

이게 무슨 소리야? 엠버는 핸들을 잡고 표정을 찌푸렸다.

"술집 앞에 넘어진 뒤로 정신을 잃었다 떠보니 눈 앞에 범죄 조직 일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라고 증언했습니다."

"아하..."

클로버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어벙한 표정을 지은 엠버에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어, 어어... 다행이네에."

엠버는 그리 말하고는 금방 화색이 돌았다.

"역시 클로버 씨야! 같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잘 된다니까!!"

신나게 조잘거리는 엠버의 모습이 썩 괜찮았기에 클로버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뭐, 가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엠버는 스토커가 붙었다고 믿고 있고, 자신은 그런 스토커의 주변인들을 모두 치워준 것 아닌가.

어느새 차는 속도를 줄여 느리게 가고 있었다.

***

네. 깔끔하게 뒷처리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견된 도청 프로그램은 삭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제 동료한테는 피해 안가게 해주세요.

제 친구요? 아뇨, 친구까지는… 어쨌든, 괜찮습니다. 본인한테 스토커가 붙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앞으로는 이런 일 안 생기게 주의 부탁드립니다.

네.

클로버는 전화를 끊고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았다. 창 밖에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간만에 먼 곳으로 달려와 놀러온 기분은 꽤 나쁘지 않았다. 같이 하는 사람도 꽤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고, 일도 해결 됐고. 새벽에 달려나와서 조금 졸린 것 빼곤 좋았다.

"무슨 전화 했어, 클로버 씨?"

엠버가 욕실에서 나오며 물었다.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팡팡 털며 클로버의 옆에 풀썩 앉고는 서랍 위에 놓인 메뉴판을 열었다. 여러가지 식사류가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룸서비스… 가능! 엠버는 환하게 웃으며 뭘 먹을지 이리저리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클로버는 나른하게 침대에 기대서 가볍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그럼 호텔 온김에 뭐라도 먹자.”

엠버는 신나서 룸서비스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클로버는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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