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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1일의 보랏빛 정원

Bookstore, Der violette Garten.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12월의 오후. 나와 아셀라는 볕이 잘 드는 창가 앞의 식탁에서 점심 식사를 챙겼다. 접시에 식기가 부딛히는 소리, 도란도란 짧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공기 중에 퍼졌다.

시간은 아주 느긋하고 여유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와 다르게 내 속은 영 침착하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아셀라에게 주고 싶은 물건이 있었는데, '그것'을 건넬 타이밍을 여전히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준비는 분명 철저했건만 어째서 아직도 제자리걸음인 걸까. 타이밍의 신은 왜 이렇게 짓궂은 것일까. 나는 어째서인지 고대 그리스 사람처럼 나의 실행력을 탓하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매끄럽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아셀라는 내 마음이 콩밭이 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아챘을 것이다. 타인의 기색을 잘 살피는 애였으니까.

이것 봐. 내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날 보면서,

"그레텔,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

이렇게 물어보잖아.

거창한 마음으로 건네주려던 것도 아니었고, 그 '타이밍'이 뭐라고 아직도 전해주지 못했나 싶어져서 나 자신이 조금 우스워졌다. 어쩌면 내 계획과 달리 건네줄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걱정하는 아셀라에게는 별일 아니라고 일러두고는, 가져올 게 있으니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3층의 내 방으로 가서 책상 위에 고이 모셔두었던 물건을 들고 그가 기다리는 식탁 앞으로 왔다.

"아셀라. 저기… 잠시 할 말이 있는데. 들어줄래?"

"당연하지. 그런데 무슨 할 말이길래 그렇게 진지하게 물어봐."

아셀라는 살짝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맞이해주었다. 그의 눈에는 내가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식탁 앞에 다시 앉아서는 그에게 잘 보이도록 봉투를 건네주었다. 내가 아셀라에게 건네주기 위해서 반년이나 고민했던 '선물'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서 선물해야 하는 그런 물건도 아니었고, 흔한 디자인의 투박한 서류봉투였다. 그것을 아셀라에게 건네주자, 안의 내용물이 무언가와 부딪혀 '짤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직접 열어 봐. 너한테 언제 줄지 계속 고민했던 건데. 이참에 주려고."

"설마, 이것 때문에 계속 신경이 다른 곳에 쏠려있던 거였어?"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농담이야. 어디 보자. 그럼, 우리 레띠가 준비한 선물이 대체 무얼까나."

아셀라는 바로 봉투를 열고는 새하얀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 종이에 빼곡히 적힌 검은 글자들을 읽을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미묘해졌다. 딱히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지는 않을 텐데,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지.

"그레텔, 이게 뭔지 알고 나한테 주는 거야?"

"이 책방 건물의 등기권리증이잖아."

"왜 이걸 왜 나한테 보여 주는 건데…?"

"그야 당연히…. 이 집에 대한 권리를 너와 공동 소유로 하고 싶어서."

아셀라는 내 말을 듣더니 곧바로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내 말이 그렇게 충격적인가.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너를 '이쪽'에 붙잡고 싶어서 그랬어. 이런 건, 조금 그래?"

"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 지금 사실 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그런 말이 먼저 나오다니, 적잖게 당황한 걸까. 아셀라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횡설수설한 모습은 어쩐지 처음 보는 듯해서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할 게 아니라. 하지만 나도 아셀라의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혼란스럽게 했다면 미안해. 그래도 그 마음은 진심이야."

"너 말이야…. 서류로 묶이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고서 이러는 거 맞지?"

"그 뜻을 모를 리 없잖아. 너도 알면서."

그래도 내 제안을 거절하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앉아 있던 의자를 아셀라의 옆자리로 옮기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서류에 대한 답은 천천히 줘도 돼.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이거라도 받아 줘."

나는 서류를 읽느라 여태 신경 쓰지 못한, 봉투 아래에 깊숙이 숨어 있던 물건을 꺼내고는 아셀라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기다란 황동색 열쇠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우리'집 열쇠야. 너한테는 아직 건네주지 않았던 것 같아서."

마주 포갠 손을 놓지 않고,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여기서 지내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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