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11

세포신곡, 아토 하루키+이소이 사네미츠

무슨 소릴 하는거야? 천국엔 갈 수 없어. 

그 애를 낳은 날부터 운명은 그렇게 정해졌으니까.


 -이소이 사네미츠의 쪽지 중 

의뢰인, 후지이사와 시이나는 최근 폐공장으로 오랫동안 버려진 건물을 사들였다고 말했다. 여기까진 아주 평범한 일이었다. 이 이후에 나온 말이 후지이사와 시이나가 오토와 사무소에 온 이유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건물을 일단 제대로 된 공장으로 만들려면... 재정비나 수리가 필요할 것 아닙니까."

"네. 그렇죠."

"...그런데 지금 공장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서요."

그 현상을 적당히 요약하자면 한마디로 전형적인 '폴터가이스트 현상'이었다. 분명 쓰레기는 전부 버렸는데 극심한 악취가 나고, 선반 위에 놓인 물건이 멋대로 떨어지고, 문이 바람없이도 쾅 하고 닫히는 등. 아토 하루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현상을 만들어낸 범인을 찾아내겠습니다."

"...그, 귀신의 짓이 아니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네."

아토 하루키는 딱 떨어지는 투로 말했다. 그는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람보다 무서운 건 세상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의뢰인, 후지이사와가 방을 나가고 나자 오토와 루이가 말했다.

"잘도 확신했군."

"그렇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귀신의 짓이라고 말하면 그냥 무당을 찾아갈지도 모르고."

"그런 이유였나. ...넌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면모가 있군."

하루키는 그의 말에 하하, 하고 웃었다. 

"별 말씀을."

"칭찬이 아니야."

그렇게 아토 하루키는 사건 해결을 위해 폐공장으로 직접 출두했다. 의뢰 해결을 위해서라면 탐정이 직접 나서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안에서 갈색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땋아내려 수첩에 무언가 메모하는 민달팽이-그러니까, 이소이 사네미츠-를 발견한 것이다.

"..."

"..."

"아니, 잠깐. 하루키? 가지 말아줘! 잠깐!! 눈만 마주쳤잖아!!"

"아, 폴터가이스트 현상에 헛것이 보이는 것도 있지..."

"헛것이 아니잖아?? 사네미츠 씨는 진짜로 여기 있다고???"

"어휴, 헛소리."

하루키와 사네미츠는 한참동안 공방전을 벌이다 결국 하루키의 항복으로 끝났다.

"에휴. 됐어요. 사네미츠 씨. 소재라도 얻으러 오신거에요?"

"...응. 눈치 빠르네."

"탐정이니까요. 사실 여기에 왔을때 마주치기 유력한 인물 5명 중 한 명이었어요."

"나머지 네 명은 누군데?"

"당신 동료들이요."

"아."

하루키가 폐병동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동안 사네미츠는 하루키의 옆에서 연신 눈치를 보며 쫓아왔다. 결국 참지 못한 하루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정말. 왜 따라다녀요? 알아서 취재하세요!"

"그, 그치만 하루키~ 여기 위험하다고? 조사해보니까..."

"모르고 왔겠어요??"

"그렇지만~..."

사네미츠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더니 다시 시무룩해졌다. 하루키는 그 모습을 보고 기가 차는 걸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요. 알겠어요. 귀찮게만 굴지 마세요."

파아앗. 사네미츠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하루키는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못되게 굴면 싫어할텐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 폐공장 말이야, 겨우 5년 전에 가동을 멈췄대."

"정말요? 한 20년은 됐을 것 같은데..."

"이상하지?"

사네미츠는 수첩에 무언가 써내렸다.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 느낀거지. 이 공장이 폐공장이 된 이유가 화재 때문이란 건 알지만, 그 화재가 어째서 일어났는지는 미지수라서 말이야."

사네미츠는 디지털 카메라로 찰칵, 하고 허공을 찍었다. 

하루키는 이리저리 둘러보다 네네, 하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루키, 그거 알아? 이 폐공장이 왜 5년이나 방치됐는지. ...의외로 이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더라고." 

사네미츠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하루키의 눈치를 힐끔거리며 보았다. 구석에 놓은 종이 쪼가리를 펼쳐보던 하루키는 아, 정말요. 하고 성의 없이 대답했다.

"이 폐공장이 사실 사이비 종교의 예배당이었던거야. 낮에는 내내 종교 존속을 위해 공장 일을 시키고, 밤에는 예배를 했던거지. 그래서 이 시골 마을 사람들은 다 이 공장을 싫어했대."

"그랬을 것 같네요."

하루키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벽을 바라보다 몇 번 통통 두드려보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옆에 놓은 의자를 들어올려 한바퀴 빙글 돌았다. 그리고 원심력을 이용해 힘껏 벽에 부딪혔다. 하루키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몰라 당황한 사네미츠와 다르게 벽은 쉽게 우르르 무너졌다. 사네미츠는 그 모습을 보고 당황해 입이 벌어졌다. 

"뭐, 뭐야? 이게 무슨... 아니, 공간? 옆에는 방 문이 없는데..."

"가벽이에요. 겉으로 보기에 들어가는 문이 없으니까, 통로는 아마 안에서 찾을 수 있겠죠. 아, 찾았다."

하루키는 바닥에 있던 문을 열었다. 바닥의 먼지 쌓인 카펫을 들추자 아래에 작은 문고리가 달린 작은 문이 나왔다. 하루키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 안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사네미츠는 당황한 얼굴로 하루키와 문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네. 지하가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정답이었네요. 럭키~"

하루키가 자연스럽게 계단으로 내려가려 걸음을 옮기자 사네미츠가 그의 외투를 꽉 붙잡았다. 

"잠깐잠깐잠깐~!!!! 무리잖아!! 이 아래에 뭐가 있을 줄 알고 내려가??"

"당연히 의뢰인이 부탁한 내용이 있겠죠. 폴터가이스트 현상의 근원지가 지하잖아요? 이거 놔요, 민달팽이."

"그, 그렇지만!! 위험하잖아!!"

"전기충격기도 있고, 괜찮아요. 최근엔 예전 일 때문에 호신용품을 들고 다니거든요."

사네미츠는 그 말에 또 안절부절 못하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나도 같이 내려가."

"혼자 있기 무서워요? 겁쟁이."

"그런게 아니잖아!"

두 사람은 가파른 계단을 휘청휘청 걸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하루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공장에 불을 낸 사람은 이 마을에 살던 사람이었을거에요. 상당히 철저하게 범행을 시도했죠. 건물 근처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를 던진거에요."

"아? 정말?"

"네. 제 추리가 맞다면 그래요. 이 공장엔 불에 탈만한 소재가 거의 없어서... ...불이 이렇게 삽시간에 번지려면 기름이 필요해요."

하루키의 말에 사네미츠는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불을 왜 붙인걸까?"

그의 말에 하루키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몇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제가 생각한 쪽이 아니면 좋겠네요."

"응? 그건 또 왜?"

"일단 내려가 보죠."

계단을 타고 내려가자 사네미츠와 하루키는 점점 악취의 근원지로 다가가고 있다는 직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점점 역해지는 냄새에 두 사람은 코를 막았다. 마지막 계단에 도착했지만 지하실은 온통 깜깜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수도 없었다.

"눈이 어둠에 좀 익숙해져야겠는걸~... 아니다. 손전등을 켜야겠다."

사네미츠는 가방을 뒤져 손전등을 꺼내었다. 하루키는 휴대폰을 꺼내 플래쉬를 꺼내려다 말았다. 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손전등을 켜자 눈 앞에 보인 광경은 차마 말로 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시체 더미들이 수두룩하게 쌓인 산이었다. 사네미츠는 그 모습을 보고 우욱, 하며 헛구역질을 했다. 하루키는 익숙하게 그가 떨어트릴 뻔한 손전등을 받아들고 천천히 지하실을 둘러보았다.

"...단체 실종의 원인은 찾았네요. 불이 났을 때 여기서 도망치지 못했을거에요." 

"그, 그럼..."

"여기서 예배를 올리다 질식사 한거겠죠."

하루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가장 안 쪽으로 들어갔다. 다들 문 방향에서 계단을 오르려다 죽은 듯 계단 앞에 쌓여 있었지만, 가장 안 쪽에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는 시체가 한 구 있었다. 하루키는 그 시체의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내었다. 지갑 안에 있는 신분증을 꺼낸 하루키는 흠, 하는 소리를 내었다.

"네. 맞네요."

"...뭐가?"

"의뢰인의 어머니에요. 이 사람. '후지이사와 미코토' 라고 적혀 있잖아요."

사네미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루키는 으음,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어머니가 사이비종교에 빠졌단 걸 안 딸이 불을 냈을거에요. 어머니까지 죽인 이유는 모르겠네요. 그 날 어머니도 예배당에 있을거라 생각을 못했든, 사이비에 빠져 자신을 방치한 어머니가 싫었든... ... 이유가 있겠죠."

사네미츠는 그 말에 아. 하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만약에 어머니가 예배당에 없다고 생각해서 불을 낸거라면, ...용기있네."

"여긴 얼음능력을 쓸 수 있는 사람 같은 거 없으니까요. 다 죽여버릴 심산이었겠죠." 

하루키의 말에 사네미츠는 어색하게 웃었다. 하루키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시선을 돌려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악취의 근원도 찾았고, 이상현상은 구마의식이든 뭐든 한 번 하면 다 괜찮아지겠죠. 누가 죽었는지도 알았잖아요? 이제 그만 나가는 게-.."

"하루키."

"왜요?" 

사네미츠는 입을 열었다 닫고, 또 열었다 닫는 일을 반복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어찌 말해야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루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만히 기다렸다.

"너는... … 딸이 방치한 어머니가 싫어서 불을 냈을거라 생각해?"

하루키는 그를 바라본다. 어릴적처럼 짜증도 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사람. 훤칠한 미남이라기보단 작고 초라해져버린 남자를 가만히 쳐다보다 대답했다.

"네. 너무너무 미워서, 견딜 수 없어서. …그럼 불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사형 선고 마냥 단호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하루키의 입에서 다시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어머니는 딸에게 용서받고 싶던 거 아닐까요.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단 걸 알아서, 업보라 생각한거죠. 그래서 나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요."

하루키는 잠시 안 쪽에 있는 후지이사와 미코토의 시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말을 끊은 하루키가 말했다.

"그럼 저는 용서할래요."

그리고 또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용서하고 싶어요."

말을 마친 하루키는 몸을 돌려 계단으로 향했다.

사네미츠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얼굴 위로 환한 웃음을 띄우고는 쫓아갔다.

"같이 가자, 하루키.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사줄게. 응?"

"갑자기 뭐에요? 징그럽게. 으악, 달라붙지 마요!”

하루키가 질색을 하자 사네미츠는 웃으며 더 그에게 달라붙었다. 하루키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지하실을 빠져나온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계단을 끝까지 올라왔다.

아주 길었던 것 같은 어둠 끝에선 어느새 노을이 지며 오렌지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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