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디케

바이올린

[1차] 까마귀 여행자 마우로 x 세계의 지도자 에우리디케

오랜만에 창고를 정리하던 도중, 나는 그 창고에서 처음 보는 물건을 발견했다. 귀금속을 모아둔 보석함 옆에, 갈색의 나무로 만들어진 바이올린이 열린 케이스 안에 놓여 있었다. 그때 나는 신비로운 까마귀이자 나의 친구인 ‘에피’에게 그 바이올린을 책상 위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에피는 별거 아니라는 것처럼 한 번 ‘까악’ 하고 울고는, 검은 연기로 변해 바이올린과 함께 사라졌다.

그 바이올린을 발견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에피의 주인이자 까마귀 여행자인 '마우로 디안젤로'가 긴 여행을 하던 도중 내 저택에 잠시 들렀다. 저택을 나가지 못하는 나였기에 마우로의 방문은 언제나 반가웠다. 이번에 그는 내 서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현신이 끝나자마자 나는 걸어가 그의 품에 안겼고, 그는 거부하지 않고 나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먼저 팔을 풀고 떨어진 그가 내 양손을 어루만졌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그는 항상 다정했고, 여전히 친절했다. 그래서 그가 좋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내 어깨에 앉아있는 에피를 보며 대답했다.

“에피가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어요.”

다시 한번 내가 그의 품에 안겼다. 비록 그의 몸은 차가웠지만 나는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좋았다. 그렇게 몸을 맞대고 있다가, 이번에는 내가 먼저 떨어졌다. 얼른 그에게 바이올린을 보여주고 싶었다.

“참, 당신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는 에피가 서재의 책상 한쪽에 가져다 놓은 바이올린 케이스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뚜껑을 열자, 처음 발견했을 때 보았던 고급스러운 바이올린과 활이 빛을 받았다.  그 사이에 내 옆으로 온 마우로는 곧바로 그 악기에 관심을 가졌다.

“바이올린이네?”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오기 전에 창고를 정리하다가 발견했어요. 아무리 봐도 귀한 물건인 것 같은데, 사정이 있어서 버렸나 봐요.”

나는 이 물건이 버려진 물건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나의 세계는 버려진 것들만 오는 곳이니까. 그러나 이 버려진 물건이 어떠한 사정을 가지고 버려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한때 바이올린에 큰 꿈을 품은 아이가 그 꿈을 포기하면서 같이 버렸을까, 아니면 또 다른 사연이 있을까. 마우로는 내가 했던 것처럼 조심스럽게 바이올린을 어루만졌다.

그때, 내 어깨에 앉아있던 에피가 책상 위로 내려왔다. 그 고귀한 동물은 부리로 바이올린 케이스를 마우로쪽으로 조금 밀었다. 둘은 텔레파시로 대화가 가능하니,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없는 나에게도 의미가 전달되도록 일부러 행동으로 표출한 것 같았다. 에피는 참으로 똑똑한 동물이었다. 마우로는 조용히 에피와 바이올린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나더러 바이올린을 연주하라고?”

에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마우로를 보았다. 그가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안다는 건 전혀 몰랐다.

“연주할 줄 알아요?”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케이스 안에서 바이올린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장갑을 낀 손이 바이올린을 천천히, 마치 소중한 물건을 만지는 것처럼 어루만졌다.

“배우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연주한 게 워낙 오래전이라 자신은 없네.”

“그래도 듣고 싶어요.”

가면 뒤에서 그의 낮은 웃음이 들려왔다. 그의 웃음에는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힘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어깨와 턱 사이에 바이올린을 끼우더니, 케이스에서 활을 집어 들었다. 곡을 고르려는 것처럼 잠시 생각에 잠긴 그가 바이올린의 현 위에 활을 올려놓았다.

“네가 듣고 싶어 하니까, 그럼 간단한 곡 하나 연주해 줄게.”

활이 바이올린의 현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기에서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바이올린이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그가 연주하는 곡은 밝으면서도 슬픈 곡이었다. 바이올린은 노래하다가도 때론 절규했고, 때론 속삭였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작게 헛웃음을 냈다.

‘당신은 너무 겸손해요.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그러다 옆을 슬쩍 보니, 에피도 나처럼 연주에 푹 빠진 것 같았다. 그 까마귀는 눈까지 감고 마우로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저 까마귀는 여전히 신기하다. 마우로의 연주도 점점 끝을 향했다. 바이올린이 마지막 음을 내자, 나와 에피는 마우로를 향해 박수를 쳤다. 마우로는 마치 실제 무대 위에 올라간 연주자처럼 깊게 인사했다.

“휴, 오랜만에 연주하니까 확실히 힘드네.”

나는 아니라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멋있었어요.”

“그랬어?”

“네. 당연하죠."

마우로는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이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내 대답을 들은 그는 작은 웃음과 함께 바이올린과 활을 다시 케이스에 조심스럽게 넣은 후, 잠금장치로 잘 잠갔다.

“확실히 좋은 악기인 것 같아. 비록 주인은 이 악기를 버렸지만…. 너라도 잘 간직하고 있어.”

“다음에 오면 또 연주해 줄 거예요?”

조금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었지만, 그의 대단한 연주를 한 번 더 들을 수 있다면 또 듣고 싶었다. 마우로는 내 질문을 전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다음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그는 항상 신사였다. 나는 바이올린 케이스를 책상의 한쪽으로 치워두었다. 그사이에 마우로는 다른 곳에서 의자를 내 옆으로 끌고 와 앉았다. 에피가 자신의 주인인 그의 어깨 위로 올라가자, 그는 자신의 반려동물이자 동반자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둘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번엔 어디로 갔어요?”

“음….”

운을 뗀 그가 겉옷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는 항상 여행을 가면 그곳의 물건 하나를 가져왔다. 이번에 그가 가져온 물건은 아주 기분 나쁜, 검은색의 찐득한 무언가가 묻어 있는 작은 회색 칩이었다. 물건의 상태를 보니, 그가 다녀온 곳이 평범한 세계는 아닌 듯했다. 이번에는 또 그곳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고, 또 얼마나 재밌는 경험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마우로는 칩을 다시 가져가,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운 채로 나에게 보여주었다. 무언가 파란 것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미래에서 온 물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어떤 세계도 갈 수 있는 여행자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가면 뒤에서 낮은 웃음이 들려왔다. 얼핏 장난기가 담긴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주 먼 곳엘 다녀왔지.”

그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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