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밸런타인데이 - 미르

수년 전.

“우와, 올해도 책상에 이렇게 쌓였네⋯⋯.”

“남의 일처럼 말하면 어떡해. 여기 네 자리잖아.”

밸런타인데이.

매년 익명으로, 혹은 아는 사람이 나에게 초콜릿을 주는 덕분에 그 날은 자연스럽게 내 머리에 각인이 되었다. 만화의 단골 소재라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내 책상 위에는 평범한 시판 초콜릿이나, 조금 포장해놓은 초콜릿, 초콜릿 과자, 직접 만들었다는 쪽지가 들어 있는⋯⋯.

“수제?”

“아하하하,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있네요.”

가끔 간단하게 볶음밥 정돈 하지만 디저트를 만들어본 적은 없었던 당시의 나는 대단하네,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건, 진심으로 좋아하는 애가 보낸 거 아냐?”

“네? 아니, 그럴 리가요! 쪽지에 그런 내용은 없고⋯⋯ 전부 우정초코일 거예요.”

“⋯⋯응. 뭐, 보낸 사람도 그런 반응은 예상했겠지. 하여간 이 학교는 인기 투탑이 나란히⋯⋯.”

깊은 한숨을 쉬면서 환기를 위해 잠시 열어둔 창문을 전부 닫고, 그 친구는 내 옆자리인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일부러 오늘은 비워서 가져온 책가방에 조심히 초콜릿들을 넣었다. 그리고 초콜릿 과자를 꺼내서 하나는 입에 물고, 다른 하나를 꺼내 들었다.

“머흘내여?”

“응.”

옆사람과 간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즐거운 날이기도 하다.


“우으으으윽⋯⋯ 맛없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시점, 나는 첫 초콜릿 만들기를 도전하고 있었다.

나는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나 맛없는 걸, 선배에게 주고 싶지는 않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머리를 싸맸다. 싫어어어⋯⋯.

그렇다. 나는 상현 선배와 결혼하고, 그리고, 이러저러해서, 돌아오는 첫 밸런타인데이에 수제 초콜릿을 선물할 생각이었다. 언제나 받는 입장이었던 내가,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첫 밸런타인데이다. 이런 걸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하거나 선배가 웃으면서 초콜릿을 받아주는 걸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웃음이 새어나온다.

⋯⋯아니, 이게 아니라!

나는 머리를 휘휘 저어 잡생각을 떨치고 선배 몰래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돌아온 본가의 부엌을 돌아보았다. 여기저기 폭발한(어째서?) 초콜릿이 묻어 있고, 완성은 했지만 지옥의 맛이 느껴지는 초콜릿이 여러 개. 그리고 소진된 재료.

으음.

“망한 건가?”

“당연하지, 이 바보야!”

그때, 문이 쾅 열리며 조금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쌍둥이 동생 중 하나, 범이가 튀어나왔다. 아, 이런. 들켰다.

“지금 집에 이리 녀석도 없으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랬잖아! 왜 안 기다린 거야?”

한숨을 쉬면서도 칼에 베인 손을 처치해주는 범이의 질문에 나는 입술을 삐쭉, 우물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다른 사람 도움없이 나 혼자 만든 걸 선물하면, 선배가 나 보고 대단하다고 해줄지도 모르잖아.”

시간의 흐름인 건지, 아니면 내가 이상해진 건지. 전에는 없었던 욕심이 들고는 한다. 내가 혼자 해내고 싶다든지, 더 칭찬받고 싶다든지, 그치만 잘했다는 칭찬보다 멋있다거나 대단하다거나 하는 말을 더 듣고 싶다든지⋯⋯ 동생들이 ‘이렇게 해라’라고 말하면 그건 절대 하고 싶지 않아진다든지.

미,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나도 이런 감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이 광경이랑 손 전부 사진 찍어서 제형한테 보낸다.”

“안돼!”

“제형한테 보내는 걸로 부족하면 소명 선배님한테도 보낼까?”

“더 안돼!!!”

두 사람 다 이 처참한 부엌은 둘째치고, 크게 썰어버린 손을 보면 걱정할 것이다. 물론 나는 자연 치유도 빠른 타입이니 그냥 둬도 흉터는 남지 않겠지만⋯⋯ 걱정이 심하시니까.

그러니까 절대 사진을 보내게 둬서는 안 된다.

나는 범이를 감시하려고 빤히 바라보았다.

“안 보낼 거니까 그 초콜릿 묻은 얼굴 치워. 그건 그렇고 이제 어쩐다. 나도 초콜릿은 못 만들어서 형이 사고치는 걸 막으러 온 것밖에 안 되거든.”

“사고라니!”

“이미 쳤잖아.”

반박할 말이 사라져버렸다. 얘기하면서 치우고는 있지만 도저히 안 치워지는 부엌을 보면, 반박할 수가 없게 된다.

참고로 실패한 초콜릿은 내가 먹어서 증거인멸을 하려고 했는데 버리라며 압수당했다. 히잉.

그렇게, 내 첫 초콜릿 만들기는 실패했다.


“그래서 도와달라고 부른 거예요!”

“응. 그랬구나. 그건 정말 힘들었겠네⋯⋯.”

그래서 이번에는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아직 내가 혼자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공적으로 초콜릿을 줄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아니까.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다.

“졸업하기 직전에, 이른 밸런타인이라면서 수제 초콜릿을 주셨죠? 그거 맛있었어요!”

“다행이네.”

“그래서 도와달라고 부른 거예요!”

“⋯⋯응, 그래, 그렇구나.”

응? 어째서인지 웃고 있는 얼굴에 위화감이 느껴진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여, 역시 혼자 만들거나 사서 드리는 게 나았으려나.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친구는 갑자기 환한 웃음을 보여주며 말했다.

“초콜릿 만들기는 많이 해봤으니까 잘 찾아왔어. 그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할 테니까, 만드는 모습을 보여줄래?”

“네!”

기분 탓이었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원래 했던 대로 초콜릿 재료를 그대로 프라이팬에──

“자자자잠깐!”

“어, 벌써 잠깐이에요?”

“초콜릿은 그렇게 녹이는 거 아니야⋯⋯.”

⋯⋯아무래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틀려 먹은 거 같다.

“그걸 넣겠다고?! 그건 독초야!”

“불조절! 불조절!”

“미르야, 초콜릿 만들기에 실험 정신은 필요없어⋯⋯.”

“칼 쥐고 있을 땐 내 손 말고 네 손을 봐야지⋯⋯!”

“거기 손 넣으면 데여!”

“대체 뭘 넣으려는 거야, 당장 그 손 멈춰!”

“뭐? 만화에서 본 재료⋯⋯? 아니, 그건⋯⋯.”

한바탕 끝난 뒤에 친구는 바닥에 엎어져버렸다.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았다.

어, 어쩌지.

“약 가져올까요?”

“이건 다른 종류의 어지러움이니까 괜찮아.”

괜찮구나⋯⋯.

나는 아직 걱정이 되었지만 그 말이 거짓말은 아닌 듯, 곧장 일어섰다.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줬는데, 잠시 내 왼손에 끼워진 반지를 보는 듯했다.

“진짜 결혼했구나.”

“네에⋯⋯. 그런데, 결혼식에도 와주신 걸로 기억하는 데요.”

“음, 그렇긴 한데 지금 이 상황을 보니까, 좀.”

그 시선 너머에는 어제보다는 낫지만 오늘도 어째서인지 폭발해버린 초콜릿 조각들이 있었다. 어제의 참상을 아는 나는 아무렇지 않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어지러워질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그때, 살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결혼생활은 즐거워?”

“네. 제가 아직 어려서, 아니 그전에 실수투성이라, 선배를 당황하게 만드는 날이 많지만 선배는 상냥해서 천천히 제가 나아갈 수 있게 맞춰 주시거든요. 게다가 늘 제 옆에 있어주고⋯⋯.”

조금 삐걱댄 적은 있었지만 그것도 앞으로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 곁에 있어주는 가족이 한 명 늘었다. 이런 생활이 즐겁지 않을 리가.

아, 나열해보니 예전에 동생들이랑 말했던 내 이상형이랑 똑같은 표현들이네⋯⋯. 그, 그런 이유로 좋아진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살짝 부끄러워졌다.

“그럼 됐어. 솔직히 너니까 걱정했거든.”

“으에⋯⋯?”

“그럼 초콜릿은 이제 내가 하라는 대로 만들자! 알겠지?”

다소 지친 듯한 표정에, 억지를 부릴 수가 없어졌다.

괘, 괜찮아! 내 손으로 만든 거면 일단 목적은 달성한 거니까!


그리고 조금 후에,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들이 눈앞에 탄생했다. 초콜릿과 같이 넣은 재료도 다양해서 색깔이 전부 다른 것이 특징적이다.

“이제 굳었으니 이걸로 감싸서 포장하면 돼.”

“네!”

포장 상자 안에 하나씩, 하나씩 조심히 넣고 닫은 후에 리본으로 예쁘게 묶었다. 이제 정말로 코앞으로 다가온 날짜에 완성된 초콜릿까지 보니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 많이 만들어진 초콜릿은 다르게 포장해서⋯⋯.

“응?”

“오늘은 도와줘서 고마워요. 이건 보답, 이라기엔 뭐하지만 선물이에요.”

“의리라는 거야?”

“아뇨, 우정이에요!”

비닐 포장된 초콜릿을 든 상태로 환히 웃고 있는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주고(그야 그게 예의니까⋯), 나는 비닐 포장 초콜릿 세 개와 상자를 미리 챙겨온 종이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범이와 이리에게 미리 주고 나왔다.

2월의 차가운 바람에 즐거운 콧노래가 나왔다.

으흐흥, 어떤 식으로 건넬까?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본 만화에서는──”


해피 발렌타인입니다~

미르가 상현씨에게 초콜릿을 건네주는 방법… 새벽에 일어나서, 훈련은 조금만 하고, 초콜릿 상자 들고, 만화에서 본 대로 옷을 벗어서(전부), 침대에 올라가서, 상현씨 위에 올라타고, 우선 깨워서, 깨는 듯하면 초콜릿 하나를 물고 입에서 입으로 넘겨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해보니까(나x 미르가o) 빨리 넘겨주지 않으면 침이 흘러서 힘들다고 합니다.

당연하지만 굳이 옷을 벗는 게 무슨 의미인지,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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