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사건번호 007

게임 림버스 컴퍼니, 이상드림

달칵, 치이-...

***

네, 맞아요. 제가 죽였어요.

관리자님한테는 죄송하게 됐네요. 되살릴때마다 괴로우시다고 했죠. 그런데 뭐, 살릴 수 있으면 된 거 아닌가요. 하하. 장난이예요. 살인을 없던 일로 만들 수 있어도 본인의 손가락을 자르는 고통을 감내하기 싫은 게 인간이죠. 알고말고요. 당연해요. 으음? 비꼰 거 아니예요. 정말로.

지금 이유를 물으시는건가요? 흐음, 좋아요. 저는 제가 보편적인 사고방식을 하는 사람 안에 속하지 않는단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 정도는 이해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물론 아니란 걸 방금 알았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음엔 좀 더 평범하고 따분한 행동을 할 수 있을거예요. 아닐지도 모르고요.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감정이 어디 막아지나요. 특히 사랑은 쉽게 감춰지는 감정도 아니잖아요. 그렇죠?

아아, 맞아. 이유를 물었죠.

간단하고 쉽고 어렵지 않고 시시한 대답을 해줄게요. 그야 당연히 사랑해서랍니다. 저도 최근에 깨달았어요. 제가 이상을 사랑한다고요. 이상을 사랑하니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죽이고 싶었다. 네네. 맞아요.

뭐, 시체성애니 뭐니 하는 이상성욕적인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맞다고 대답할게요. 해명하기엔 제가 조금 게으른가봐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는 통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귀찮은걸까요? 아아, 맞아. 귀찮아요. 통하지 않을 게 뻔한 사람들은.

아하.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굳이 없거든요. 제 삼자, 심지어 상대방에게 이해받길 원하는 것 자체가 낭만적이지 않잖아요. 그건 명백히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랑에 대해 생각해봐요. 사랑은 비이해의 독점이예요. 상대의 세계에서 모르는 게 없는 게 아니라, 모든 걸 알고 있지만 그 모든 걸 눈감아줄 유일한 권리를 갖게 되는 거라구요.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만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하진 않아해요. 저는 이게 굉장한 어폐라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면 완전히 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되고 싶은 본능이라고요. 하지만 곧 깨달았죠. 보통 사람들의 사랑은 그냥 비이해를 넘어가는 것이라고요. 정말로, 그건. 아, 시시하구나.

사랑은 시시하구나~ 하고요.

그러니까 저는 이상을 사랑해요. 이건 ‘사랑’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겠지요. 제 사랑을 고결하고 우월한 무언가로 포장할 생각은 없어요. 남들이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것의 한 종류라고 생각해요.

방식이 조금 특이하지만, 저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어요. 태어날때부터, 그래요. 이렇게 하기 위해 태어났죠. 생각해보니 남들 눈에 뻔하다느니 시시하다거나, 그런 것도 사실은 중요하지 않네요. 응.

저는 그저 요카난의 목을 베어 입을 맞추고 싶었을 뿐이예요!

아. 실수. 이상.

하하. 넘어갈까요?

첫 번째 살인. 이게 조금 어려웠죠. 마음 먹기가 원래 어려운 법이예요. 그때는 목을 찔렀어요. 목을 칼로 찌르고 베었죠. 완전히 베어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그의 놀란 표정을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는 건 좋았어요. 이상의 새까만 눈엔 생명력이 있다는 걸 그날 알았어요. 자세히 관찰하면 보이는 것이라고 하나요? 죽은 이상의 눈은 잿빛이었거든요.

두 번째 살인. 저는 꽤 오만했답니다. 이번엔 좀 쉬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눈을 가리고 먼저 배를 갈랐어요. 아, 물론 마취를 하긴 했답니다. 부분 마취라 대화도 할 수 있었어요. 이상이 그때 누구냐고 물었어요. 저라고 했더니 잠시 조용해졌어요. 조금 실망할 뻔했지만 역시 더 물어봐주더군요. 왜 묶여있는지, 눈은 어째서 가려져 있는지. 대답해주니 다시 조용해지더군요. 장기를 구경하고, 실로 꼬매고. 음. 네. 다시 죽이고 나니 허술하게 꼬맨 배가 다시 벌어진 건 유감이예요. 저만 보고 싶었거든요. 저도 유감이라고 생각해요. 의심할 여지 없이.

세 번째 살인, 저는 조금 담대해졌답니다. 그냥 목에 입을 맞추고, 자국을 남겼다가... 그래요. 그때부터 조금 참을 수 없어서 호스를 가져왔어요. 팔에 구멍을 뚫고 거기로 피를 모두 뽑았어요. ‘모두’라고 말하지만 전부 뽑은건 아닐거예요. 중간에 급성 혈액 부족으로 쇼크사했다는 게 맞을테니까요. 아마도? 그래도 중간중간 대화도 나누고 즐거웠어요. 이상은 항상 자아가 없는 것마냥 굴잖아요, 사실 꽤 생각을 많이 하고 계시더라고요. 본인 자신에 대해서. 아, 그럴 필요 없을텐데. 스스로가 생각하는 본인이 얼마나 뒤틀렸는지 안다면 다들 본인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을걸요. 저는 그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만들어줄 수 있어요. 내가 그를 제대로 보고 있다면 그는 어떤 생각도 할 필요 없어요.

나는 그저 그의 목을 베어 입을 맞추고 싶을 뿐이예요. 감은 눈 위에, 목덜미에, 입술에.

네 번째부턴 기억이 잘 안나네요. 정확히 기억하는건 아마 네 번째 이후에 한... 아홉 번째? 그때 교살이었죠.

네. 목을 졸라 죽이는 거. 그게 꽤 기분이 좋았어요. 손 안에서 잦아드는 숨이나 느리게 뛰는 맥박이 전부 느껴져서... 아... 이 사람은 정말로 사랑스럽구나, 하고.

그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이해를 나와 나누고 있다는 흥분감이, 정말이지... 견딜 수 없어서... 그의 목을 졸랐다 멈추고, 조르고, 다시 멈추는 일을 반복했어요. 도구가 없이 맨손으로는 사람은 꽤나 끈질기게 살아남는단 사실을 그때야 알았죠.

그 후에 한 번 더 교살을 했어요. 그의 목을 머리에 있는 리본으로 졸라 죽였었죠. 끈으로 조르고 당기는 건 손보다 섬세한 컨트롤이 필요하지만 손으로 하는 것보다 좀 더 생생한 감각이예요. 이상하죠, 손을 대고 있지 않는데 이어져 있는 걸 느낄 수 있단 건. 저는 고작 신체부위가 닿았다고 해서 이어졌다는 말을 하는 치들에 대해 묘한 편견이 있었는데 그날은 그걸 이해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언제든 이어질 수 있잖아요,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우리를 가로막는 가문의 울타리조차 없으니까요. 하지만 누구도 이어지려 하지 않아요. 그래, 사랑하려 하지 않아!

저는 이상이 꼭 제가 된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어요. 네, 몇 번 더 맞췄어요. 부드럽고 뜨뜻미지근한 감촉, 말랑하고 틈은 미끌거리는 그 기관을 탐하게 되는 건 인류의 본능이겠죠. 계속 입을 맞추고 있고 싶어서 반응이 없다면 끈을 좀 더 조르고, 반응을 한다면 느슨하게. 그는 내 손에 길들여지고 있었어요. 그래, 그는 저였어요. 이상이 곧 제가 된 거예요. 위치는 달랐지만 리본을 매고 있고, 사랑스럽잖아요.

저는 이상을 알아요. 이 버스에 본인을 버리고, 모든 것에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심지어 그거 아시나요? 이 모든 살인을 이상은 알고 있었어요. 제가 그를 마취하고 피를 뽑을 동안 그와 대화를 했다니까요.

그는 그냥 제 살인이 괜찮았을 뿐이예요. 오히려 달가웠겠지요. 그는 자신을 싫어하잖아요. 자기 파괴가 필요한 사람이잖아요. 자기 자신을 죽일 만큼 미워하진 못해도 죽고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 아니던가요?

그는 그를 죽여주는 제가 필요했고 저도 그를 사랑하니 우리는 썩 괜찮은 퍼즐 아닌가요? 그의 비존재도 저의 갈증도 서로를 채워주는거죠.

이상의 이름이 요카난이 아닌 건 아쉽지만, 중요한가요. 결국 이름표는 달라도 같은 존재란 것에 변함은 없는데.

그래서 부정할 수 없어요, 저는. 이건-..

***

달칵. 녹음기를 끄자 버튼 사이로 작은 소리가 들렸다. 살로메의 목소리가 채우지 않으면 그의 방은 항상 고요했다.

방금까지 재생하던 건 다름 아닌 단테가 전달해준 음성 파일이었다. 살로메가 널 죽인게 맞아? 말을 대신하는 째깍소리, 이상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입을 다물거나 회피하는 게 아니었다.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살로메의 입에서 나온 본인의 모습에 어딘가를 관통당한 것 같았다. 상처 입었다고 말한다면 그렇다 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두려웠다’.

이상은 보통 어떤 파일도 저장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이 파일은 지울 수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침식이 일어날 것 같은 때엔 듣고 있었다. 듣고 나면 굉장히 평온해지곤했다. 자신을 죽인 사람의 살해일지와 같은 것을 듣고 안심된다 하면 누군가는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이걸 저주냐 묻겠지만 세상엔 저주가 없다. 적어도 이상은 그리 생각했다. 모든 저주는 술자 자신에 의해 일어난다. 상대의 불행을 비는 순간부터 술자는 불행해진다. 그게 바로 저주의 본질이다.

그렇다면 상대의 어떠한 상태조차 바라지 않고 본질만을 갈망하는 건 무엇일까? 축복이라기엔 너무도 불온한 이 감정은 무엇으로 정리내리는 게 좋을까. 그 차가운 감정에 기대어 함구하는 자신의 저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사랑은 고상하며 고귀하고 고아하면서도 고고하다. 그녀의 입으로는 분명 ‘시시하다’라고 말했지만 이상은 감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자기파괴와 혐오와 자괴로 점철된 인간도 욕망 당할 가치가 있을까? 그런 텅빈 껍데기를 욕망하는 사람은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언젠가는 그도 속이 차 있을지 몰랐다. 그 안에서 날개를 움틀 작정이었을지도 몰랐으나, 옛날 이야기다. 더 이상 날개를 원치도 않았고 날기엔 너무 몸이 커진 모양이었다. 고로 그는 요카난이 아닌 이상이 된다. 헤롯의 딸에게 사랑-주장하는 바로는-받아 다시 한 번 추락하길 선택한다.

우스운 말이지만 살로메가 닳고 닳게 말하는 그 단어, 사랑일지도 몰랐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HL
캐릭터
#이상
커플링
#드림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