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시간
* [ 그 세계 ]의 이야기입니다….
넌 정말 애처로운 인간이야, 클로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데이비드는 영영 사전과 백과 사전을 책상 위에 전시라도 하듯 줄지어 꺼내놓고 45시간째 깨어 있었다. 인내심 많은 클로이가 이번에도 다가와 끌어안고 그런 자신을 이해한다고, 정말로 진실하게 이해한다는 듯이 말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에 클로이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몇 년을 함께 살아온 여자의 얼굴이 이토록 낯설어본 적 없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표정에 서린 빛을 서로 다른 여러 얼굴로 떠올릴 수 있다. 손잡이가 보였다. 이 문을 여는 순간을 기다렸다. 클로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클로이 뿐만이 아니고 그가 머물렀던 모든 인간에게서 문을 본다. 그곳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매번 데이비드는 자발적으로 손잡이를 돌렸다. 걸어 나갔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손등으로 건조한 눈가를 문지르고 피곤한 미소를 짓는다. 대답한다. 나도 알아. 그 여상한 대답이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되어 온 클로이의 분노를 일시에 잠재운다. 어렵지 않게 읽어낸다. 저것은 체념이다. 클로이에게 다가가지만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여자는 말한다. “데이비. 계속 이런 식이라면 아무도 네게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줄 수 없을 거야.” 클로이가 필요한 짐을 캐리어에 던져넣고 그 공간을 한 명의 것으로 축소하는 동안 데이비드는 원고를 마감했다. 반려의 부재를 느낄 틈도 없이 큰 침대에 꾸물꾸물 들어가 몸을 말고 눈을 감았다.
열두 살이었다.
어머니의 침실에서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비록 꿈이었지만 이것이 언젠가 자신에게 실재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머니는 손바닥 위에 당신의 손바닥을 올려놓은 채로 그의 앞에 무릎을 대고 앉아 있다. 데이비는 어머니의 호흡에 자신의 호흡을 일치시킨다. 맥동하는 혈관조차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깜빡임은 최소화한다.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곧다. 동공의 움직임까지 일체가 된다. 어머니는 그를 보고 있고 그는 어머니를 보고 있다. 아니, 데이비는 어머니의 눈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있다. 그리고는 타자화된 자신이 다시 어머니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멀찍이 떨어져 더듬어 본다. 실망했을까? 크리스를 때렸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잘못했어요, 라고 말하고 난 후에 손목이 잡혀 이 방으로 끌려 들어왔으니 분명 화가 나 있을 것이다. 문득 어머니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이 정말 보잘것없는, 구제불능의, 어머니의 기대를 언제까지고 배반하는, 못된 아이처럼 느껴지고, 그리고 나서는 어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이 얼마나 인내심을 갖고 자신을 들여다보려 하는지, 그리고 그 들여다봄을 통해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을 이해하려 하는지를 떠올리며 기분이 좋아졌다가, 그리고 결국 이 길고 긴 마주침 끝에도 어머니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침울해진다. 움직이지 못하는 팔과 다리가 미친듯이 간지럽다 못해 결국 감각이 없어질 때즈음 어머니는 짧은 기도문을 읊는다. 그를 꽉 끌어 안아준다. 그 따뜻한 품에서 내내 표정을 숨기던 데이비는 그래야만 할 거 같아 온 얼굴을 와락 구기고 울음을 터뜨린다. 다신 안 그럴 거지? 질문에 그는 대답한다. 다신 안 그럴게요. 다시는 어머니를 실망시키지 않을게요.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될게요. 그렇지만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 그것의 무수한 재현이고 그는 어머니의 품에서 울고 있지만 이 고문과도 같은 의식이 성인이 된 후에야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눈을 떴을 때는 그로부터 삼십 년이 흘러 있었다. 그는 몸이 너무나 커졌고 그것이 자유롭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다. 그리고 체취로 이곳이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있는 클로이와 살던 집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크지 않은 침대의 옆자리를 빈 손바닥으로 더듬어 본다.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을 방증하듯 식어가는 온기가 반긴다. 졸린 눈을 문지르면서 둔중한 몸을 일으켜 침대 헤드에 기대 앉았다. 닫힌 화장실 문에 시선을 준다. 문 틈새로 새어나오는 빛은 없다. 슬리퍼를 대충 꿰어 신고 방을 나선다. 거실 창가에 난 창으로 남자가 테라스에 앉아있는 것을 본다. 그것을 보고 나서야 다시 침실로 돌아와 정자세로 누웠다. 그는 허공을 보고 있고 온 몸에는 힘이 없다. 팔과 다리는 그의 것이 아니다. 몸이 오래 전에 체득한 속도의 호흡을 유지하고 그것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옅은 마리화나 향을 묻히고 온 남자가 깼냐며 웃으면서, 자신을 으스러지게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때까지. 자신이 보고 있는 문을 발견하고 그것에 판자를 덧대어 못질을 할 때까지. 클로이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줄 때까지. 어머니는 존재조차 모를 세계로 자신을 인도할 때까지. 그 모든 가능성을 떠올리며 데이비드의 가정은 남자에게 버려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다시는, 누구와 함께 살고 싶다고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처참하게. 데이비드는 무수하게 버리고 버려졌지만, 평생 그 누구도 그를 그런 식으로 짓밟아버리진 않았다. 자신을 기꺼이 내던져가며 데이비드를 모욕하기에 그들은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데이비드는 폰투스가 자신을 그렇게 버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가 자신을 버리지 않기를 그 어느때보다도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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