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i, hyvää huomenta, kiitos, mitä kuuluu?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고마워요, 어떻게 지내세요?
오전의 갤러리에는 손님이 없었다. 간만의 휴식을 즐겨야 할 데이비드는 작품 앞에 놓인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고개를 바닥으로 처박은 채 책 페이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Moi, hyvää huomenta, kiitos, mitä kuuluu?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고마워요, 어떻게 지내세요? Moi까지는 어렵지 않게 발음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 hyvää의 ä였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이걸 정확하게 발음하고 있다는 확신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그리고 ää처럼 모음이 두 개 붙어 있는 장음을 발음할 때 이걸 얼마나 길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호기롭게 핀란드어 교재를 산 거까진 좋았다. 그러나 그는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절대 이 언어를 정복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에 휩싸였다. 핀란드어의 딱딱한 악센트는 스페인어의 그것과도 일견 유사했지만, 스페인어처럼 영어권 화자에게 친절한 언어는 결단코 아니었다. 그는 art가 taide라는 것, 그리고 art dealer가 taidemyyjä라는 사실을 구글 번역기를 통해 알게 되고는 핀란드어 공부를 일시적으로 유보하고, 자신의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폰투스에 대한 작은 경외를 품게 되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데이비드는 그날 하루종일 몹시 침울했다. 언어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이 자신을 시혜적인 위치에 올려놓는다는 사실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로바니에미에 살 때, 폰투스가 이웃과 나누는 간단한 인사에서 데이비드가 눈치껏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정도밖에 없었고 그건 모두 데이비드가 알던 언어와 전혀 다른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영어에 없는 표현이 핀란드어에는 있을 것이고 핀란드어에 없는 표현이 영어에 존재할 것이다. 핀란드어가 영어로 번역되면서 생기는 그 미세한 차이를 데이비드는 모르고 폰투스는 안다. 그런 식의 사소한 왜곡이 결국 관계를 망칠 것이라는 편집증적인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날은 자신보다 늦게 집에 돌아온 폰투스에게 hyvää iltaa, 라고 저녁 인사를 건네 보았다. 폰투스가 hyvää의 발음을 너댓 번쯤 교정해주긴 했지만 기분이 훨씬 좋아졌고, 데이비드는 그 동력으로 다음 날도 폰투스와의 관계를 꾸역꾸역 끌고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 전에,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다 말고 구글 번역기를 켜서 사랑해, 라고 입력해 보았다. I love you, 그 문장이 얼마나 단조롭고 당연하게 보이던지. 그 전세계적인 보편성이 자신의 마음을 하찮아 보이게 만드는 지경이었다. 금방 화면에 뜬 문장을 천천히 눈으로, 머릿속으로 발음해 가며 읽었다.
Minä rakastan sinua.
여기에서 minä를 생략할 수 있을까? 많은 1인칭 동사가 -n으로 끝난다는 걸 어렴풋이 교재에서 읽은 거 같기도 했다. 그러니 rakasta-는 사랑한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일 것이고, sinua는 당신, 을 지칭하는 단어일 것이다. 어원조차 감이 오지 않아 아득해졌다.
그때, 알아채지 못한 사이 화장실로 들어온 폰투스가 뭘 그렇게 진지하게 보고 있냐며 묻기에, 세면대 위에 화면이 보이지 않게 재빨리 내려두었다. 입 안 가득 고인 거품을 뱉고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고 둘러대는 자신의 목소리가 초라하게 들렸다. 좁은 세면대 앞에서 어깨를 스스럼없이 맞붙여온 폰투스는 손을 헹구고는 금방 나갔다.
마저 양치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면서 데이비드는 라카스탄 시누아, 라고 어색한 혼잣말을 해 보았다. 그 목소리는 아주 작아서 수건만이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말을 하는 자신을 상상했고, 자신의 발음이 너무도 엉망이라 알아듣지 못하는 폰투스를 이어 떠올렸다. 데이비드는 그 상상에 무척 슬퍼졌고,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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