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반티

this must be the place (naive melody)

i love the passing of time

immaterial by 쯔
16
0
0

* 성행위에 대한 언급과 간접적인 묘사가 있습니다.

숟가락으로 수프를 천천히 저었다. 한 입 크기의 감자와 연어가 수면 위로 둥실 떠올라 숟가락을 스쳤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데이비드는 연어 스프만 며칠째 먹고 있는 건지 아느냐며 툴툴거리는 대신 스프를 얌전히 떠먹기로 했다. 우선 이 밤에 허리까지 쌓인 눈을 뚫고 도보 30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고, 자신은 이 식탁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는 식객이었으며, 방금 이 그릇이 놓여진 자리에서 한 섹스가 완전히 진을 빼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상대의 얼굴에서 흔적을 찾아보려는 듯이 시선을 던졌지만 열감은 밀려난 지 오래였다. 결국 남자가 그렇게 자부하는 잘난 얼굴만 감상한 셈이다. 데이비드는 저 반듯한 얼굴이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것을 보면서, 동시에 엉망으로 일그러지고 구겨지는 순간의 표정을 덧그리고는, 죄 지은 양 시선을 피하고 다시 스프를 휘젓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아반티에게 섹스는 수단이었다. 단 한 번도 절정의 순간을 온전히 즐긴 적이 없었다. 그는 항상 상대의 말과 비언어적 표현을 살피기에 바빴으므로 조급했다. 데이비드의 섹스는 대체로 실망스러웠고 유달리 외로운 밤에 떠올리면서 수음할 만한 종류의 것도 아니었다. 섹스에 대한 빈약한 이해는 결국 글의 깊이를 현저히 얕은 것으로 만든다. 어쩌면, 섹스에 환멸이 나서 글쓰기를 그만 둔 것인데 책임을 불쌍한 르마네르에게 돌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동시대 작가들은 빌어먹을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데이비드는 그것을 글로 옮기면서 필연적으로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 섹스가 테마인 작가의 작품을 다룰 때면 퇴고에 서너 배의 품이 들었다. 그의 글에서 패배의 흔적이 읽히지 않도록 스스로의 편집자가 되어 교정을 봐야 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편집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그를 쉽게 꿰뚫어 봤다. 그는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갤러리에 드물게 찾아 오는 부호들은 오로지 데이비드가 곤란해하는 걸 보고 싶다는 듯, 자네도 작품의 일부냐며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물어왔다. 그럴 때면 데이비드는 전혀 개의치 않는 척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아쉽게도 저는 갤러리의 소유라 비매품입니다.” 그리고는 작품의 설명을 이어 갔다. 변주는 없었다. 데이비드는 재미있는 사람인 척 할 수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그들 중 하나와 자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에게 섹스는 평생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대상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그 사실에 대해 어떠한 유감도 느끼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줄지어 늘어선 나무가 바람에 휩쓸려 고요한 비명을 지르는 곳에서 데이비드는 투명해졌다. 오로지 섹스만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묵묵히, 그릇의 바닥을 향해 숟가락을 입으로 옮긴 데이비드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싱크대로 향하기 전에 폰투스에게 잘 먹었다고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씻을 건 그릇과 숟가락 뿐이었으므로 설거지는 금방 끝이 났다. 그릇을 식기대에 올려놓으며 나는 달그락대는 소리와 목재 의자가 바닥을 끄는 소리는 거의 동시였다. 데이비드는 손에 묻은 물기를 티셔츠에 대충 문질러 닦았다. 자신의 뒤로 다가와 뒷목에 입술을 붙이는 남자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기 위해서였다. 팔이 허리를 감쌌다. 등에 맞붙은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데이비드는 창밖의 캄캄한 어둠을 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불이 꺼지지 않는 맨해튼의 밤, 싱글 베드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자신의 침실을 떠올린다. 탁자 위에 놓인 바우하우스 풍의 스탠드 조명과 몰스킨 가죽 노트, 몽블랑 만년필. 서랍에는 침구에 뿌리는 우디한 향수가 있다. 그 침실에서 시간과 공간은 그의 것이었다. 문과 창문을 모두 걸어잠그고 블라인드를 치면서 데이비드는 유령이 된 감각을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다시는 그런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해는 뜨지 않고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사람이라고는 제 뒤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남자밖에 없는 곳에서-심지어 이 남자는 자신의 여권을 훔쳐가 놓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자신이 외로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데이비드는 아이러니라는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한다.

밤이었다. 침대 한 쪽을 차지한 채 몸을 둥글게 말고 눕는다. 머지않아 매트리스를 타고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진다. 데이비드는 중독자들을 많이 봐 왔다. 파슨스 재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유구했다. 스무 명이 정원인 수업에서 열 다섯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들어왔다. 마리화나를 피우지 않는 것으로는 데이비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수 있었다. 수업시간 내내 진동하는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리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간혹 본가에 돌아가면 변호사 시험 준비로 예민한 크리스토퍼가 냄새를 맡고 중독자 새끼라고 신경질을 낼 정도로 데이비드가 아는 모든 사람이 피웠다. 예술에 대해 좆도 관심없는 새끼가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겠다고 세 시간씩 자며 애쓰는 모습이 애처로워 데이비드는 크리스에게 그저 미안하다고 했다. 마리화나 냄새를 분명히 맡았을 교수 몇몇은 학생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는 커녕, 때로 약간의 약물이 창작에 도움이 된다는 개소리를 에둘러 지껄였다. 이름과 얼굴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동기 몇몇은 마리화나에서 끝나지 않고 브루클린의 마약 딜러를 통해 헤로인, 펜타닐까지 손을 댄 끝에 중독으로 죽었다. 얼마나 많은 예술인들이 창작의 고통이라는 미명 하에 약물에 손을 대는지 데이비드는 봐 왔다. 데이비드는 생존자였다. 아무리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라도 그는 절대 중독자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는 폰투스의 고통에 기꺼이 관객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눈꺼풀의 떨림은 곧 전신의 뒤틀림으로 전염되고 곧 데이비드는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애처롭게 떠는 폰투스를 품 안에 가두듯 꽉 끌어안는다. 쉴레의 포옹처럼. 그에게 말한다, 이 고통은 곧 지나갈 거고 나는 영원히 당신의 옆에 있을 거라고. 데이비드는 단정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때만큼은 영원히, 라고 말할 수 있다. 혼잣말이니 할 수 있다. 데이비드는 폰투스의 고통을 언제까지나 알지 못할 것이고 그 고통은 폰투스만의 것이다. 폰투스가 지극히 사적인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동안 데이비드도 그 단어를 매우 사적인 것으로 격하할 수 있었으므로 그는 그렇게 말하고 이상한 만족에 어깨를 움츠렸다. 마치 작품 앞에서 작은 메모를 남기듯이. 그것은 나중에서야 다른 적절한 단어로 가공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데이비드는 옅은 신음을 흘리는 폰투스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붙였다. 억지로 비집고 열어 혀를 얽어맸다. 데이비드는 부작용의 고통을 섹스의 쾌락으로 전유하려고 할 만큼 섹스가 좋아졌고 그것은 폰투스가 제게 가르쳐주었다. 어쩌면 중독을 또다른 중독으로 바꾸려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나란히 중독자가 되겠군, 축 늘어진 폰투스의 것을 손바닥 전체로 부드럽게 감싸면서 데이비드는 생각한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 찾아오는 것은 다음 날 아침을 당연스럽게 기약하는 예감이다. 데이비드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잘 자라고 인사하고 폰투스의 어깨 위로 이불을 끌어올렸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