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알버] 글로그 모음

[라이알버] 구원에 대하여

2022.08.20 백업 로그

* 틱택토 본편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와 외전 소설, 스케이프 고트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온새님의 연성을 보고 감명 받아 풀어본 내용입니다.


 

알로이스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그는 윌리엄이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는 의아했다. 연회로부터 벌써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고, 그와의 연결 고리는 끊어진 지 오래. 연회 이후로는 한 번도 그와 융합된 채 그의 세계를 바라보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 갑작스레 이런 꿈이라니.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알로이스는 평정을 되찾았다. 지금 그는 윌리엄의 모습이었으나,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건 재융합이 아니라 자각몽이라 보는 게 타당했다. 그 판단에 확신을 준 건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도 한몫했다.

낡고 허름하기 그지없어 당장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을 처참한 풍경.

사람 인기척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적막함.

마치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 걸맞은 장소였다는 듯이, 복도에 드리운 그림자는 고즈넉하기까지 했다. 너무나 황폐한 나머지 못 알아볼 뻔했으나, 이곳은 분명 윌프레드 가의 저택이었다. 알로이스는 정처 없이 복도를 걸었다. 어둠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숙원이 이루어진 풍경일지도 몰랐다. 다만 그는 그날 이후로 새로운 소망이 생겼기에, 이런 꿈은 역시 새삼스러웠다. 물론 그가 오랜 세월 품어온 그늘이 완전히 거두어진 건 아니라서, 어쩐지 그는 이 칠흑 같은 어둠에 향수를 느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라이오넬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이 꿈에서 어서 깨도록 라틴어 사전으로 머리를 내리찍어달라 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그는 이죽거리며 내리찍는 시늉만 할 터였다. 실없는 상상을 하는 것도 잠시, 알로이스는 실낱같은 불빛을 발견했다.

 

저 멀리, 아주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흐릿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불빛은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조금씩 점멸하고 있었다.

 

아주 미약한 불빛.

……누군가가 있는 걸까?

 

알로이스의 뇌 내는 순식간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 시작했다. 꿈일지언정 이런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이런 폐저택에 누군가가 있다면, 제정신일 리가 없으니까. 더구나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도 한다. 자신의 무의식이 자아낼 수 있는 끔찍한 상황들은 끝도 없었다. 하지만 이 순간, 알로이스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파멸하는 것? 목숨을 잃는 것? 어느 쪽이든, 알로이스는 직면한 빛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천천히 숨죽여 걸어갔다. 마치 쌍둥이처럼, 쥐 죽은 듯 고요하게. 그리고 문 앞에 당도했을 때, 그는 문틈으로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누군가가 있었다.

“알, 프레드……?”

 

목소리가 볼품없이 가늘게 떨렸다. 책상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부름에 응답하듯 고개를 돌린다. 잿빛 머리칼 아래, 어둡게 침체된 적갈색 눈동자가 그를 응시했다.

 

“주인님?”

 

남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으나, 목소리에서 의아함이 느껴졌다. 당황스러웠다. 의아해야 할 건 오히려 이쪽이었다. 그야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유령처럼 불투명한 모습이지 않은가. 「알버트」는 말문이 막혔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호흡이 턱 막혀왔다. 덜덜 떨리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꾹 눌렀다. 뭐라도 내뱉어야 했다.

 

“……여기에서 뭘, 하고 있었어?”

 

안간힘을 쓴 끝에 숨 막히는 침묵을 뚫고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편지.

알버트의 시선이 책상 위로 향했다. 낯익은 펜과 잉크병이 보였다. 중후한 필기체로 빼곡히 적힌 편지지도. 시선이 향한 걸 눈치챘는지, 그의 손이 느릿하게 편지지를 뒤집었다. 꽤 기이한 광경이었다. 불투명한 손이, 뚜렷이 실체가 있는 종이를 뒤집는 꼴이란!

“누구에게 보내는 건데?”

“……이제는 보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왜……?”

“…….”

 

또다시 침묵. 도저히 의중을 파악할 수 없었다. 남자는 알버트를 응시하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재로 가시지요. 벽난로에 불을 피우겠습니다.”

“아니, 서재는 됐어.”

 

이렇게 다 무너져가는 폐저택 내의 서재라니, 장서들이 죄다 어떤 꼴이 됐을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또한 알버트는. 혼란스러운 틈에도 생각했다. 대체 이런 상황에 뭘 자연스럽게 권유하고 있는 거야? 내 의문은 아무것도 풀리지 않았는데? 왜 이 모양인 저택에 그 혼자 남은 채 편지를 쓰고 있던 건지, 편지는 누구에게 쓴 건지, 애초에 그가 살아있기는 한 건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 이내 알버트는 빠르게 납득했다. 이건 전부 꿈이니까, 라고.

그렇다. 그때 하도 현실적인 꿈-사실 꿈 같은 현실이었지만-속에서 오래도록 헤맨 탓에 반사적으로 이 꿈에서도 개연성을 찾고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다. 원체 꿈이란 허무맹랑한 게 보통이거늘! 역시 모든 게 다 망상과 죄책감의 산물임이 틀림없었다.

죄책감.

 

알버트는 그때 이후로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원죄와 불신의 씨앗이 자아낸 “그”라는 존재를. 마음 한구석에서 도저히 지워낼 수 없어서. 잊을 수 없어서,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잠이 깨실 겁니다.”

 

차분한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아서야, 알버트는 끝없는 생각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난 졸리지 않아, 알프레드.”

“…….”

 

그는 또다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알버트는 문득 답답한 마음이 들었으나, 꿈이라고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에게 쏟아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알버트는 알프레드의 뜻을 따라 서재로 향했다. 서재는 생각보다 건사했다. 해묵은 종이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뿌연 먼지가 숨을 괴롭게 했으나, 책을 읽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만 있다면 이곳에서 독서를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물론, 알버트에게 그런 의지 따위는 일 퍼센트도 없었다. 여러 생각으로 혼란스러운 탓에 활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 그러나 그는 결국 책을 펼쳐 들었다. 알프레드 시몬즈라는 저 남자가 벽난로에 불을 피운 이후로는, 뒷짐 진 채 요지부동으로 알버트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프레드는 시종일관 침묵을 유지했지만, 어쩐지 알버트가 느끼기엔 그가 자신에게 독서를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집중도 안 되는 거, 읽어봤자 뭐하나……. 그런 생각을 길게 이어 나갈 수 없었다. 책을 펼친 지 얼마지 않아 미친 듯이 졸음이 쏟아졌다. 활자가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졸음에 무거워진 고개가 꾸벅거리는 걸 좀체 주체할 수 없었다.

 

문득 자신에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알버트는 간신히 시선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꿈의 마지막. 투박한 손이 자신의 눈가를 덮는 것을 끝으로, 알로이스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 꿈을 꾼 이후로, 알로이스는 잠이 들었다 하면 폐저택 내에서 눈을 떴다.

매번 장소는 달랐으나 곁에는 항상 알프레드가 있었다.

 

그와 시답잖은 대화-한쪽이 일방적으로 침묵으로 대답하는 것도 대화라고 할 수 있다면-를 나눈 후에, 알프레드는 늘 서재에서 독서할 것을 권유한다. 그리고 그의 권유대로 하면, 꿈에서 깨었다. 책을 읽으면 잠이 깰 거라는 말이 졸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말 그대로 잠에서 깼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지. 그 꿈을 꾸면 꿀수록 저택의 모습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반복적인 꿈을 꾸게 된 지 보름이 지나고 난 날에는, 무너지고 썩은 구석들이 모두 복구되어 그저 조금 낡은 저택 정도로 봐줄 만한 수준까지 이르렀다. 알로이스는 긴밀하게 관찰한 결과, 꿈에 머무는 시간이 오랠수록 저택이 더 빠르게 옛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아챘다. 그는 자연히 잠이 많아졌다. 사람 사는 공기가 맴도는 듯한 저택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알프레드 시몬즈.

그의 형체가 날이 갈수록 조금씩 뚜렷해지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알로이스는 무언가의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저 남자의 형체를 되찾아줘야 한다는 의지.

사실 알고 있다. 망상으로 이루어진 꿈에서 그런 일을 해봐야 그 누구에게도 구원이 되지 못한다. 단지 이런 것으로나마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 자신의 얄팍한 속셈이 기저에 깔려있을 뿐. 알로이스의 이상을 가장 먼저 눈치챈 건, 의심할 여부도 없이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이었다. 알로이스가 깨어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뿐더러, 깨어있는 시간에도 넋은 어디에 두고 온 사람처럼 멍한 상태라는 걸 눈치 채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어떻게든 알로이스를 깨워두려고 해도, 알로이스는 잠을 거부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까무룩 잠에 빠져들었다. 마치 꿈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처럼. 식사하다가도 고꾸라졌고, 산책하다가도 쓰러졌다. 심한 때에는 대화하는 도중에 갑작스레 잠을 자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가 새로운 병을 얻은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초조했다.  하지만 이내 라이오넬은 그의 육체가 아닌 정신에 문제가 있음을 눈치챘다. 알로이스는 모르는 듯했지만, 그는 잠에 빠져들었을 때 종종 잠꼬대했다. 처음에는 악몽을 꾸는 줄 알고 깨우려 했으나, 깨워도 도저히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가만히 들어보자 하니 그는 꿈속에서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 했다. 그것도 매번 동일한 상대와.

“알버트 윌프레드.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오랜만에 알로이스가 깨어있을 때였다. 자신이 이런 말을 하면 그는 으레 시선을 갈팡질팡, 몸을 꼼지락, 삐그덕거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기 마련이었는데,

 

“내가 뭘?”

 

놀라운 발전이다. 눈 하나 꿈적하지 않고 대답하는 꼴이라니!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지? 정말이지 놀라움을 넘어 경악까지 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의 연기.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어. 시치미에 속아 넘어가 주길 바랐다면 평소 행실을 제대로 했어야지. 라이오넬은 말을 골랐다. 이런 때에는 괜히 우회해서는 얻을 게 없었다. 고민은 짧지 않았다. 그는 검지로 톡, 톡. 테이블을 빠르게 두드리곤 입을 열었다.

 

“알프레드 시몬즈.”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명쾌하게 틀림없이 정답. 알로이스의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게 누구야?”

“네, 가 그 이름을 어떻게…….”

 

말하는 꼴을 보니 역시 한참 멀었다. 끝까지 딱 잡아떼지도 못하고.

……아니, 어쩌면 그 정도로 「알프레드 시몬즈」라는 사람이 알로이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리 생각하니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잠만 늘어지게 자던 남작님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관계를 쌓았을 리 만무하고.”

“…….”

“저택 내외를 오가던 편지도 특별한 건 없었고.”

 

설령 밀서 같은 게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건 비비안과의 것이었으리라. 그런 생각에 일순 짜증이 치밀었지만, 라이오넬은 훌륭하게 억눌러냈다. 지금 중요한 건, 알로이스가 또다시 까무룩 잠들어버리기 전에 가능한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너 뭐 상상 친구 같은 거 만들었냐?”

“……그런, 그런 건 아냐.”

“그럼 뭔데? 알프레드 시몬즈가 누구기에 네가 자꾸 자면서 부르고, 대화하고 그러는 건데?”

 

대답 없이 낭패감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을뿐인 알로이스를 마주하고 있자니, 라이오넬은 슬슬 인내심이 닳는 것을 느꼈다. 알로이스는 잠시 제 손을 매만지다가 파리한 입술을 간신히 열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조금만 더 하면 돼. 그때까지만 이렇게 지낼게. 그때가 되면, 군말 없이 네 말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날게.”

 

또다.

맥락 없이 말하는 버릇.

 

“그렇게 기약 없이 약속하면 다야? 뭐가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건데? 뭘 조금만 더 한다는 건데.”

 

그저 조금이라도 알고 싶어 물었는데, 돌아온 건 더 커다란 의문 덩어리였다. 일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 자식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정말 예전에 그가 말한 대로, 그의 부모처럼 갑자기 머리가 돌아서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차라리 서재에 총질이라도 한다면 그걸로 납득이 됐을 텐데!

 

“정말 고지가 코앞이야. 아주 중요한 일이야. 한 번만 나를 이해해주면 안 될까, 라이오넬…….”

 

정말이지 기가 찬 일이었다. 그 알버트 알로이스 윌프레드가 한 번만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엄청난 발언을 했는데, 그게 고작 망상과 비현실의 집합체인 꿈속의 일을 위해서라니. 애초에 라이오넬은 지금까지 알로이스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을 단 한 번도 거둔 적이 없었다. 물론 알로이스와 라이오넬은 상당히 대조되는 인간이어서, 라이오넬이 그렇게 노력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애는 써봤다.

 

누구처럼 멋대로 넘겨짚고 스스로를 고독 속에 가둬, 끝내는 상대와 자신을 격리하는 도피를 저지르는 겁쟁이가 아니었단 말이다. 라이오넬은 역시, 이번에야말로 그를 한 대 후려 갈겨서라도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알로이스가 별안간 또 까무룩, 잠든 것만 아니었다면 실제로 그러했을 터였다.


알버트는 눈을 떴다.

 

따스한 햇살 아래, 정원에서 한창 티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녹음이 우거지고 바람이 상쾌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은 사람처럼 기분이 좋았다. 조금 전까지는 죽을 것처럼 불안하고 괴로웠던 것 같은데, 왜 그랬더라? 기억을 간신히 되짚어보니 라이오넬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그래. 그랬지. 나는 라이오넬과 말다툼 했어……. 그런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건너편에 앉은 알프레드가 완전히 살아있는 사람처럼 뚜렷했다. 지금은 이것만이, 알버트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알프레드는 고요한 낯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 티파티인데, 테이블이 직사각형으로 길었다. 그런 기나긴 테이블의 끝과 끝에 서로가 앉아있었다. 차와 티 푸드는 전부 알프레드 쪽에만 치중되어 놓여 있고, 알버트의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의아함에 알버트가 입을 열려던 순간,

 

“알버트 알로이스 윌프레드.”

 

귓가에 내려앉는 부름에, 그는 잠시 언어라는 것을 잊었다.

 

“이제 그만 와도 돼.”

건너편에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이 있었다. 알로이스는 숨을 쉬는 것도 잊고 있다가, 불현듯 자신의 호흡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 심장이 불온하게 쿵쾅거리고, 삐걱거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테이블보를 꽉 붙들었다.

 

“언, 언제부터……?”

 

멍청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입술 밖으로 흘러나와 테이블보를 타고 기어간다. 그런 미물 같은 목소리도 틀림없이 들을 수 있다는 듯, 그는 대답했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아니, 중요해. 대체 언제부터? 언제부터 내가 나라는 걸 알았어? ……왜 모르는 척했어? 내가 얼마나, 내가 얼마나 알버트 알로이스 윌프레드로서 너와 대화하고 싶었는데…….”

 

알로이스는 온 힘과 체력을 쏟아부어 목소리를 냈다. 가슴께에 무언가 얹힌 듯 갑갑했고 시야가 핑 돌았다. 눈시울이 홧홧하게 달아올랐으나, 끝내 눈물은 맺히지 않았다. 어쩌면 감히 울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돌아온 대답에 알로이스는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넌 나의 알버트가 아니잖아.”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내가 너의 라이오넬이 아니듯이.”

 

간신히 되찾아놓았던 그의 형체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알로이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고 했다.

 

일어나서,

그에게 달려가서,

그를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꽃이 시든다.

풀이 노랗게 죽어간다.

저택이 조금씩 낡기 시작한다.

 

시간이, 감정이, 마모되기 시작했다.

 

빌어먹도록 화창한 햇빛 아래에서.

알로이스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악을 쓰며 울고 싶었다.

왜 나를 떠나려는 거냐고, 생전 처음으로 그렇게 욕심껏 바락바락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감히?

 

그래, 그는 사실 떠나고 싶었을지 몰라.

매번 나를 꿈에서 깨우려고 했지.

 

이기심으로 그를 붙들어 놓은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햇빛을 받아 붉은빛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곧게 응시해왔다. 두려웠다. 그 입술이 무슨 말을 내뱉을지.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결국, 귓가에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그래, 처음엔 나도 착각했어. 네가 나의 알버트일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게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너는 날 보고 있지 않았거든. 이곳에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았지.”

“……그걸 네가 어떻게 확신해? 나는 잠들어서도, 깨어서도 오직 너를 되돌릴 생각에…….”

“알버트 윌프레드. 정신 차려.”

 

알로이스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였다. 건너편의 그가,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완고하게 자신을 밀어내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나 잔인할 수 있는지.

 

“네가 구해야 할 건 내가 아니야. 현실을 직시하라고. 난 이미 죽었어. 그리고 나의 알버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지. 하지만 너는? 너의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은?”

“…….”

“후회할 짓 하지 말고 얌전히 돌아가.”

 

라이오넬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서서히 알로이스에게로 다가왔다. 철컥.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가까워지는 쇠 냄새. 이제 그는 그것을 보면 여우보다도, 신경질적으로 웃고 있던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을 먼저 떠올리게 되어버렸다. 오지 마. 언젠가의 날처럼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방아쇠가 당겨졌으니까.


“알버트!”

 

날카로운 고함에 알로이스는 눈을 떴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몸이 화끈거렸다. 오한이 들고 속이 울렁거렸다. 눈앞에 있는 게 누군지도 모를 만큼 그는 제정신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다시 잠들어야 한다는, 강렬한 일념뿐이었다. 다시 그를 봐야 해. 아직 해주지 못한 말들이 남아있어. 오지 마, 따위가 아닌, 그를 배웅해줄 따뜻한 말들. 나는 또 너에게 못 할 짓을 하고,못 할 짓을 시켜버렸어. 그러니 적어도 사과해야 해.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생각들을 횡설수설 입 밖으로 내뱉은 모양이었다. 어깨를 붙드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알로이스는 눈을 둥글게 뜨고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한껏 구겨진 미간 아래로 적갈색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분노에 미쳐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 번들거림은 쉼 없이 맺혀 흘러내려 뺨을 타고 뚝뚝 흐르고 있었다. 얼굴이 붉었다. 입술을 꾹 다문 채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사고가 멈춘 느낌이었다.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단지 그를 부르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너무나도 상처받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넌 사람 마음이 우습지? 아주 장난감이야.”

 

비뚜름하게 빈정거리는 말을 뱉으면서도, 신경질적으로 웃는 것조차 하지 않는 낯.

 

“아니다, 내가 우스운 거겠지. 그러니 지금도 또 잠들어버리려는 거잖아. 내 말은 한 톨도 안 듣고.”

“……라이, 오넬. 그게 아니야. 나는…….”

“알버트.”

“…….”

“너, 단 한 번이라도 남겨진 사람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냐?”

“…….”

 

남겨진 사람의 마음? ……무엇으로부터 남겨진?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생각해본 적 없다. 정말로 단 한 번도. 그것조차 꿰뚫어 봤다는 듯, 라이오넬이 말을 이었다.

“없겠지.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네 죽음을 슬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의 눈물이 서서히 멎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 됐네. 그 꼴을 못 참고 너 하나 살려보겠다고 의사가 된 사람이 네 곁에 있어서. 멋대로 죽지도 못하고.”

 

그 말을 갈무리하고서야 라이오넬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감돌았다.

 

이런 건 싫어.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어. 난 누군가를 구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게 누구지? ……머릿속이 온통 엉켰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알로이스는 안간힘을 써서 버텼다.

 

잠들면 안 돼.

지금은 안 돼.

 

붙들고 있던 자기 어깨를 놓는 라이오넬을, 알로이스는 있는 힘껏 꽉 붙들었다.

 

“가지 마, 라이오넬.”

“……이봐, 알버트 윌프레드. 나를 냉혈한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거 놔. 네 물수건을 갈아주려는 것뿐이니까. 자기 환자가 아픈데 환자를 두고 가는 주치의가 어디 있지?”

 

냉소적인 어조에 심장이 으깨지는 것만 같아도, 놓을 수 없었다.

라이오넬이 짓씹듯 말을 이었다.

“얌전히 누워. 그리고 좋을 대로 해. 빌어먹을 꿈속에서 누굴 찾든, 어쩌든, 이젠 내 알 바 아냐.”

“아니야. 이제 내가 찾는 건 꿈에 없어.”

“그렇다고 해도 네가 충분한 수면을 취해야 하는 상태인 건 변함없지. 용쓰지 말고 어서 눈 감아. 상태가 더 악화되면 고생하는 건 너뿐만이 아니야.”

 

라이오넬이 억지로 알로이스를 눕혔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그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지만, 기어코 눈은 감지 않았다.

“너처럼 말 더럽게 안 듣는 녀석의 주치의로 순순히 고용되는 게 아니었는데.”

 

라이오넬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알로이스는 곧 꺼질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어 그를 불렀다.

 

“…라이오넬.”

“말할 기운으로 힘내서 눈 감고 자라.”

“……라이오넬.”

“……왜, 뭐. 왜 부르는데?”

“역시 내가 구하고 싶었던 건 너였나 봐…….”

알로이스는 한결같이 맥락 없는 말을 했으나, 듣는 라이오넬의 표정은 한결같지 않았다. 애매하게 찌그러진 표정은, 못 들을 걸 들은 사람 같기도 했다.

 

“……누가 누굴 구해? 열에 들떠서 별 헛소리를 다 하는군. 상태가 심각해진 것 같으니 약을 좀 처방해야겠다. 잠들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라이오넬의 목소리가 가물가물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가는 숨을 내뱉고 있던 알로이스는, 자리를 뜨려는 라이오넬의 옷소매를 스치듯 붙잡았다. 그 작은 행동에도, 그 미진한 힘에도, 라이오넬은 걸음을 멈췄다. 아무리 나약한 힘일지라도 자신이 붙잡으면, 붙잡혀주는 미련한 사람. 그 사실이 새삼스러워서,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깨달아서.

라이오넬이 돌아봤다.

불퉁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분명 걱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귓가가 시끄러웠다. 마차 열 대가 한꺼번에 지나갈 때 나는 것 같은 진동이 심장에서 느껴졌다. 손끝이 떨렸다. 얼굴이 더없이 화끈거리고 가슴께가 아파왔다. 고통에는 익숙했다. 하지만 이토록 당황스러운 고통이라니. 그런데도 싫지 않았다. 이 기꺼운 고통의 감정을 무어라고 정의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로이스는 입술을 달싹였다.

꿈이 자신을 부르는 게 느껴졌다.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

그러니까,

“헛소리, 아니야……. …내가, 내가 다시 깨면……. 그때, 말해줄게……. 모든 걸.”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다한 알로이스는 또다시 깊은 꿈에 빠져들었다.


시든 꽃,

노랗게 죽은 풀,

폐허가 된 저택.

 

빌어먹도록 화창한 햇빛 아래에서,

알로이스는 눈을 떴다.

 

기나긴 직사각형 테이블 건너편에는 아무도 없었고, 자신의 눈앞에는 갓 끓인 따뜻한 차와 온갖 티 푸드가 보기 좋게 놓여있었다. 알로이스는 잠시 그것들을 내려다보다가, 식탁보째로 그 모든 것들을 바닥에 내던져 엎질렀다. 깨지고 부수어지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알로이스는 그 음색이 어느 날 들었던 라이오넬의 바이올린 연주 소리만큼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빛을 닮은 해가 빠르게 지고,

그의 눈동자를 닮은 노을이 하늘을 잠시 덮었다가, 이내 검푸른 어둠이 내렸다.

 

알로이스는 달렸다.

무작정 달렸다.

 

세상의 끝이 보일 때까지.

그에게 돌아가는 길로.

그리고 마침내, 알버트 알로이스 윌프레드는 눈을 떴다. 낯익은 천장이 보이고, 몸 상태는 한결 나아졌다. 아니, 오히려 가뿐하기까지 했다. 다만 손이 갑갑하기에 고개를 들어 둘러보니, 라이오넬이 그의 손을 잡은 채 침대에 엎드려 선잠을 자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인기척을 느낀 모양인지 라이오넬이 잠시 미간을 좁혔다가 스르륵,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 눈동자가 오로지 자신만을 담았다. 알로이스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알버트, 깨어났……. ……뭐야? 왜 갑자기 웃어?”

 

그의 표정이 단숨에 심각해졌다. 아무래도 열병을 앓다가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린 모양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가 손을 뻗어 알로이스의 이마를 짚었다. 따뜻한 체온이 이마로부터 뺨까지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열은 내렸는데……. 너, 말할 수 있지? 말 못하게 된 거 아니지?”

 

걱정이 태산인 걸 이젠 숨기지도 못한다. 알로이스는 웃음기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라이오넬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는 라이오넬의 머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라이오넬은 얼결에 알로이스의 가슴께에 가두어졌다. 드물게도, 라이오넬 이스터브룩의 사고가 잠시 마비되었다. 알로이스의 심장 고동이 귓가에 파고들기도 잠시, 라이오넬은 자신의 심장이불온하게 뛰는 소리를 감당해야했다. 그런데도 그 온기를 거부할 수 없어서.

나긋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나 주제에 누굴 구한다는 건 상상도 못하겠어.”

“……내가 말했잖아, 누가 누굴-”

“그러니까 내가 손을 뻗으면, 네가 잡아줘.”

 

라이오넬이 품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못 하는 표정인 게 훤해서, 알로이스는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대번 불퉁해지는 그의 표정이 못내 좋았다. 그를 보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그러니,

 

“가지 말고 있어 줄래?”

 

나 역시도 그럴 테니까.

알로이스는 눈을 접어 웃으며 그 호수 같은 눈에 노을을 담았다. 어둡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밤이었다. 아마도 그와 닿아있는 한, 자신에게 그런 밤은 이제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것 같다고, 알로이스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 외 연성과 관련된 사담>

1) 이전에 업로드한 <곰인형> <스카프> 로그와 스토리를 공유하는 로그라 생각하고 썼습니다. 그래서 알프레드와 조우했을 때 보았던 펜과 잉크병이 낯익다는 묘사가 나왔지요.

2) 처음에 내용을 구상할 때는 이것보다 훨씬 희망찬 내용으로,(이전 로그들이 힘찬 분위기이다 보니...) 또한 편지와 관련된 내용이 좀 더 돋보이게 구상되어 있었는데요. (그래서 가제가 <펜과 잉크>였습니다.)

이리저리 갈아 엎다보니 조금 울적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제목도 가제와는 완전 딴 판이 됐고요.

가제를 못 쓰게 된 건 너무 아쉽습니다. 이전 로그들의 제목이 서로가 주고 받은 선물로 일관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반드시 <펜과 잉크>라는 제목으로 연성하겠다 결심했거늘...

더불어 꼭 넣고 싶었던 장면이 있는데, 그걸 결국 못 넣었습니다. 이건 나중에 손목이 괜찮아지면 그리거나, 또 이렇게 가벼운 문체로 단출하게나마 적어와보겠습니다.

짧게 축약하자면 지금까지의 로그들과 연계되는, 라이오넬 생일과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또...)

3) "알버트"와 "알로이스"를 구분해 적는 작업이 쏠쏠하니 즐거웠습니다. 현실이 아닌 꿈에 갇힌 채(기댄 채)인 알로이스는 "알버트"로 표기되었어요. 알프레드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이후부터는 계속해서 알로이스로 표기되었습니다. 머물고 싶어도 더는 머무르지 못하게 되었으니까요.

4) 알로이스가 본 것들이 마냥 꿈이진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언가 불가사의한 이유로 사후 세계에 발을 딛은 알로이스...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그런데 하필 왜 사후세계 같은 것의 배경이 윌프레드 가 저택이냐 물으신다면, 알프레드에게 가장 의미있는 장소가 그곳이었을 거라는 생각이었어서요. (적폐 해석이라면 죄송합니다...) 그의 혼이 떠나지 못하고 묶여있다면 그곳이었을 거라 생각했어요.

5) 이 글을 트위터에 타래로 올렸을 때 체이님이 정독하며 해주신 말씀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꿈 속의 알프레드는, 자기가 알던 알버트가 아니더라도 알버트인 이상 사랑했을 거라는 해석이요. 그래서인지 "너는 날 보고 있지 않았거든."이라는 말이 사실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애초에 알로이스는 알프레드를 알프레드대로, 라이오넬은 라이오넬대로 바라봤을 것 같아서요. 투영해보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알프레드는 알로이스를 현실로 되돌려보내고 싶어서, 그런 말로 선을 그었다... 라는...

6) 다만 나중에 알로이스가 '내가 구하고 싶었던 건 너였나 봐'라고 했던 말은, 구할 대상을 처음부터 착각했다기 보단... 자신이 알프레드에게 무언가라도 보상을 해주려 했던 마음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라이오넬이 그렇게 되는 미래를 보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되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행복할 때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저주가 아니었던 것과 비슷하게요.

7) 제가 스케이프 고트를 너무 좋아해서... 스케이프 고트 소설과 드라마 CD 대본집에서 나오는 대사들이 몇 개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나 잔인할 수 있는지.'의 경우엔 "넌 왜 그렇게 새뮤얼에게 잔인해?"라는 대사가 나왔던 대화를 떠올리게 만들죠. 실제로 이 묘사가 나온 부분에서 알프레드는 알로이스를 완고하게 밀어내고 있었으니까... (근데 그런 척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진심으로 그럴 수 있었겠어요... 알로이스도 결국 알버트인데...) 그것 말고도 '이런 건 싫어.'라는 독백이 나오는 그 페이지 전체는 스케이프 고트 드라마 CD의 일부 장면들을 오마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너무너무 좋아하는 장면들이어서요... 의식이 혼미한 라이오넬이 알버트에게 기대는 장면과, 알버트를 찾아가기 위해 정신줄 꽉 잡는 라이오넬의 독백 장면...ㅠㅠ 드씨 꼬옥 들어주세요...

8) 알프레드가 매지션 루트처럼 그를 쏴서 현실로 돌려보내는 장면이나, 라이오넬이 속상함과 분노와 그 외 다잡한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뚝뚝 우는(흐느낌 없이...) 장면이 쓰면서도 좋았습니다. 우는 얼굴만큼은 알로이스에게 죽어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하는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알로이스야 라이 마음에 대못 좀 그만 박어

9) 페르세포네와 석류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티파티 장면입니다. 알프레드 앞에만 티 푸드가 있었던 것부터가 알로이스를 돌려보낼 의지가 만만했음을 알려주는 표식이죠. 마지막으로 꿈을 꿀 때 알로이스가 그것들을 모조리 뒤엎는 게 좋았습니다. 안 먹고 그냥 돌아서서 저벅저벅 사라지는 것보단... 다 뒤엎어버리는 게 남작님 성깔이지...

10) "그러니까 내가 손을 뻗으면, 네가 잡아줘."라는 대사 역시 스케이프 고트 드라마 CD 대본집에 실린 신외전에서 나온 '공중 그네'와 관련된 묘사입니다. 신외전 꼭 읽어주세요 그냥 둘이 사귐(왜곡)(과장)

11) 어둡지도 고요하지도 않은 밤. 새뮤얼의 대사에서 떠올린 묘사입니다. 고독하지 않은, 저주에서 벗어난 밤... 같은 걸 생각하면서 썼어요. 저 정말 상상이상으로 스케이프 고트 사랑하는듯(ㅋ ㅋ ㅋ ㅠㅠ) 어쨌든 여러모로 정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네요. 넵.

여기까지 적으니 정말 더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쓸 때는 이것보다 더 생각 많이 하면서 썼던 것 같은데...ㅠㅠㅋㅋ 혹시 더 떠오르는 게 있더라도 더 주절거리기는 민망해서 적진 않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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