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신] 환상통
포스타입 20220818 발행. 냐죽님 생일축전
교실의 문을 열면, 시선이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이제는 익숙한 눈빛들이다. 애써 그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수업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신경이 다른 곳에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짐을 내려놓고는, 도망치듯이 반을 빠져나왔다. 향한 곳은 옆 옆 반의 교실.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보면, 책을 읽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온다.
“아아, 좋은 아침이야, 신.”
“으, 응…! 좋은 아침, 히요리 군…!”
그와 함께 복도로 나와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면, 교실에서 있었던 일 같은 것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기분이 들떠 올랐다. 조잘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히요리 군이 아하하, 하고 기분 좋게 웃어보였다.
괴롭힘이 시작된 시기 따위는 알지 못한다. 그 이유 또한 마찬가지. 차라리 왜인지를 안다면 해결이라도 해 볼 텐데…, 그조차 알 수 없는 지금은 그저 짐작만 해 볼 뿐이다. 그저 내 존재가 싫은 것, 이라고 한다면 그건 역시 조금 비참하니까.
그렇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건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따돌림에도, 적응해갔다. 그저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그만이다. 어차피 물밑에서 무슨 말이 오가는지 나는 알 수 없으니까. 그저 안 들리는 척 무시하면, 전부 상관없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온전히 혼자인 것도 아니니까. 내게는 히요리 군이 있으니까… 괜찮았다.
익숙해진 이들은 점점 더 담대해져 갔다. 곁을 지나가면서 다른 이야기인 척, “기분 나빠”, 중얼댄다.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내가 피해망상이 있는 건 아닐지 의심될 정도다. 사방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들이 귓가를 울렸다. …여기 있어 봤자 기분만 상할 것 같아, 생각이 들어서 의자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히요리 군… 있어?”
“응? 신? 이 시간에 오다니 별일이네에….”
히요리 군은 언제나처럼 웃어보이며, 내 손을 잡고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산책이라도 좀 할까? 물론 신의 체력이 괜찮다면, 말이지… 아하하.”
“…그, 그 정도도 못 하지는 않거든….”
“그럼 좋아, 사람 없는 장소를 알고 있으니까. …신에게만 보여주는 거야? 내 비밀 장소.”
히요리 군에게 이끌려 도착한 곳은, 학교 뒤편의 있는지도 몰랐던 작은 오솔길. 그 안쪽에, 이런저런 화초들이 자라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쪽의 화단, 관리하는 선생님들만 가끔 오시고 다른 애들은 있는지도 모른단 말이지…. 실제로 신도, 오늘 처음 와 보잖아?”
“응, 으응… 처음이야, 이런 곳.”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화단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조용하네, 사람도 없고…. 시선을 돌리다가 히요리 군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그것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래서 신, 무슨 일이야?”
“으, 응? 무슨 일이냐니…?”
“안 오던 시간에까지 찾아오고 말야. 신답지 않아.”
“그… 그거언, ……그냥 기분 전환 겸으로, 응, 히요리 군이 잠깐 생각나서….”
“거짓말하면 못써, 신.”
“….”
“무슨 일, 있는 거잖아?”
히요리 군은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해 보였다. 표정이 그렇게까지 안 좋았던 걸까, 뺨을 쓰다듬었다. 히요리 군이 재촉하듯이, 시선을 맞추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그렇겠지. 히요리 군은 한번 결정한 건 확실히 이루고야 마는 사람이니까.
“…그게, 히요리 군, 사실은,”
어디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나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예전을 회상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어느 순간 꼬리표처럼 손가락질이 따라왔다. 수군대는 소리가 등 뒤를 채웠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만큼은 차고 넘치게 많았다. 제가 나타나면 뚝 끊기는 웃음소리, 떠들며 지나가던 이들의 힐끔거림, 행동 하나하나에 따라붙는 시선들. 아, 그렇게나 싫다면 차라리 관심을 두지 말지. 모순적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감시하면서, 꼴 보기 싫다고 외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다만 그들에게 항의하기에는 나는 너무도 나약해서, 그저 참고 견디면 나아질 거라고, 그것만을 믿고 버텼다. 아니었는데, 그게 아니었는데. 그래 봤자 그저 놀리기 좋은 사람이 될 뿐이다. 괴롭힘의 강도는 점차 심해져 갔다. 일상의 영역은 점점 줄어만 갔다. 남은 것은 히요리 군과 보내는 이 시간밖에 없어서, 불편해할 것을 알면서도, 갈구했다. …아, 그래서 이렇게 되었구나. 분에 맞지 않는 것을 요구한 대가일까.
말끝이 흔들렸다. 정작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히요리 군, 너마저 사라져 버린다면…. 떠올리는 순간 후회했다. 얘기를 하면 안 되었다. 영원히 숨겨야만 했다. 너마저 나를 버린다면 이제 나는, 버텨낼 수가…….
말을 멈추었다. 무언가에 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히요리 군의 손이 얼굴에 와 닿았다. 아, 나, 울고 있어…? 그의 손에 물기가 묻어났다.
“…가엾은 신.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무척, 고생했겠어.”
품에 끌어안기자, 눈물이 쏟아졌다. 괜찮지 않았어, 사실은 조금도 괜찮지 않았어…. 히요리 군의 손이 느릿하게 등을 쓸었다.
“흡, 그, ㅎ… 히요리 군, 미안해.”
“응? 신이 미안해할 게 어딨어~ 난 다 이해해. 신도 신경쓰지 마.”
착하지, 응? 눈물도 그치고. 어깨를 짚으며 말해오는 히요리 군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어 보았다. 나 이제 괜찮아, 이야기하면 살짝 미소를 띄워 보였다. 무언가 불안한 듯 섬뜩한 얼굴이었지만… 기분 탓일 거라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머리에서 지웠다.
“있지, 신.”
“으, 응?”
“아주 조금, 조금만… 더 참으면 돼. 그래, 아마 하루 정도면 충분할 거야.”
“…?”
하루?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지만 히요리 군은 더 이상 얘기해주지 않고, 오늘은 바래다 줄게, 하면서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집에 가는 내내 히요리 군은 말이 없었다.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하는 듯한 모습에, 함부로 말을 걸 수가 없어, 그저 그의 옆모습만을 틈틈이 살폈다. 아무런 대화가 오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와 함께 밤공기를 쐬며 걷는 것이 좋았다. 다음번에는 내가 히요리 군을 바래다주고 싶어,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은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이었지만.
다음 날, 신은 평소와 같이 교실 문을 열었다. 닿아오는 시선이 이리저리 얽혔지만, 의도적으로 꾹꾹 눌러 무시했다. 책상이 엉망이었다. 여느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책상 위에 마구 칼질을 해 놓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건 흔적이 남으니까. 그저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던 책들이 마구 펼쳐져 바닥을 구르거나, 누군가에게 밟혀 자국이 남았다거나, 책상과 의자 사이에 걸려 페이지가 찢어져 있다거나 하는. 사고라고 말한다면 넘겨버릴 수 있는, 그런 사소한 문제가 있을 뿐이었다.
…괜찮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가방을 내려두고, 책을 주워들었다. 등 뒤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볼 뻔한 것을 겨우 참고, 책들을 하나하나 펴서 다시 서랍에 집어넣었다.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히요리 군이 보고 싶었다.
히요리 군의 교실로 향해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라, 하고 의문어린 목소리가 입 밖으로 새었다. 항상 가장 먼저 등교하는 히요리 군이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간 걸까, 생각하기에는 가방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휴대폰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상대와 연결되는 일은 없이, 연결이 되지 않아…, 하는 기계적인 멘트만이 흘러나왔다. 메신저 앱을 열어 ‘히요리 군, 오늘 학교 늦는 거야?’ 문자를 남겼다.
허전함을 느꼈다. 붕 떠버린 시간은 어떻게 해도 처치 곤란이었다. 일단, 교실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고민하다가 향한 곳은, 사람의 눈길이 잘 닿지 않는 학교 뒤편의 화단이었다. 히요리 군이 소개해준 장소. 고요한 정적이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히요리 군도 사람이니까, 언제나 매일 똑같이 사는 건 아니잖아. 기다리면 곧 학교에 올 거야.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히요리는 결석했다.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문제인가. 무단 결석이라니. 그린 듯한 모범생인 히요리 군과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학교가 끝나기 전까지, 매 교시마다 그의 교실을 살폈지만, 그의 빈자리가 채워지는 일은 없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오히려 그를 신경 쓰느라, 오늘 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흐릿했다.
신은 다시 한 번 메신저 앱을 열었다. 히요리 군, 무슨 일 있어? 혹시 문제가 생긴 거야? 어디 아파? 이런저런 문자들이 창을 메웠다. 답장은커녕 읽었다는 표시조차 띄워지지 않은 문자들에, 갑작스레 겁이 났다. 어제는 그럼 식으로 이야기했지만, 역시 나와 노는 것, 히요리 군도 싫은 게 아닐까…?
“아냐, 그럴 리 없어…. 그래, 히요리 군이 하루만 기다리라고 했잖아, 하루만…….”
그렇지만, 정말 어째서? 하루만 버티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머릿속 한구석에서, 너와 거리를 두려고 그냥 한 말이야, 악마의 속삭임처럼 중얼였다. 그럴 리 없어, 히요리 군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히요리 군을 의심하면 안 돼, 하나뿐인 친구잖아. 그래, 친구….
다음 날, 나는 등교 시간을 있는 대로 늦추었다. 지각만 하지 않을 아슬아슬한 시간에, 교문을 밟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나 괴롭힘당할 때도 학교에 오기 싫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야, 히요리 군이 있는걸….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에게 무척이나 의지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오늘도 히요리 군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걸음을 옮기는데,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
창문 밖을 내다보면, 경찰차 두 대가 급하게 운동장에 차를 세우는 모습이 보인다. 푸른 경찰복 위에 검은 조끼를 껴입은 경찰들이 차 문을 박차고 나와 학교 안으로 내달린다.
“무슨 일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멈춰섰다. 경찰이 올 만한 큰 일이, 대체 뭐야…? 우당탕, 발걸음이 계단을 울리는 소리가 울렸다. 가만히 서 있던 내 옆을 경찰관 두엇이 스치고 지나갔다. 시선으로 그들을 훑으니, 멈추어 서는 곳은 나의 반 앞이다.
아, 문득, 생각이 났다.
/“아주 조금만 더 참으면 돼….”/
그렇다면 이건, 히요리 군이? 멈춰 있던 발걸음을 떼었다. 반쯤 달리다시피 해 교실로 향하니, 와글와글 몰려 있는 사람들이 교실 문 앞뒤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저, 저기, 실례할게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생각에, 살짝 목소리를 올렸다. 그러나 앞에 있는 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잠시 놀란 낯을 하고는, 옆으로 자리를 비켰다. 그 앞의 사람도, 그 앞의 사람도…. 대체 무슨 일이지 싶으면서도, 비워진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교실 안쪽을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 다다랐을 때에는, 숨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 아……”
히요리 군이 그곳에 서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모습, 은 아니었다. 다 풀려 늘어뜨려진 머리카락이 마구 헝클어져 있었고, 항상 단정하던 교복도 이리저리 구겨진 채였다. 그리고 분명 자국 하나 없이 깔끔해야 할 그의 흰 와이셔츠 곳곳에, 얼기설기 붉은 것이 가득 튀어 있었다. 경찰들이 히요리 군을 둘러쌌다. 그는 경찰들의 수를 살피는 듯,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
문득 눈이 마주쳤다. 히요리 군은 설핏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포기했다는 듯이,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그의 손에서 놓인 책상이 바닥을 굴렀다. 아, 그제서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였다.
온통 피투성이가 된 사람 하나. 나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무리의 중심에 있던 남학생. 그러니까, 나와는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 같은 이였다. 시선이 느껴지면, 거의 절반은 그였기에, 원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멀리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히요리 군의 옷도 붉게 물들어있다고 생각했지만, 저건. 애초부터 붉은 옷을 입은 것처럼 피에 젖은 모양새였다. 자신의 피로 몸을 물들인 그는, 교실 바닥에 누운 채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죽은 것처럼.
사람들이 옆으로 물러서는 것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그들을 따라 옆으로 비켜나면, 경찰이 히요리 군을 데리고 교실 바깥으로 나왔다. 보폭을 맞추어 걸어나가는 그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창문 쪽으로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상황이 궁금한 이들은 히요리 군의 마지막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 안달인 것 같았다. 나는 그들 옆에 자리를 잡을까 고민하다가, 몸을 돌려 계단을 타고 1층으로 향했다. 그 화단으로 가면, 히요리 군을 볼 수 있겠지.
도착했을 때에는, 히요리 군은 이미 경찰차 가까이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걸음을 멈추자 생각들이 몰려들었다. 히요리 군, 어째서? 너무나 많은 것이 뒤바뀌었다. 그 애가, 네가, 내가. 휘몰아치던 생각은 한 점을 수렴했다. 내가, 네게 그 이야기를 해서….
히요리 군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가 무엇이라도 이야기해주기를 바랐다. 그는 눈을 접어서, 다시 씩 웃어보였다. 그의 손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무슨 생각일지 모를 얼굴로, 나에게 브이 자를 그려보이며, 입을 달싹였다.
‘잘 됐네, 신.’
…나는 이제 평생 이 날을 잊지 못하게 되리라. 그런 확신이 들었다.
***
히요리 군의 처벌은 생각보다 금방 결정되었다. 듣기로는 히요리 군이 모든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 이라고 했다. 한 달간의 정학과 사회봉사, 그리고 강제전학. 사람 하나를 의식불명으로 만든 대가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벼운 처벌.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그 애의 자리는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 이야기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그래서 어쩌면 당연하게도, 나에게로 쏟아지던 괴롭힘 역시도 종적을 감추었다.
우습게도 모든 것이 해결된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완전한 고립뿐이었다.
일주일 하고도 이틀이 더 지났을 때, 교실의 문 손잡이를 붙잡은 순간 나는 선명한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그날의 일을 잊으려고 하는 것처럼 점차 소리를 높여 이야기하던, 시끌벅적한 교실이 쥐죽은 것마냥 조용했다.
설마, 히요리가,
다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드르륵, 하며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그토록 선명할 수 없었다. 각자의 자리에 앉아서 자습하던 학생들 중 몇이 잠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으나,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급하게 다시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평소에 빈말로도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이들이 짜기라도 한 양 책에 얼굴을 파묻고 연필만을 움직이는 모습은 일견 기괴하기까지 했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사각, 사각 하는 흑연 부서지는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공간을 채웠다. 그리고 마치 영화처럼, 클로즈업 효과라도 준 것마냥 그것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깨끗하게 비워져 있던 빈 책상 위에 놓여진 유리병 하나. 그리고 그 안에 꽂힌 새하얀, 새하얀 국화 한 송이. 머리가 이해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여즉 열려있던 문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하면서, 화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며칠이고 며칠이고 등교하지 않았다. 밥을 언제 먹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죽은 듯이, 잠을 잤다. 졸리지 않아도, 잘 수만 있다면 그저 눈을 감고 의식을 수면 밑으로 가라앉혔다. 꿈에는 언제나 히요리 군이 나왔다. 히요리 군은, 언제나 웃고 있었다. 웃은 채로, 손에 쥔 것을 들어올린다. 종류는 상관없었다. 그저 들어올렸다가, 밑으로 내려친다. 머리가 잘 익은 수박처럼, 터져나간다. 펑, 펑, 하고, 폭죽이라도 되는 것마냥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내며 목 없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피가, 뇌수가, 이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껍데기와 내용물들이 바닥으로 퍼져나간다. 견딜 수 없어 눈을 감으면, 조용히 귓가에 속삭여 온다. /눈을 떠./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지독하게 익숙한 목소리일 뿐. 행동을 강제하는 목소리에 눈을 뜨면, 주위에는 온통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히요리 군은 어느새 사라져 모습조차 찾을 수 없다. 대신 온 몸에 튄 피가 선명하다. 손에 쥐여진 흉기는 접착제라도 붙인 것처럼 떼어낼 수 없다. 핏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목 없는 시체들이 유영한다.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액체에서는 도망갈 수 없어서, 몸이 잠기고, 숨이 차면, 발버둥치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잠겨든다.
학교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자퇴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선택지까지도 의식 내로 들어욌다. 부모님은 불평 하나 없던 아들의 일탈에 무척이나 당황하신 모양이었다. 두 분의 권유와 만류로 퇴학 대신 적당한 학교로 전학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지금 다니던 학교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그 때문에 아는 이 역시도 없었다. 조용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싶은 내게는 오히려 그것이 득이었다.
교복점에서 맞춰온 가쿠란을 몸에 대어 보았다. 몸선이 드러나기에 선호하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블레이저를 입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볼썽사나울지 몰라도, 나는 그 날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전부 없애버리고 싶었다.
“오늘은 전학생이 있다. 한참 학교를 쉬다가 왔지만, 잘 대해줘라.”
나는 선생님의 어투에서 약간의 불쾌함과 불편함을 읽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의 귀찮음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 몸을 덮쳐왔다. 아니, 정말 모르나? 이 기분을 언제나 느껴오던 때가 있지 않던가?
드르륵, 문이 열렸다. 검은색 가쿠란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이가 저벅, 저벅, 곧은 걸음걸이로 교탁 앞으로 걸어갔다. 익숙한 신발의, 익숙한 걸음걸이. 고개를 들고 싶지 않았다.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확신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닥을 울리던 소음이 멈추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이 잠시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제멋대로 깨어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히요리 소우입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해, 신?”
심장이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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