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죽어/소우신

[소우신] 단절

포스타입 20220924 발행

첫 문장 : 머리 잘랐어?

“어라… 히요리 군. 머리 잘랐어?”

“아아, 응. 어때, 신… 어울려?”

 

신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항상 목도리 너머로 드리워져 있던 그의 꽁지머리가 뚝 잘린것처럼 사라져있었다. 머리를 묶은 모습도, 풀어내린 모습도 익숙했지만 지금의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낯설기 그지없었다. 그럴 만한 징후도, 예고도 없었기에 충격은 더더욱 컸다. 근래 몇 년 중 가장 당황한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신은 무심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실연?”

“실연?”

 

앵무새처럼 그의 말을 똑같이 따라하는 히요리의 목소리에 신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히요리와 눈이 마주쳤다. 굉장히 흥미롭고도… 거슬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은 내가 실연 같은 걸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

 

신은 다급하게 고개를 좌우로 크게 저어보였다. 물론 그의 본심인 것 역시도 맞았다. 히요리 군과 실연이라니,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 때문에 실연을 당한 여자들이라면 또 모르지만.

 

 

“이제와서 학교에서 주의를 주었을... 리는 없고.”

“그럼! 두발 자유화인걸. 처음에야 조금 이상하게 보는 선생님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적응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났지?”

 신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와 동거를 하고 있는 지금, 히요리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단연 츠키미 신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유를 맞추기는커녕 가능성조차 추려내지 못하고 있다니. 어쩐지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던 히요리가 나지막히 웃음을 터뜨린 것은 그때였다.

 

“아하하, 신…. 생각보다 진심이 되었나 보네.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하는 걸 보니까.”

 

그 말에 신은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저도 모르게 목도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침에 히요리가 예쁘게 잡아 놓았던 목도리의 모양이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었다. 목도리의 모양이야 어떻든 상관없다고는 하지만- 마치 잘 열을 맞추어 세워둔 물건들이 비뚤어진 것처럼,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그것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듯이 히요리는 손을 뻗어, 섬세한 손길로 목도리를 매만졌다. 구겨진 주름들을 하나하나 펴내며, 그는 개구지게 웃어보였다.

 

“어떻게든 스스로의 힘으로 맞춰보고 싶은 신을 위해서, 게임 하나 할까?”

“게임…?”

“응! 어려운 건 아냐. 그냥, 그렇지. 스무고개 같은 거지.”

 

히요리는 조곤조곤히, ‘규칙’을 입에 담았다.

 

첫째, 질문에는 ‘네’ 혹은 ‘아니요’로만 대답할 거야.

둘째, 당연히 거짓말은 하지 않아. 무엇을 묻던지 솔직하게 답해줄 거니까 안심해도 돼.

셋째, 질문은 열 개까지만. 목표가 명확하니까… 스무 개는 좀 많잖아?

넷째, 질문이 모두 끝나면, 신이 ‘정답’을 맞출 시간이야.

 

“아하하… 기대하고 있을게, 신. 진실은 스스로의 손으로 밝혀내는 거니까 말야. …아, 그렇지. 게임이니까, 상품이 있어야겠지!”

“…상품?”

 

정말이지, 신은 표정을 숨기지를 못하네…. 대번에 이쪽을 기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는 마치 어미를 바라보는 소동물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히요리는 그런 그의 머리를 한두 번 쓰다듬어주었다.

 

“그래도 미리 알려주면 재미 없으니까아. 상품을 공개하는 건 정답이 공개된 뒤로 할까! 자, 신. 질문 시간이야!”

“자, 잠깐만, 히요리 군. 제한시간 같은 건 없지…?”

“흐응, 그런 건 생각 안 해 봤는데…. 어떻게 할까아-.”

“…….”

“뭐, 좋아. 이런 건 미리 안 정한 내 실수네! 오늘은 신에게 어울려주기로 했으니까, 얼마든지 기다려줄게~”

 

신은 질문을 하는 대신, 아까 켜두었던 컴퓨터 앞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키보드 위에서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아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이런저런 것들을 쓰는 듯이 보였다. 무척이나 몰입하는 것을 보아 한참은 질문을 시작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이지, 신은 뭐든지 열심이라서 기특하다니까.

히요리도 언제나와 같이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신이 기다리는 동안 느긋하게 제 할일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무심결에 뒷목을 쓸어올려 머리카락을 정리하려던 히요리가 손을 멈추었다. 머리를 잘랐었지, 참. 잠시 허전해진 뒷목을 만지작대다, 손을 내렸다. 컴퓨터 화면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신이 컴퓨터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것은 처음 이야기를 꺼낸 것으로부터 한 시간 쯤이 지난 후였다.

 

“히요리 군.”

 

히요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를 돌려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이제 끝났어, 신?”

 

즐거운 게임의 시작이었다.

 

 

 


 

 

 

“자아~ 그래서, 신이 생각하는, 정답은~?”

“그러니까… 기분 전환, 으로…?”

“와아- 정답이야, 신! 역시 대단하네~”

 

정답을 맞췄음에도 신은 무언가 허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히요리 군이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줄로만…. 히요리는 그 얘기에도 유쾌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머리카락을 잘라야만 하는 일 같은 게 무슨 일인지, 나는 감도 안 잡히는걸~? 정말 신의 말대로 실연… 이라면 또 모를까. 아하하.”

“히요리 군, 그거, 놀리는 거지….”

“글쎄에- 어떨까나아.”

 

히요리는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상품, 주기로 했었지? 정답을 맞췄으니까!”

“…상품.”

 

맞아, 상품. 신이 금세 표정을 풀고 기대에 부푼 낯을 지어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는 상품을 가지고 싶기 때문, 은 아니다. 그저 그에게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 행위로부터 파생되는 충족감. 그런 것이 신을 한없이 들뜨게 만들었다.

히요리는 현관 쪽으로 향하더니, 문 바깥에서 갑자기 선물 상자를 집어들고 들어왔다. 말 그대로 선물, 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노란색 리본을 화려하게 묶어놓은 연한 파스텔톤 색 상자의 등장에 신이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애초부터 선물이었던 거 같은데, 저거…. 히요리에게 또 속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마치 그것이 트로피라도 되는 것처럼 축사같이 들리는 것을 주절이더니, 신의 손에 선물상자를 턱하니 들려주었다.

 

“자, 신! 열어 봐!”

“…으응.”

 

설마 열면 장난감 주먹이 튀어나오는 거라던가… 그럴 리는 없겠지. 히요리가 그런 장난을 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신이 리본 끝을 붙잡고 주욱 당겨내었다. 리본으로 봉해져 있던 상자 뚜껑을 들어올리니,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은…

 

“……?”

“….”

“……히요리 군?”

“응, 신.”

“…이게…… 뭐야?”

 

상자의 크기가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아담한 사이즈의 그것은, 신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히요리의 뒤를 따를 때, 항상 보던 것이었으므로.

 

“신이 그리워하는 것 같길래~!”

“….”

 

선물 상자 안에 예쁘게 들어있는 꽁지머리는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신은 그것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답을 주었다.

 

“그, …고, 마워?”

 

…이걸 어디에 어떻게 두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착잡한 마음만이 애매하게 남았다.

 

“원하는 대로 써줘? 후후….”

 

 

히요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전부 순전히 기분 탓이었다. 머리를 자른 것도, 그걸 굳이 포장까지 해 가는 수고를 해가며 그에게 준 것도. 궁금증이 일었다. 너는 알아차릴 수 있을까? 그 안에 든 것이, 단백질과 섬유질로 구성된 세포의 집합이 아니라, 몇 가지의 화학약품을 섞어낸 인공섬유라는 것을. 손에 얽히는 느낌마저 한없이 진짜에 가까운 그 거짓을, 너에게 주는 단 하나의 증거품을 가지고… 나에게 도달해주길 바랄게. 신(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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