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NCP] FOOL

소우 생일 기념 글 / 근데 좀 소신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츠키미 신의 아침은 조금 느리다. 햇살이 그의 창문을 넘어 얼굴에 닿는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오늘도 잠이 깨워진 신이 으응, 하고 작은 투정을 부린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손만 뻗어 머리맡을 뒤적이다가, 손끝에 닿는 네모난 휴대폰을 잡아 전원을 켠다.

[1건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문자…? 딱히 보낼 사람이 없는데….’

라인이라면 모를까, 문자메시지라니. 이번에는 어디서 보낸 스팸일까, 생각하며 신은 상단 바를 밑으로 쭉 내렸다. 알림창에 모르는 번호와 함께 짧은 설명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xx회사입니다. 지난 면접에…]

면접. 신은 재빠르게 문자 탭을 켰다. 위아래의 쓸데없는 서문은 필요없다. 중간쯤을 빠르게 읽어내려가던 신의 눈에, 바라던 글자가 들어왔다.

합격.

두 번 읽고 세 번 읽어도 단어는 변하지 않는다. 어디선가 시뻘건 글씨가 날아와 ‘불합격’이라며 글자가 변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신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다시 읽었다. 당황이 천천히 기쁨으로 변했다.

“으앗… 으아아아아…!!!! 합격…! 합격이다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만세 포즈를 한다. 기쁨에 한창 취해 침대에서 폴짝폴짝 뛰던 중,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뭔가 수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한 아이가 문틈 사이로 그를 빤히 바라본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다. 신은 그녀의 시선에 은근슬쩍 팔을 내렸다. 중학생인 그녀의 앞에서는 항상 어른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만 같아서 볼이 살짝 붉게 물들었다.

“오빠, 뭐해…?”

“앗, 칸나! …칸나, 들어봐! 오빠 드디어 취업 성공했어!!”

“만우절 장난 아니고 진짜야?”

“만우절은 어제잖아! …문자도 어제 온 거 아니야! 진짜라니까!”

순간 만우절, 이라는 말에 심장이 철렁했다. 신은 다시 재빠르게 문자를 확인했지만, 만우절 장난이라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고, 문자 메시지의 날짜도 4월 2일이라고 써 있었다. 애초에 사람의 취업으로 장난치면 안 되지, 회사가…! 라며 고작 몇 초 사이에 수많은 생각을 한 소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칸나에게 다시 소리 높여 자랑한다.

“축하해, 오빠. 그럼 이제 오빠도 나한테 용돈 주는 거야?”

“엣, …그, 그럼! 오빠가 월급 받으면 칸나한테 용돈 줄게!”

“만세!”

그제서야 활짝 웃으며 좋아하는 칸나의 머리를 신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가 취업에 실패할 때마다 누구보다 격려해 준 것도 칸나였다. 진심으로 그의 성공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신의 얼굴에 미소가 방긋방긋 피었다.

“그렇지, 칸나 이제 학교 갈 시간 아냐? 오빠가 데려다줄까?”

“괜찮아! 오늘 개학일인 걸. 친구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ㅇ… 앗, 어느새 시간이!”

“늦기 전에 얼른 짐 챙겨야지. 친구들 기다리겠다.'”

“응, 응응! 오빠, 축하해! 안녕~!!”

“안녕~”

이제 집에만 있는 백수 생활도 안녕이다! 잠도 다 깼겠다, 신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휴대폰을 조작했다. 지금껏 응원해준 부모님이나 도와줬던 친구들한테도 소식을 알려야겠지. 한 명 한 명에게 라인을 전송한 신이 배실, 웃으면서 다시 문자 앱을 열었다. 문자를 다시, 또 다시 읽는 신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내가 취업이라니…!”

서류에서 떨어지기만도 십수 번, 면접에 가서도 너무 떨어서 수없이 많은 불합격을 겪었다. 처음 면접장에서 너무 떨어서 어버버거리다가 나온 건 지금 생각해도 흑역사였다. 어색한 정장 탓에 의자 등받이에 등도 제대로 못 대고 있느라 며칠 동안 허리가 아팠던 기억까지 새록새록 떠올랐다. 흐름을 타고 이어지는 생각은 곧 한 군데에 닿았다.

“역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밥 한 번 정도 사는 게 맞으려나…?”

고민하던 신은 라인을 켰다. 3분 전 보낸 문자는 어느새 1이 사라져 있었다. 신은 답장이 오기 전 황급히 문자 하나를 덧붙였다.

[나 회사 면접에 드디어 합격했어! 지금까지 도와줘서 고마워!] [10:42]

[그래서 시간 괜찮으면 밥 한 번 같이 먹고 싶은데…] [10:46] 1

[언제가 좋아?] [10:46] 1

[나 회사 면접에 드디어 합격했어! 지금까지 도와줘서 고마워!] [10:42]

[그래서 시간 괜찮으면 밥 한 번 같이 먹고 싶은데…] [10:46]

[언제가 좋아?] [10:46]

문자 옆에 붙어 있던 1이라는 숫자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신은 조금 놀랐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의 친구는 상식으로 재단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성인이 되고 술을 마셨을 때, 머리 끝까지 취해서 새벽 4시에 라인으로 읽을 수 없는 메시지들을 잔뜩 보냈을 때도 곧바로 읽고 답을 보내던 사람이다. 신은 종종 그가 인간이 아니라 어느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그럼에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신의 친구였다. 그것은 그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변하지 않았다. 되돌아온 긍정의 답변에 신이 활짝 미소지었다.

- [오늘 저녁에 만날까?] [10:47]

물음의 형식이었지만 사실상 확정하는 말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신은 괜찮지?’ 물어왔다. 다른 일정도 딱히 없었기에 신은 그렇다는 답을 보냈다.

- [그럼 저녁에 보자, 신. 기대하고 있을게.] [10:52]

짧은 문자였는데도 뭔가 진이 쭉 빠진 것 같았다. 신은 침대에 등을 대고 다시 폭 늘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천장에 붙어 있던 야광 별 스티커가 눈에 들어와 반짝반짝 빛났다.

“하아아아….”

오늘 문자를 받았으니까 출근은 내일부터겠지. …출근이라니! 내가! 출근이라니! 신은 괜히 매트리스를 손으로 팡팡 쳤다. 설렘과 기쁨에 가려져 있던 약간의 두려움이 고개를 내밀었다. 실수했다고 바로 잘리면 어떡하지, 사소하고 살짝 허황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간다. 신은 휴대폰을 붙들었다. ‘처음 출근할 때 주의할 점’ 따위의 검색어를 여기저기에 넣으면서 첫 회사생활을 상상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배가 꼬르륵, 하는 소리를 내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한 시간이나 침대에 누운 채로 빈둥댔다는 것을 깨달은 신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또 마음이 노곤해지기 전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어낸다. 아무도 없는 주방에 불을 켜고 가스레인지 위에 작은 냄비를 하나 올렸다. 요리는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지만, 콘포타쥬를 냄비에 올려 데우고 약간의 재료를 추가하는 정도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통해 제법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냄비 안에 차가운 수프를 넣고 약한 불로 살살 젓고 있으니 곧 맛있는 냄새가 주방에 퍼졌다.

“잘 먹겠습니다.”

혼자 있을 때의 특권이라는 느낌으로, 작은 접이식 책상을 거실에 펴고 그 위에 콘포타쥬가 든 냄비를 올린다. TV에서는 유명 ott 서비스를 지원해 줘서, 가족들은 주말에는 거실에 모여 다 같이 영화를 보곤 했었다. 부모님은 밥 먹을 때는 부엌에서 먹으라고 하셨지만…. 건담을 보면서 먹는 밥은 3배 정도 맛있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 신은 시리즈 이어보기를 눌러 다음 화를 재생시켰다. 익숙한 등장인물들이었지만 매번 새로 보는 것처럼 재밌었다. 신의 입이 오물오물, 하며 움직였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설거지를 할 차례였다. 신은 냄비 안에 물을 넣고 스펀지로 냄비를 슥슥 문질렀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처음 콘포타쥬를 끓일 때는 너무 센 불로 해서 콘포타쥬가 졸아들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었다. 게다가 이 냄비, 저 냄비, 이 그릇, 저 그릇… 이것저것에 옮겨담느라 설거지거리도 한가득 쌓였었고. 그때는 무조건 밥을 만들었으면 그릇에 담아야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설거지를 몇 번 하는 동안 그 생각은 눈 녹듯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이제는 설거지거리가 적은 게 최고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저도 어엿한 자취생-자취는 아니지만, 낮에는 거의 혼자 있으니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다-인 듯해 보였다.

‘그리고 이제 자취생을 넘어서 회사원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문자 온 거 다시 한 번 더 봐야지. 휴대폰을 찾으러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신의 눈에 한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라고나 할까, 도시락통이었다. 겉면에 크게 키즈치 칸나, 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신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 했다. 살짝 열어보니 안에는 오늘 지은 듯한 밥과 여러 반찬들이 들어있었다. 계속 상온에 있어서인지 조금 식었지만, 그래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눈을 깜박거리던 신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휘적였다.

“휴, 휴대폰, 휴대폰.”

휴대폰에는 칸나의 학교 일정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신의 눈이 더더욱 커졌다. 칸나의 점심시간은 12시 40분부터. 그리고 지금 시간은 12시 30분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부엌에 있는 건, 아마도 칸나의 도시락….

‘…지금 열심히 뛰어가면 시간이… 될까?’

잠시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던 신이 후다닥 제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어설프게나마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칸나의 학교에 가는데 너무 후줄근하게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머리 안 감았는데, …에잇, 모르겠다!’

방 책상 위에 올려진 비니를 대충 눌러쓰고, 도시락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열심히 달려가면 점심시간 시작 시간에 맞춰가진 못해도 50분에는 도착할 것이다. 그 정도면 밥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신은 칸나의 학교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흐아, 헉, 후아아아, …칸나? 있어…?”

“어라, 오빠?”

칸나의 반에 조심히 얼굴을 들이밀자, 반 뒤편에서 친구들과 모여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던 칸나가 쪼르르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야?”

“도시락 놓고 갔길래…. 늦었지만… 주러 왔어.”

“앗, 내 도시락!”

둘의 옆으로 사람들이 한둘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칸나와 함께 밥을 먹던 그녀의 친구들인 것 같았다.

“칸나, 그거 뭐야?”

“이거 내 도시락! 오빠가 가져다줬어.”

“뭐야, 오늘 밥 없다고 빵 사먹었으면서! 오빠 괜히 고생시킨 거 아냐?”

“설마 가져다줄 줄 몰랐지! 알았으면 라인했을 텐데.”

약간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눈빛으로, 칸나가 신을 바라보았다. 신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내가 가져다주고 싶어서 그런 건데 뭐…. 그리고 성장기에는 빵 같은 것만 먹으면 안 돼.”

“또 오빠 잔소리한다.”

“그렇게 넘기지 말고!”

말로는 투덜대지만, 칸나는 그가 학교에 온 것이 퍽 마음에 드는지 기쁜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친구들 역시도 신에게 관심이 많은 듯, 이런저런 것들을 칸나와 그에게 물어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 밥 맛있게 먹고, 나, 나는 이만 가볼게!”

“칸나 오빠 가지마요-!”

“아직 점심시간 남았는데!”

“칸나, 도시락도 챙겨먹어야 해! 빵만 먹으면 안 돼-!”

“알았어- 오빠 잘 가-!”

에너지의 한계가 다가오는 걸 느낀 소우는 조금은 다급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칸나의 친구들이 아쉬워하는 게 느껴졌지만 더 이야기를 나누다간 자신이 먼저 뻗을 것 같아 곤란했다.

“후아아….”

어느새 삼십 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자신이 한 말은 “어”, “그래”, “그렇구나”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무척이나 빠르게 흘렀다.

‘여중생은 무섭구나….’

중학교 때는 여자 동급생과 그다지 말해 볼 일이 없었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신은 제 파란 목도리를 매만졌다. 4월에 목도리를 하는 것이 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관심을 많이 받으니 어쩔 줄 몰랐다.

‘그렇게 이상한가…?’

목도 따뜻해지고 좋은데….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아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옛날에는 같이 목도리를 하고 돌아다니던 상대가 있었기에 쉽게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녁에 만나기로 했었는데.’

아무래도 미리 준비를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든 소우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와의 만남은 까다로울 것이 뻔했기에 시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흐른다. 그와 약속했던 저녁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신은 제 갈아입은 옷을 보았다. 평소에 매일같이 입던 보라색 외투가 아니라 정장을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은 여전히 영 어색했다. 그렇지만 면접을 위해 자주 입었던 탓에 이제는 그럭저럭 익숙해진 모습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목에 파란 목도리까지 두르니 정말 나갈 준비가 다 된 것 같았다. 신은 조금 이르게 집에서 나와, 그와 저녁을 약속한 식당으로 향했다.

“와아, 신! 일찍 왔네!”

도착한 약속 장소에는 이미 상대방이 도착해 있었다. 머리카락 끝에 매달린 꽁지가 그의 손을 따라 갸웃갸웃 움직였다.

“히, 히요리 군…?! 어떻게 벌써 왔어?”

“신이 먼저 약속에 불러줬는데 일찍 와야지. 안 그래?”

“그, 그건 고맙지만….”

아직 회사 퇴근 시간 전인 거 아닌가…? 신은 시계를 힐끔거렸다. 약속시간은 7시, 지금은 6시 반. 히요리 군의 퇴근 시간이 6시 반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6시였는데 내가 잘못 안 걸까…. 고민하던 신은 결국 내가 잘못 알았겠지, 생각하고 미소지었다. 미도리도 마음에 든다는 것처럼 따라 웃었다.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지, 내가 맞춰 볼까? …카레?”

“카레…?!”

“후후, 좋아할 것 같았어! 어차피 점심에는 콘포타쥬 먹었을 테니까.”

“그, 그건 어떻게 알았어…?!”

“신의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놔서일까? …아하하, 농담이야! 그냥 찍었어.”

“우우…. 놀랐잖아아….”

“신은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아.”

딸랑, 하고 가게의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히요리는 가게의 구석 자리를 신에게 권했다. 신도 그 자리에 내심 앉고 싶었었기에 거절 없이 그곳에 앉았다. 함께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끝내자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정장이야? 바깥에 나갔다 온 건 아닐 텐데.”

“그냥… 히요리 군도 정장을 입고 있을 테니까. 같은 걸 입고 싶었어.”

“그럼 이 목도리도 나랑 맞춘 거야?" 그거 기쁘네에.”

“그, 그건 그냥! …추우니까 두른 거야. 히요리 군도 목도리 두르고 있으니까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고….”

“헤에에….”

히요리는 전부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듯이 빙긋빙긋 웃었다. 신의 변화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는 투였다.

그들은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이라던가, 앞으로의 일이라던가, 혹은 한참 과거의 일이라던가. 함께 있었던 시절과 떨어져 지냈던 순간들의 이야기는 어느 쪽이어도 즐거웠다. 신은 무척이나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니 당연할 텐데도, 언젠가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중했다.

“그래서 상사는 좀처럼 마음에 안 들어. 다음 시즌에는 진급해 버리던가 해야지 정말.”

“히요리 군은 유능하니까 분명 할 수 있을 거야.”

“신이 생각해도 그렇지? 후후. 신도 잘 될 거야. 신도 얼른 진급해서 팀장님 되어야지?”

“어, 어어?! 난 아직 입사도 안 했는데…?!”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잖아! 신도 그런 생각 하고 정장 입고 나온 거잖아? 회사원 기분 내고 싶어서 말이지.”

“음, 으음,”

“아직은 백수면서 말이야.”

“윽….”

반박할 말이 없어서 신은 열심히 입 안에 카레를 떠 넣었다. 우물거리는 볼이 햄스터마냥 부풀어 있어 퍽 귀여워 보였다. 반면 히요리는 먹고 있는 줄도 잘 모르게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릇에 놓인 밥의 양은 분명하게 줄고 있었다. 대체 언제 먹는 걸까, 하고 궁금했지만 신 자신이 밥 먹는 데에 집중하고 있으면 금세 놓쳐버려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그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비밀을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

“여기 계산이요.”

“어어, 히요리 군, 오늘은 내가 계산하려고 했는데!”

“아핫, 아직 백수인 신은 얌전히 얻어먹도록 해! 선배로서 사주는 거니까 말이야♪”

“에엣, 그래도….”

“그리고 신은 오늘 생일이잖아? 생일의 주인이 돈을 쓴다니 안 될 말이라구우.”

“에? …어?”

“어라아… 실수했네에. 몰랐을 줄이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은 히요리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그렇지만 신은 속으로 놀라기 바빠 그런 히요리의 반응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어느새 제 생일이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던 탓이었다.

‘어느새 날짜가 그랬을 줄이야…! 합격 문자 때문에 완전히 잊고 있었어!’

그러고 보니 어제 자기 전에는 ‘내일이 내 생일’, 같은 생각을 하며 두근거리며 잠에 들었던 것도 같았다. 그걸 오늘 하루 종일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스스로에게 놀라움마저 들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맛있는 것도 더 많이 먹고 여기저기 자랑도 할 걸….“

“신은 맛있는 거라고 해 봤자 콘포타쥬니까 상관없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더 맛있는 콘포타쥬가 있다고!”

“헤에에… 그건 나중에 신한테 꼭 배우고 싶네~”

히요리는 태워다 준다며 차의 조수석을 열었다. 집까지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고, 버스를 타도 금방 갈 수 있어 어쩐지 미안한 마음에 거절하려 했지만 히요리가 몇 번이고 강권한 탓에 신은 결국 그의 차의 조수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안전벨트는 했어?”

“으응.”

“좋아! 착한 아이네에, 신은.”

“히요리 군은 꼭 우리 엄마처럼 이야기하더라….”

“내가 신을 키운 것도 맞으니까 엄마 노릇은 좀 해도 되잖아?”

“히요리 군이 나를 키웠다니 무슨 소리야! 그런 적 없잖아!”

“아하하, 과연 어떨까나아~”

과연 자동차로 이동하니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금세 신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은 이제 히요리를 배웅하려고 했지만, 히요리는 신이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집 앞에 차를 주차시켰다.

“…응?”

“간만에 온 김에 신네 가족한테 인사라도 하려고. 못 본 지 오래된 기분이니까.”

“엣….”

뭔가 억지에 당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또 마땅히 거절할 명분도 없어서 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짧게 삑, 삑, 하고 비밀번호가 눌리는 소리가 나고 곧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신은 문고리를 잡고 돌려 문을 열었다.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오빠!”

펑, 하고 터지는 폭죽 소리와 여러 사람들의 밝은 목소리에 신이 눈을 크게 뜨고 어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어, 어라, 에…?”

“아하핫, 서프라이즈!”

뒤에서 히요리가 신의 머리 위로 파티용 고깔 모자를 씌웠다.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는 신은 여전히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히요리가 밀고, 칸나가 팔을 당겨 신을 집 안으로 들였다. 소파에 앉은 신의 앞에 그가 좋아하는 베이커리의 케이크가 놓였다. 그의 나이에 맞게 꽂힌 초에서 일렁이는 불꽃이 일었다.

“자아, 생일의 주인은 소원을 빌고~ 초를 불어 주세요!”

“어, 어어, 그러니까… 앞으로 하는 일 다 잘 되게 해주세요…?”

훅, 하고 초가 꺼졌다. 와아아, 하는 환호 소리와 박수 소리가 섞였다.

“자아, 자, 생일이라면 사진을 찍어야지!”

히요리가 신의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칸나는 신의 왼쪽에 앉았다. 신의 부모는 신의 뒤에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찰칵, 하고 플래시가 튀었다. 다섯 명이 담긴 사진이 신의 손에 쥐여졌다. 신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사진과 제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곧 환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최고의 생일이었다.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Non-CP
  • ..+ 1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