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죽어/소우신

[소우신] Ideal

포스타입 20221231 발행 / 데스게임 이후 다시 미도리와 동거하는 소우.

 이번에도 배신당했다. 믿지 않으려고 했는데, 너의 몇 마디 말에 넘어가서,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생각해버렸다. 내가 변했듯이 너도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곳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신, 기회를 줄게.”

“…무슨 기회?”

“살리고 싶은 거잖아? 다른 사람들을.”

 미도리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진작에 죽었을 네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말투로 죽음을 입에 담는다.

“너, 인형…이었던 거야?”

“응? 아하하, 제법 실감나는 반응이었지. 글쎄, 거기서 죽은 건 진짜 나였을까, 아니면 내 모습을 한 인형일까?”

“대답하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해.”

“정말 나도 모를 뿐이야. 인형으로 창조되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인형일 수도 있고, 사람인데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기억을 잃은 걸 수도 있지.”

“….”

“신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인간? 인형? 네가 원한다면 어느 쪽으로든 행동해 줄 수 있어.

 미도리의 속내는 여전히 읽을 수 없고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나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미도리는 또다시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었다.

“나는, ….”


“자, 신. 늦겠어! 곧 자정이라구?”

“갑자기 사람을 왜 깨우는 거야, 나 내일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그래서 일 년의 시작을 잠으로 보내겠다는 거야? 그러면 안 되지, 신! 그랬다가는 1년 내내 게으르게 보내게 된다고? 새해 첫날의 첫 행동이 1년 전체를 아우르는 거야.”

 언제나처럼 말은 청산유수였다. 반박할 말은 수도 없이 떠올랐지만 그것들은 전부 미도리에게 더 많은 말을 시키는 근거가 될 것이다. 결국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다.

 미도리가 덥석 내 손을 붙잡았다. 나보다 낮은, 서늘하게까지 느껴지는 체온. 그리고 분명히 부드러운 살갗. 다시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덜덜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감싸 숨기며, 그 새 가빠진 숨을 급하게 내뱉었다.

“하아, 하아….”

“무슨 일이야, 신? 정전기라도 일어난 거야?”

 내가 손을 뿌리친 이유에는 관심도 없다는 투였다. 기분이 나쁘지도 않은 걸까. 나에게는 이제 그만큼의 의미도 남지 않아서? 

 이 상황이 구역질 나도록 싫었다. 또 나만 이렇게 네 앞에서 벌벌 떨고 있으니까.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너는 언제나 그랬었지. 웃는 낯을 하고는, 어딘지 무서운 분위기를 낸다. 이전에는 그조차도 너를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너를, 더 나아가서는 너와 함께 지내는 나를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만든다고.

 그렇지만 지금은 그저 네가 혐오스러울 뿐이었다. 인간의 형태를 한 괴물.

“…됐어.”

“흐응, 나한테는 말해주기 싫은 거려나?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내가 싫은 거야? 이왕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는걸~ 신이 나를 그렇게나 크게 여겨준다면 기쁘니까!”

“…….”

“반응이 없네에…. 뭐, 좋아! 신의 비밀은 나중에 직접 알아내 볼 테니까, 지금은 해야 할 걸 먼저 하자! 지금을 놓치면 또 1년이나 기다려야 하니까 말이지.”

 그렇게 말하면서, 미도리는 거실의 창문 쪽으로 향했다. 느릿하게 그를 따라 창문을 내다보니, 어둑한 밤하늘에 떠오른 달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만월이라고 했거든. 상징적인 날이지 않아? 신년에, 츠키미야. 이보다 더 어울리는 날은 또 없을 거야!”

“어울리다니… 뭐에?”

 너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의 말을 들으니 저 멀리에 뜬 달조차도 불길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미도리를 바라보았다. 유리구슬처럼 빛을 반사하는 눈동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그에게서 도망가려 한 발짝 뒤로 물러나니, 그가 팔을 붙잡아 온다. 힘이 들어간 손아귀가 보내지 않겠다는 것처럼 나를 붙잡았다. 웃기는 일이었다. 나에게는 붙잡을 기회조차 주지 않고 떠났으면서…,

“당연히, 신이 신으로 돌아가는 거지.”

“그게, 무슨 뜻이야?”

“으응? 신이 이해 못 했을 리가 없는데. 뭐어, 좋아! 이번에는 특별히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해 줄까나~”

“….”

“그렇다고는 해도,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지만 말이야. 신은 다시 츠키미 신이 되는 거야. 신이 빌렸던 ‘히요리 소우’를, 다시 나에게 돌려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이야기잖아?”

“….”

“자아,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신이 원했던 대로.”

 미도리는 빙긋이 웃었다. 두 팔을 한가득 벌리고, 신난다는 듯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띠고, 마치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과장된 투로 말을 한다. 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돌아간다니? 신으로? 츠키미 신으로?

 처음 나를 히요리 소우, 라고 부르게 되었을 때,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그 이름으로 불릴 때, 이미 츠키미 신은 버렸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살아남지 못한, 절대적인 약자. 수치로 시각화된 나의 가치. 그러니 히요리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거라면, 그라면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살아남았다.

 미도리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미소를 숨기지 않는 얼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너. 내가 ‘히요리 소우’를 가져간 탓에 미움받아버려서 끔찍한 꼴을 당한 비운의 사람. 네게 히요리를 돌려준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히요리,”

“응, 신.”

 바깥의 사람들이 소란스러운 것이 창을 통해 전해져왔다. 이제 정말로 코앞인 것이다. 과거가 끝나고 미래가 시작되는 날이. 그의 손에는 어디에서 난 건지 모를 파란 목도리가 들려 있다. 이미 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이 하나씩 수면 위로 올라와, 다시 목을 조른다.

 그는 말과는 달리 재촉할 생각이 없는지 끈질기게 내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대답을 하기 전까지는.

“히요리…,”

“….”

“하하, 빌어먹을. …너도 알잖아. 미도리. 되돌아갈 수는 없어.”

 이제와서 이전처럼 잘 지내보겠다는 이야기 따위, 말 그대로 악마의 속삭임일 뿐이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모르던 츠키미 신으로 살아갈 수는 없고, 너 역시도 내가 알던 히요리 소우가 될 수 없다.

“흐응, 그래. 유감이네….”

 미도리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그의 시선은 곧 다시 창 밖을 향했다. 분명 또 달을 보고 있는 거겠지. 알면서도 그를 좇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미도리는 사람의 시선을 끈다. 미도리의 손에 들린 파란 목도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있지, 신.”

“….”

“아무래도 나, 너를 좋아했던 것 같아.”

“……뭐?”

 미도리의 수작이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하잖아. 미도리가 고백이라니. 그것도 나에게? 미도리의 볼은 살짝이나마 상기되어 있었다.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 떄문에, 낮아진 체온 때문에? 그렇지만 미도리가 그런 걸로 저렇게 눈에 띄게 붉어지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가 제가 한 말이 부끄러워서 그럴 리도 없을 텐데. 뇌가 오작동을 일으킨 것만 같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눈물마저도 핑 돌 것 같았다. 어째서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야, 나는, 너를….

“나는, 널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가까스로 짜낸 말이 그것이었다. 가감 없는 진실이었다. 어떻게 보아도 인간의 신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이미 그것이 얼마든지 위조될 수 있다는 것은 몇 번이고 경험했다. 내 눈에는 그가 아스나로의 인형인지, 혹은 정말 살아 있는 인간인지, 둘의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 미도리도 알고 있었겠지. 그러니 ‘선택’하라고 한 것일 테다.

 미도리는 살아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약하게 만들므로. 관 속에 든 그의 조각난 시체를 볼 때보다, 살아서 내 앞에 서 있는 그를 볼 때 더욱 큰 공포가 느껴졌다고 하면, 그는 뭐라고 말할까. 이어지던 생각을 억지로 끊어내었다.

 다시 미도리에게로 생각을 옮겼다. 그래, ‘미도리’다. 아스나로에 의해 만들어져서, 사라 씨에게 이름을 부여받은 인형인 것이다. 히요리 소우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미 그 예전에 죽어 사라진 것이다….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언제였는지는 나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 사실에 의문을 품거나 놀라지는 않았다. 당연하지, 히요리는 그 때부터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으니까. 그가 손을 내밀어 주었을 때 느꼈던 환희를 기억하고 있다. 어딘가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그 열기가 나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 이유를 붙였다. 생각해보면 비정상적일 정도의 끌림이었다.

 마치 그가 나의 사진을 찍어 액자에 장식하듯이, 나 역시도 그와의 추억을 기억으로 남겨 머릿속 한켠에 걸어두었다. 그렇게 남은 기억들은 미련이 되어 너를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죽었다고 생각한 네가 다시 눈 앞에 나타났을 때, 그리고 다시 죽었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아마도 너만이 이해할 것이었다. 히요리는 언제나 나 자신보다도 나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또 나를 놀릴 셈이야?”

“아하하, 시치미떼도 소용없어. 그야, 신도 나를 좋아하잖아?”

“그건, …네가 아냐.”

 토해낸 말 뒤로 감정이 따라붙었다. 그래, 눈 앞에 서 있는 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그저 기억만을 입력받은 기계, 그저 그것만일 뿐이다. 그가 얼마나 히요리와 닮았든지 간에, 그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타인일 뿐이다. 그뿐일 테니까,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흥미롭네. ‘나’와 ‘히요리 소우’는 다르다고 하는 거구나아….”

“…….”

“역시 신은 나를 좋아하는 거지? 그러니까 이렇게, 필사적으로 나를 닮으려고 해. 무척 성장했어.”

“손, 대지 마…!”

 볼을 쓸어오는 손을 거칠게 쳐냈다. 명백한 거부의 의사에도, 미도리는 나를 향해 다가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를 피해 뒤로, 뒤로 물러나다 보니 금세 벽에 등이 닿았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게 되어서야,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신이 좋아.”

“….”

“그런데 이제 너는 신이 아니지. …그렇지?”

 목도리 밑으로 드러난 목을, 손이 움켜쥔다. 단번에 기도로 들어오는 공기의 양이 줄어들었다. 커헉, 하고 숨을 뱉어내었지만 다시 숨을 들이켜도 부족한 호흡이 채워지지 않는다. 손을 들어 미도리의 팔을 긁어내어도 목을 조여오는 손의 힘은 점점 더 강해지기만 한다.

“있지…, 나의 신으로 돌아와 줄래?”

“컥, 흐윽,”

“자,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돼.”

 대답은 못 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이야기하면서 미도리는 아핫, 하고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웃는 것에 맞추어 팔이 떨려온다. 내 목도 그것에 맞추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를 떼어내려던 손에 힘이 점점 빠진다. 이대로 죽는 걸까 싶은 생각이 머리를 메웠다.

 그래,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끝날 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기꺼워졌다. 더 이상은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산소가 부족해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 뇌는, 마지막으로 한 생각만을 느릿하게 반복했다. 끝내는 거야, 이제 끝을 내는 거야….


 눈을 다시 떴을 때에는, 거실 벽에 기댄 채였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침을 꿀꺽 삼키니, 목에서 아찔한 통증이 올라왔다. 급히 거울을 찾아 확인해보니 검푸른 손자국이 목 전체를 덮듯이 차지하고 있었다.

“….”

 그것을 보니 기억이 다시금 돌아왔다. 그래, 분명 미도리가. 그를 찾으려 방문을 열었다. 이 방에는 없고, 다음 방에도, 그 옆에도…. 또 어디로 간 거야, 생각하며 다시 내 방으로 향했다. 방금 눈을 떴음에도, 잔 것이 아니라 기절해서였는지 피로가 몸 이곳저곳을 짓눌러오고 있었다.

 조금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방 안이 어쩐지 위화감이 들었다. 여기 있는 건가, 생각하며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파란색 목도리였다. 단정하게 개어져 있는 그것은 히요리의 손길이 닿은 것이 명확해서, 그것을 보는 순간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뛰어가듯이 침대로 다가가서, 올려져 있는 목도리를 헤집었다. 엉망으로 구겨진 목도리를 손에 그러쥐어도 그것이 사라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명확해서,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너는 또 떠났구나.

“…미도리.”

 아, 익숙한 기분이다. 그래, 이건 분명 안도라고 부르는 감정이었다. 드디어 네가 떠났다. 내가 더 흔들리기 전에, 스스로의 존재를 없애 버렸다. 네가 있으면 나는 망가져 버릴 테니까, 분명 이것이 옳은 것이었다.

“미도리, 미도리….”

 알고 있는데도, 네가 없어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을 텐데도, 대체 왜일까. 눈물이 흘러내려 목도리를 적셨다. 목이 타들어 갈 것처럼 아팠다.

 나를 버렸어. 네가, 언제나 너만이. 그렇게 울었다. 울다 지쳐 잠들고 일어나서 또 울었다. 그렇지만 절대 찾지는 않았다. 너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인정해 버리는 꼴이니까. 너를 좋아했다고. 히요리가 아니라도, 나를 속이고 데스게임에 밀어넣고, 끝에는 멋대로 죽어버린 너라도 괜찮았다고.

 너는 히요리가 아니어야 했다. 히요리는, 내가 아는 히요리 소우는, 언제까지나 추억 속에만 존재해야 하니까. 

 그러니 더는 너를 찾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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