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출근
유료

게롱한 미식가

이자헌과 김솔음이 식사를 합니다.

Mirror World by Hyeun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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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플릿님과 트윗하다 나온 썰입니다.

*괴담출근 버전 고독한 미식가의 패러디입니다.

*주의 : 아마도 자헌솔음

직장인의 소박한 낙은 몇 개 되지 않지만, 그중에 빠른 퇴근은 손에 꼽을 수 있는 행복이다. 백일몽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이자헌 과장도 앞의 명제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이자헌에게는 그보다 더한 행복이 있었다.

바다 건너 옆 나라 자영업자가 자주 보여주지 않던가. 배를 채울 때 육신을 가진 존재는 이기적이고 자유로워지기 마련이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남을 신경 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 순간, 이자헌은 힐링의 개념을 몸으로 깨닫고는 했다.

 

사족이 긴 이유는, 그러니까, 배가 고프다. (Sound Effect : ‘게롱, 게롱, 게롱’)

 

그래서 이자헌은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이건 사람이라면 이해해줘야 한다. 이번 어둠은 힘을 쓸 일이 많았으며, 갓 주임이 된 부하직원은 유능함 때문에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올해 들어온 신입이었고 안타깝게도 손발을 맞춰온 다른 부하들은 여러 이유로 D조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 결론은 이번 어둠에서 이자헌은 많은 육체노동을 감수해야 했단 거다.

약간의 야근을 겸한다면 오늘 내로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겠지만, 이자헌은 늘 그렇듯 냉혈동물의 냉정한 이성으로 판단했다. 조기 퇴근이 답이었다. 김솔음은 눈치가 빠른 똑똑한 부하였으니 적당히 알아서 따르리라 믿었다. 그 탓에 이자헌의 걸음이 빨라졌고, 김솔음은 가면을 챙기고는 잰걸음으로 그를 따라와야 했다.

“조장님? 어디 가십니까?”

“네.”

평소라면 일단 멈추고 김솔음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김솔음은 이자헌의 조원이고 부하였으니 챙기고 돌봐야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퇴근길인데 굳이 그래야 할까? 궁금하면 다시 물으려니 하고 계속 걸었다. 분명, 아까 어둠에 진입하기 전에 봤던 가게가 있었다. 여기서 대로로 나가서 역 근처로 향하면….

“갑자기 말입니까?”

이자헌은 좀 더 설명을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인지했다. 김솔음은 성실했고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할 때까지 물어보는 성향이 있었다. 빠른 에너지 보급을 위해서 방해물은 조속히 정리해야 했다.

“배가 고픕니다.”

“지금 식당에 가십니까?”

“네.”

역시 김솔음은 길게 설명하면 알아듣는다. 이자헌은 나름 매우 흡족한 얼굴을 했다. 그제야 잠시 멈춰 서서 말했다.

“퇴근해도 됩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저도 배가 고프네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간소하게 D조 회식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이자헌은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솔음은 이자헌이 그동안 배려를 베풀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거침없는 걸음걸이는 성인 남자인 김솔음이 따라가기에도 버거울 정도였다. 설렁설렁 걷는 것처럼 보이는데 김솔음은 거의 뛰는 듯한 속도로 따라가야 했다.

이번 어둠은 회사에서 주어진 매뉴얼 대로 하면 충분했다. 정석적인 공략이 존재하고 위험이 없다면 굳이 진을 뺄 필요가 없다. 꿈결 수집기의 등급을 올릴 방법도 없었다. 위키에 올라온 수많은 어둠 중에는 그런 것도 있는 법이다. 다만, 그렇기에 이자헌의 괴력이 빛을 발했다. 김솔음은 선임의 버스를 제대로 타봐서 꽤 기분이 좋았다.

다만 공략 후에 현실에 돌아오자마자 이자헌이 빠르게 자리를 벗어난 것은 의외였다. 안전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김솔음은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위키 밖에 있는 이 세상의 현실은 모른다. 김솔음은 눈치껏 이자헌을 따라 움직였다.

한참을 가다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진짜 위험했다면 이자헌이 이렇게 말없이 행동하지 않을 거다. 말이 별로 없고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이자헌은 책임감이 강한 좋은 상사였다.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친절하게도 이유를 말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김솔음은 차오르는 숨을 겨우 가라앉히며 이자헌에게 물었고,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김솔음은 이 기회에 이자헌이 무엇을 먹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설마 생고기라도 먹겠는가. 인외를 위한 식당에 대한 괴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김솔음은 이자헌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그를 따라갔다. 사실 김솔음도 점심을 뜨는 둥 마는 둥 해서 배가 고팠다.

-이런 노루씨. 이른 퇴근을 포기하고 상사와 식사를 하는 겁니까? 놀랍군요.

‘이게 다 사회생활이지.’

-아아, 그렇지요. 상사와 단둘이 밥을 먹는 일도 필요하죠. 노루씨의 정치적인 판단은 훌륭하군요!

‘고마워, 브라운.’

김솔음은 잠시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오염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자헌 개인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상사랑 둘이 밥을 먹을 수 있나? 김솔음의 고민이 깊어질 무렵, 이자헌이 멈춰섰다.

“김솔음씨 육회 괜찮습니까?”

김솔음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마뱀과 육회라니 어울리는 조합이다. 게다가 가게도 멀쩡해 보였다! 김솔음은 적잖게 안심하고는 이자헌을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어둠을 탐사하라는 업무를 받았을 때, 이자헌은 기억해둔 맛집을 떠올렸다. 아침마다 마장동에 가서 고기를 가져오는 육회집이 그곳에 있었다. 한동안 육회를 먹지 못했던 탓에 이자헌은 절로 군침이 돌았다. 저녁을 겸할 생각이었기에 이자헌은 일단 육회 비빔밥 세 개와 소주 한 병, 육탕이와 육전을 시켰다. 비빔밥 하나는 당연히 김솔음의 몫이었다.

먼저 나온 뜨끈한 소고기 무국을 한 수저 뜨니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김솔음이 소주가 나오자 뚜껑을 열어서 이자헌의 잔에 술을 따랐다. 이자헌은 조용히 잔을 받고 김솔음의 잔을 채웠다. 김솔음이 예의 바르게 고개를 돌려 잔을 비우는 것을 보고는 슬쩍 웃었다.

“회식이니 마음껏 드십시오.”

“…감사합니다.”

빨리 나온 것은 육회비빔밥이었다. 이자헌은 슥슥 밥을 먹어서 한 입 먹었다. 신선한 채소와 어우러지는 육회는 고소했다. 쌀밥과 절묘하게 맞물리는 맛있는 양념과 참기름의 향이 절로 기분을 좋게 했다. 이자헌은 씨익 웃고는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두 번째 그릇을 비볐다.

육탕이와 육전이 나오고, 이자헌은 자연스럽게 육사시미와 육회를 추가했다. 아무리 봐도 양이 젓가락질 몇 번이면 사라질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맛있는 육회를 즐기자니 행복했다.

 


김솔음은 얌전히 밥을 몇 술 뜨다가 점점 숟가락질이 느려졌다.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저런 속도로 먹는데 지저분하지도 않고 깔끔하지? 음식이 삭제되는 속도가 어마무시했다.

-쇼 비즈니스 맙소사! 저자는 왜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겁니까? 당장 먹방 BJ로 데뷔하면 엄청난 스타가 될 텐데요!

‘모두가 재능대로 살지는 않잖아.’

-으음…. 그래도 아쉽군요. 저렇게 맛있게 음식을 즐기는 자는 드문 법입니다. 제가 진행하는 쇼와는 맞지 않지만, 분명히 수요가 있을 텐데요….

‘조장님은 말주변이 없으셔서 안돼.’

-저런, 안타까운 일입니다.

잠시 브라운에게 주의를 기울여 이자헌을 구명하는 동안, 김솔의 앞 접시에 육회와 육전이 야무지게 담겼다. 놀라서 이자헌을 바라보자, 이자헌은 먹으라는 듯 손짓했다.

“맛있습니다.”

“아, 예. 잘 먹겠습니다, 조장님.”

“근력을 키우고 싶으시면 단백질을 잘 섭취해야 합니다.”

김솔음은 감동했다. 그러니까 지금 챙겨주는 거다. 이자헌이 혀를 낼름 하며 육사시미를 한 번에 다섯 점씩 먹어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음이 넓으니 위장도 큰 것이 분명했다. 아직 인품이 넉넉하게 나온 것도 아니니 더 드셔도 문제없을 것이다. 도마뱀도 성인병에 걸리나? 그래도 이자헌은 그런 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김솔음은 이자헌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의 소주잔을 채웠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이자헌은 법인 카드 내역을 재무팀에 제출할 때, 확실히 ‘D조 회식’이라고 적을 수 있어서 흡족했다.

 

 

 

소장용 결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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