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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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왜 야구를 선택했나요?" 방금 시속 138km짜리 직구를 꽂아 넣은 후배가 당돌하게 물었다. 태도는 조심스러우나 내용이 문제였다. 어제부터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이걸 물을지 말지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다. 굳이 둘만 남은 추가 연습 시간까지 기다린 점은 칭찬할 만 하지만 녀석의 어두운 머리통 안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도출된 질문일지 뻔해 달갑지 않다
송다빈은 어지간한 건 곧잘 했다. 얼굴은 세상 의욕 없어 보이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무던하게 해냈다. 정노을은 게임패드를 조작하는 후배 놈을 쳐다보며 실소를 흘렸다. '알긴 알았지만….' "재수 없네, 진짜…." 실언했다. 첫음절을 입 밖으로 냈을 때부터 아차 싶었지만 엎어진 컵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마저 흘려버렸다. 정노을은 송다빈의 표정을 살폈다. 녀석
송다빈은 정노을에게 초대 받았다. 정노을이 초대했다. ‘이번 주말에 집 비니까, 놀러 와.’ 송다빈 맞춤형 구종 강의를 하던 중에 갑자기 툭 던지듯이. 투수는 포수가 기습적으로 던진 말을 엉겁결에라도 받을 생각 하지 못하고 얼굴에 물음표를 백 개 띄웠다. 포수는 노트에 끄적이던 9분할 면을 마저 그린 후에야 송다빈을 슬쩍 바라보며 눈으로 웃었다. ‘영상 자
정노을은 자아 없는 투수를 좋아했다. 하지만 투수라는 생물의 특성 상 무자아인 투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노을이 택한 차선은 [확신 주기]였다. 내 전략이 네 것보다 낫다는 확신, 시키는 대로 던질 수만 있다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 너의 판단은 그르고 내 판단이 옳다는 확신. 종래엔 투수 스스로의 의지로 정노을에게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송다빈에게선 샤워실 공용 비누 냄새가 났다. 정노을은 그게 묘하다고 생각했다. 훈련이 끝난 저녁에야 야구부 대부분이 풍기는 냄새지만, 송다빈은 하루 종일 그 향내를 냈다. 빡센 훈련으로 땀범벅이 되어도, 혈중 비누 농도가 몇 %를 차지하고 있기라도 하는지, 녀석에게선 온종일 그 비누 향이 났다. 박스째 들여놓는 싸구려 오이 비누. 정노을이 송다빈의 입학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