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인 솜털 만지는 글

자르반스웨인

개그 뻘글이고 캐붕 많읍니다 쓰고싶은 것만 썼음

-구 스웨인 기반으로 쓰기 시작해서 스웨인이 까마귀로도 변신함

데마시아의 왕자 자르반 4세는, 지금과 같이 어이없고도 황당한 사건은 일평생 겪어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일련의 사태에 황당함을 넘어선 분노까지 느껴야만 했고, 그 사실은 그의 반대편에 서서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있는 이를 즐겁게 만들고 있었다. 자르반은 그것까지 포함해 모든 사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노호성을 내질렀다.

"썩 꺼져라, 더러운 녹서스 까마귀놈! 네놈의 기만은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이딴 식의 기만이라니 신물이 난다!"

"언제는 신물이 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하는군, 왕자."

"말 장난은 집어 치워!"

턱을 비뚜름히 한 채로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자르반은 삿대질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는 전혀 개의치 않고, 곧게 뻗은 자르반의 팔을 힘주어 아래로 내리며 웃어보였다.

"성질을 죽여야지. 네 가당치도 않은 엉덩이가 옥좌 위에 얹어지기라도 하고 싶다면 말이다."

"엄연한 무단 침입에 국경 이탈, 네놈 자신이 무력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명백한 침략 행위란 말이다! 그리고 그 못생긴 얼굴도 치워!"

의외로 마지막 문장에 타격이 있었던걸까? 진상은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나, 스웨인의 얼굴이 싹 굳어진다.

"네놈이 직접 초대하지 않았나. 초대받은 손님을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내칠 셈인가? 안그래도 기대치는 없었다만, 이런 걸 왕자라고 키워낸 궁인들이 불쌍해질 지경이군."

"초대? 미쳤다고 네놈을 초대한단 말이냐? 내가 네녀석을 초대할 장소는 전장 뿐이란 말이다."

"거 참, 어마어마한 영광에 몸둘 바를 모르겠는데. 이왕이면 장례식에도 초대해주겠나? 장소는 말해줄 필요 없네. 분명히 녹서스에서 치뤄질 테니까."

더 이상 대답할 가치를 찾지못한 모양이다. 자르반은 입을 꾹 다물고 거칠게 창문을 열어젖혔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필시 왕자가 자살하러 간다고 생각했을 정도의 비장미가 감돌았다. 다만, 대개 녹서스인이 바라는 바를 왕자가 제 발로 이뤄줄 리가 없었다. 그는 창턱에 발을 얹고 뛰어내리는 대신 스웨인을 바라보며 분노를 짓씹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뛰어내려라. 그렇게 한다면 이 침략은 없던 건으로 하겠다."

"아쉽군. 난 네가 드디어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결하려는 줄 알았다만."

"가문과 국민에 맹세코 내가  네녀석을 죽이기 전에 죽는 일은 없을 거다. 부끄러움을 안다면 세번째로 자결을 권유하기 전에 뛰어내리도록."

스웨인은 코웃음을 치며 천천히 창가로 걸어간다. 실제로 자결하라고 말한 건 아니었지만, 스웨인의 행동에 자르반은 당황하는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이 녹서스의 까마귀놈이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는데. 말려야하나? 아니면 이대로 뛰어내리게 두어야 옳은가? 스웨인 쯤이나 되는 흑마법사가 몇층 안되는 높이에서 떨어뜨려봐야 죽을 리가 없으나 스웨인이 드디어 자신의 말을 들어준다는 사실에 왕자는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천천히 걷던 발걸음이 정확히 창가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한쪽 발을 들어올려 창턱에 얹는다. 자르반은 그 행동을 응원해주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기사도에 어긋나는 생각이라고 그를 비난하기에 먼저 자르반이 그동안 녹서스의 대장군에게 겪어왔던 끔찍한 수난이며 모욕들을 언급해야 옳을 것이다. 스웨인은 창문 아래의 허공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창턱에 기대앉는다. 그리고선 자르반을 똑바로 바라보며 히죽 미소지었다.

"서있는 것보단 편하군."

"......."

말없이 이를 드러낸 자르반의 얼굴을 감상하며 스웨인은 여유롭게 다리를 꼬아보이기까지 한다.

"하던 이야기 계속 해보시지."

옛 보람 다크윌 시대 정도라도 되었다면, 자르반은 댁의 장군 중 하나가 내 침실의 창가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으니 데려가라는 사실에 기반한 국서를 보냈을 터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웃기지도 않는 서신을 보낼 언덕도 없기에 자르반은 이 상황을 혼자서 타개해야만 했다. 리그에 서신을 보내면 어떨 것인가. 녹서스의 장군도 아니고 녹서스의 수장과 한 침실에 있다는 말을 대체 누가 믿어줄 것인가. 소환사들이 왕자가 별 시덥잖은 농담도 다 한다며 비웃지만 않는다면 다행일 지경이다.

스웨인은 왕자의 복잡한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썹을 늘어뜨리며 짐짓 안타까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말이 없나. 내 몸을 만지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 아니었나?"

"대체 어떤 이상성욕자가 네따위를 만지고 싶어 하지? 이름이나 알고싶군 그래. 역겨워 피해가고싶으니 말이다!"

"-벌써 모르는 체 하다니. 내 몸을 만지작거리며 희롱해놓고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겠다 이건가?"

"정말이지, 구역질이 나는군...."

솔직하게 질렸다는 표정이다. 자르반은 한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꼴을 더 보고있자면 슈리마산의 귀한 카페트를 더럽히리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스웨인더러 역겨운 헛소리는 집어치우라며 창틀에서 밀어버리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어느정도 스웨인의 말이 사실인 이유였다. 자르반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중얼였다.

"네놈인 줄 알았더라면, 결코 몸을 만지는 일 따위는..."

"그러나 이미 잔뜩 만져버린 게 아닌가? '명예'를 아는 데마시아의 왕자라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도 알고있겠지. '책임'도 알고있을 테고."

전후사정을 떼어놓고 본다면 오해받기 딱 좋을 대화가 오간다. 이따위의 일에 명예며 책임이며 하는 막중한 단어가 오가도 단어에 대한 모욕이 되지 않을 것인가? 아마 문학가나 사학자들도 평가를 내리긴 어려울 것이다. 양국의 수장이 나누는 대화라면 그것이 비록 사적인 대화일지라도 역사의 일부분이지만 이토록 무의미한 대화라면 사학자들도 곤혹스러워 할 일이며, 문학의 영역으로 옮기기엔 문학가들이 손사래치며 사양할 저급한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르반은 기사도를 아는 자로서 기사의 단어를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책임은 얼어죽을 책임, 단순히 네놈이 처음부터 까마귀로 변해 정원에 앉아있지만 않았어도 모두 없었을 문제 아닌가? 내가 발견하기를 원했겠지, 그리고 네놈의 목적대로 내가 행동했을 뿐이고! 네녀석, 감탄하는 표정 짓지 마라! 이정도도 예상하지 못할 것 같으냐!"

"-제법이군, 왕자."

"분한 것처럼 말하지도 마라,  분개할 쪽은 오히려 이쪽이 아닌가! 네놈에겐 염치라는 개념도 없는건가? 애초에 염치를 알았다면 이따위 장난질은 시도하지도 않았겠지."

빠드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 스웨인은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숨죽여 웃으며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이 정신나간 놈이 또 무슨 짓거리를 할지 두려워진 왕자는 반사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했으나, 돌아온 것은 전력을 다한 반격이 아닌 부드러운 리드였다.

오른손, 굳은 살이 박혀있으나 인간의 체온이 남아있는 손으론 상대의 같은쪽 손목을 상냥하게 그러쥐고 왼손, 흉한 발톱이 돋아난 악마의 손으론 상대의 등을 가볍게 끌어당긴다. 균형을 잃는 건 순식간이었고, 몇초 새에 자르반은 스웨인의 품에 아이처럼 안긴 꼴이 되었다.

"가만히 있도록. 꼴 사납게 바르작거리지 말고."

방금 전의 손길과는 달리 엄중한 어조로 경고한다. 경고한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사이는 아니지만 스웨인의 등에 펼쳐진 칠흑같은 날개를 보자  왕자는 반항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곧게 뻗어진 날개깃은 칼날같이 예리하고, 날개를 뻗어올린 근육은 평범한 새의 그것보다 역동적인 위험스러움이 꿈틀거린다. 실로 악마의 그림자다웠다. 전쟁터에서 그 날개를 본 이 중에는 한명도 살아남은 자 없으니. 자르반은 제 입술이 경악으로 벌어지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다. 그의 손은 날개 안쪽의 솜털에 닿아 있었으니까.

자르반은 기겁하며 스웨인의 손아귀를 뿌리쳤으나 그렇다고 해서 피부에 남은 감촉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보들보들하고 따뜻한 깃털의 감촉은 징그러울 정도로 피부에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솜털? 저것도 꼴에 날개라고? 그는 경악에 찬 눈으로 스웨인을 흘겨보았으나, 정작 스웨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팽개쳐진 손목을 털고있을 뿐이다.

"네, 네놈이 미쳐있단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알고 있었으나?"

"이정도로 미쳐있는 줄은-"

"부드럽지 않던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해 잔뜩 떨리는 목소리. 자르반은 스웨인이 이 반응을 즐기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 지는 이해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제 당혹감을 쉽사리 감출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짓을......."

따지고 보면 처음부터 다친  까마귀로 위장해 데마시아 궁성 안에 들어온 것도, 불쌍히 여긴 왕자가 그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을 때 마저 가만히 안겨있던 것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기행이다. 두번째의 강렬한 충격은 첫번째의 충격을 잊게 하는 법. 자르반의 주의는 완벽하게 솜털에 돌아가 있었다. 스웨인이 원하던 상황이기도 하면서.

스웨인은 한참 동안이나 왕자의 감정을 즐겼다. 심판이라는 신성한 의식을 피로 더럽혔을 때 조차 이렇게까지 즐거운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그는 손가락을 까딱이다 느긋한 태도로 질문에 답했다.

"날 영원히 잊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지. 그래, 만지고 싶던 날개는 부드럽고 하니 기분이 좋은가? 적국의 수장을 침실로 끌어들인 방탕한 왕자여."

왕자의 굵은 손아귀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한마디만 더 지껄인다면 저걸로 코뼈를 부러뜨려 놓겠다는 의미이다. 마력이 봉쇄되는 데마시아에서 정면으로 싸워봐야 유리할 게 없겠지. 또한, 무기가 없는 상태에서 덤벼봐야 자르반 역시 스웨인의 숨통을 끊어놓기는 어렵다. 스웨인은 슬쩍 자르반의 주먹을 흘겨보곤 일어서 창틀에 발을 올렸다.

 "또 만나지. 그때는 네놈의 장례식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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