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벤] 제 2막

1천자챌린지_6

나의 오만함이 너와 나를 죽이는구나. 노인은 감기는 눈을 못 이긴 채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한낮의 침묵은 다른 차원의 세상 같다. 오싹과 무서움, 그 차원의 공포가 아니었다. 벤은 침을 꼴깍 삼키고 식어가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죽었다는 확신이 든 순간 그는 곧장 방을 박차고 화장시로 달려나갔다. 하마터면 바지에 소변을 적실뻔했다. 자신을 바라보며 원통함을 토하는 노인의 마지막 유언에 속옷을 살짝 적시던 참이었다. 손을 씻고 화장실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팔을 잡아당기는 파이브였다. 제 조부의 임종을 벤에게 맡긴 채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어느새 장례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는 제법 어린애다운 말투를 쓰며 벤을 데려왔다고 소리쳤다. 거실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쏠리자 다시 바지를 적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파이브는 벤의 손을 꼭 잡고 영정사진 앞에 섰다. 벤은 흘끗 옆을 올려다보았다. 너는 또 키가 컸구나. 여기 모인 사람들은 우릴 같은 나이라고 생각할까. 건조한 검지손가락에 툭 튀어나온 살점 하나가 거슬렸다. 순간 거실을 가득 메운 박수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수많은 검은색의 어른들이 모두 파이브를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장례식 분위기가 아닌 어떤 축하를 위한 자리같았다. 벤이 작은 머리를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파이브가 말했다.

“축하해, 벤.”

다정하게 미소짓는 눈빛이 무서웠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벤은 맞잡은 파이브의 손을 빼내려 어깨를 뒤로 물렸지만 쉽사리 놓아줄 파이브가 아니었다. 변호사가 유언장을 읽는다. 당신 사후에 반드시 벤을 내쫓겠다던 호통의 문구들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 가주라고요?”

“할아버지의 뜻이야.”

“그치만, 파이브 너는?”

“물론 너와 함께지. 달라지는 건 없어.”

아니 정반대였다.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벤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의 오만함이 너와 나를 죽이는구나. 노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제게 퍼붓는 마지막 저주인줄 알았던 그 말의 속뜻을 이제서야 눈치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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