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眼

01

과거비설

So Take Aim and Fire It Away

I‘ve Never Been So Wide Awake

No Nobody But Me Can Keep Me Safe

..And I‘m On My Way.


-진옌은 어릴 적 부모와 해외 여행을 나갔다가 길을 잃고 납치당했다.

-노예시장에 팔려간 그는 사이비 교주에게 제물로 팔려간다.

-외딴 마을에서 숭고한 의식에 바쳐질 제물로서 그는 마을에 생과 사를 관장하는 신으로 추대 받는다.

-그가 마을에 지내게 된지 3개월 즈음 되는 날, 정을 붙여 친하게 지낸 동성친구가 번제물로 바쳐질 위기에 처한다. 살고 싶었던 그의 친구와 달리 삶에 대한 의욕이 미약했던 진옌은 둘을 바꿔치기 하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작전은 금방 탄로나게 되고, 친구는 암흑가에 팔려가게 된다. 또다시 3개월이 지난 시점, 마을은 근친상간, 동성애, 비위생적 생활환경과 고립과 고독으로 마을 전체의 부폐가 한창이었다. 마을에서는 이탈자가 여럿 나오기 시작했고, 이를 공개적으로 참수하며 마을 안팎 경계는 더 심화됐다. 사람들의 고통과 예민함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들은 일-마약생산 및 유통-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마을이장과 유통업 수장은 그들을 수행능력을 되찾을 희생양을 찾았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진엔에게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신으로 우대받아 저희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는 진옌을 하나둘 시기하고 원망하기 시작했으며 종국에는 그들을 보살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희생시키기로 결정한다. 불이 붙여지기 직전 하늘에서 우뢰와 천둥소리가 들리고 바다에서는 용오름이 치솟으며 일순 해가 사라진다. 다시 해가 비친 자리에는 진옌이 서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신의 헌신이 진옌이라 생각하고, 한낱 한시에 모두 구원받기 위해 약 7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절벽 밑으로 몸을 던지고 스스로의 몸에 기름을 붙여 그를 위한 의식을 치뤘다. 진옌은 이 모든것을 묵묵히 지켜보다가, 도망치려 드는 이장을 발견하고 그를 돌도끼로 찍어 죽인다. 그의 첫 살인이었다. 모든 것이 재가 되어 남은 자리에는 오직 진옌과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모가 미처 챙기지 않은 아이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진옌은 팔려간 그의 친구의 발자취를 좇기 위해 마약 밀매가 진행되는 항구로 향한다. 그의 밑에는 7살도 안 된 어린 아이들이 있었고, 그는 차마 그들을 버리고 갈 수 없어 다함께 움직이게 된다. 한편, 마약을 전달받기 위해 마을에 들린 마피아는 일어난 사태에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가 모조리 사라진 재화의 흔적을 발견하고 진즉 죽은 이장의 뒤를 쫓는다. 뒤가 밟히는 것을 모른채 항구에 입성한 진옌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배 아주 밑바닥에 숨어들었다. 6개월이 넘는 항해 동안 그들은 배 밑에 쌓여있던 보급품과 함께 들어온 쥐, 벌레 등을 잡아먹으며 생을 연맹했다. 그 과정에서 영양실조로 데려온 아이들 중 절반이 죽었고, 진옌은 그들을 매섭게 넘실되는 파도 밑에 매장했다. 그의 눈동자가 침잠해갈수록 떠오르는 태양은 더 뜨겁게 작렬할 뿐이었다.

-이윽고 선박이 뭍에 다다르자 시뻘건 풍등이 그를 성대히 반긴다. 때는 << >> 가 열린 날이었다. 거기서 그는 소년을 처음 만난다. 얼굴에 하얗게 분을 칠하고 눈가와 입술을 벌개 화장독이 오를 것 같이 위태로우며, 혀 밑은 독뱀을 머금은 듯 시커멓고, 잿가루가 흩날리는 하늘을 담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를. 저잣거리 왈패들은 그를 [ 사련 沙蓮 (사막의 연꽃) ] 이라 불렀다.

-사련이 진옌을 데려간 곳은 항구로부터 꽤 외각에 있었다. 위장속에 질서없이 쌓인 음식물 덩어리처럼 엉망으로 구성된 성채 안을 해매는 법 없이 쏙쏙 찾아걸었다. 사련은 진옌과 아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었으며 구룡에서 생존하는 법과 시신을 처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진옌은 그에게 보금자리를 받는 대신, 그가 가져온 뽕의 제배와 제조법을 알려주었다. 진옌과 아이들은 구룡 내에서 심부름을 하고, 사련은 마을에서 춤을 추며 치맛폭 밑으로 뽕을 거래하는 식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한 여름에는 펄펄 끓는 만두 찜기같은 성채 안에서 서로가 내뱉는 숨을 들이마시며 살았고, 밤에는 매서운 추위가 살과 뼈 사이를 갈라놓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진옌은 그 어느때보다 제 속이 차 있는다는 충만감에 살았다. 진엔은 그의 속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게 설령 불행이어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화로 그 자체였으니, 그의 속에 들어온 모든 것은 들어오는 족족 모든 것을 불살지르는 재앙의 장작, 다른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었다. 세상은 불행이라 할지라도 그로부터 하여금 모든 것을 앗아가기 위해 단단히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선천적으로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독성 강한 뽕을 몸 가까이 지니고 다녔으니 오죽할까. 진옌은 어느 순간부터 사련이 해야할 일을 모두 대신하고 있었다. 잠을 잘 시간도 먹을 시간도 부족했다. 애초에 그럴 형편도 되지 못했지만. 본디 물에서 피어났어야 할 연꽃은 사막에서 발아하여 서서히 말라가는 중이었다. 남들에 비해 타고난 유전자가 좋았음에도 후천적인 공급이 딸리자 진옌도 하루가 멀다하고 상태가 나빠졌다. 웃을 수 없었다. 웃는 것은 기만이었으므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것은 비겁한 일이었으므로. 슬프거나 즐겁거나 미워하거나 원초적인 욕망을 품는 것조차 제한되었다. 전부 어린아이같은 투정에 불과했으므로. 딸린 입이 많아 진옌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렇게 스러져갔다. 그가 자각하지 못한 때부터 구룡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하얀 살모사가 산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위에서 쪼이느라 앞뒤 가릴 것이 없어진 마약밀매 집단의 귀에도 그 소식이 들어왔다.

-어느 날 돌아와 보니 사련의 상태가 한층 좋아져 있었다. 아이들이 비위를 맞춰준 것이거나, 옆 블락의 할머니께서 음식을 나눠주신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다. 사련은 아무말 없이 헤실거리며 웃었다. 아이들 중 가장 어린 막내는 그날 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가 비상했던 아이는 다행히도 뒤쫓아오는 어른의 속도를 훨씬 능가했다. 아침에는 싸늘한 거적대기만이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저곳을 진전하며 돌아다닐 수록 사련의 상태는 나빠져갔다. 10일 내내 옆 블락의 할머니 댁에 신세 지내는 동안 밖으로 나가 먹을 것을 구해오겠다던 아이들 중 그 누구도 돌아오는 이가 없었다. 하루하루 다른 형태의 시신이 구룡성채에 전시되었다. 한 명이 절대 꼬리가 잡히지 않으면 뭐하나. 다른 이들은 목이 잡히고 코가 썰렸는데.

-이튿날 아침 밖에는 사람의 족적과 어린 아이의 발가락이 놓여있었다. 마치 짐승의 아가리로 인도하듯 그것은 띄엄띄엄 어딘가를 항해 나열되어 있었다. 진옌은 눈을 통해 인지하기 전에 직감을 먼저 받았다. 이건 그 아이의 것이구나. 사련이 거래를 하였구나. 저항없이 따라간 곳에는 아이의 사체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참혹히 망가져 매달려 있었다. 몇 층이라고 불러야 할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뺴곡하게 켜켜히 쌓인 구룡의 가장 꼭대기 옥상. 한낮에 빨래를 너는 아녀자들을 등지고 아이들이 난간 위를 올라가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즐기는 장소. 그곳에선 비명어린 쇠냄새가 났다. 시신은 수습할게 못 됐다. 무엇이 사체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심히 오염되어 있던 까닭에.

-익숙한 방바닥에 들어선 진옌을 반기는 것은 사람이 아닌것들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자 다른 형태의 사람이 아닌 것들이 보였다. 그들은 그 발버둥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의 발돋움을 보는 것 양 신이 나게 키득거리고 있었다. 울화가 치밀 세도 없이 그를 끌어안자 뒤이어 그의 머리 맡으로 검은 구멍이 그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처럼 다가왔다. 왜 사느냐고 하는 물음이 들려온 것 같다. 글쎄, 여기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나? 하지만 사련이 없으면 안되는 것만은 알았다. 알았다고 끄덕인 금수는 검은 구멍에서 시뻘건 태양을 꺼내 제 친우의 머리에 쑤셔박았다. 이윽고 형체도 없이 녹아내려 진옌을 집어 삼켰다. 뚝뚝 하고 떨어지는 소리는 물방울인가, 문을 두드리는 무언의 소리인가, 그도 아니라면 비련한 누군가의 마지막을 흐느끼는 경종소리인가.

-그들의 자취는 불타 없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진옌의 인생에서 과거의 있었던 일을 도려내는 것에 실패해서. 그래서 아예 불태워 흔적조차 추억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남은 것 하나 없이 전부 사라졌다. 세상의 모든 빛을 꽉꽉 끼어담고 있던 금색 눈동자에 어느새 공허가 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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