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는 전장으로 날아간다.

「 28개의 이야기 」

─────, by 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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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った1つの想い

파도가 치는 고동에 맹세해요

모두 불타오를 때까지 계속 달려요

 


─달칵.

카세트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는다.

‘아, 아---’ 따위의 어색한 소리가 들린다.

그녀다.

과거의 그녀가 오늘의 당신을 만난다.

이윽고 말을 시작한다.

「 전략.

테이프를 듣고 계실 시각에선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전의 날이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그 앞에 서있는 것은 종말, 비탄, 회의, 절망, 허망, 분노, 불안, 상실일 것입니다. 

저마다 다른 뜻을 품고 우리는 이곳, 백도소대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비극이 가득한 세상에서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이정표가 없는 20세기의 마지막 날 앞에서, 저주 같은 과거가 당신의 목을 조를 것이고, 망실에 대한 공포가 매 순간 당신을 좀먹고, 걸어가는 한 걸음마다 가시넝쿨이 발을 잡을 것입니다. 드릴 말씀은 단 하나입니다. 」

그녀가 숨을 고른다.

「 나아가십시오. 」 


테이프의 뒷면에는 28개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 주작 분대 」

귀수님, 

선원을 모두 잃은 오디세우스는 세상 서쪽 끝, 오기기아의 칼립소를 만납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였으나 그는 고향만을 바라보았기에 그녀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7년의 시간이 흐르고 제우스의 명에 칼립소는 결국 그를 놓아줍니다만... 이번엔 그가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개나리가 피는 계절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칼립사님.

류수,

걸음걸이를 보니 여전히 왼쪽으로 몸을 많이 쓰시고 계십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류수의 연령을 고려하면 관절염이 우려되니 꼭 교정하시길 바랍니다. (작게 웃음이 섞여있었다.) 교정이 어렵다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대신 류수는 게임 하나 알려주십시오. 술 한 잔도 좋겠습니다.

성수,

이전에 이야기를 들려주시다가 제가 잠들었지요. 성수, 저는 아직 그 이야기의 결말을 모릅니다. 최소한 저에겐 아직 결말이 결정되지 않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꼭 행복한 결말으로 만들어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제게 들려주십시오. 지켜주시겠습니까? 이건 규칙이 아닌 약속입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장수,

크리스마스가 지나 1월에도 눈꽃이 피어있을 예정입니다. 아니, 봄과 여름, 가을까지도 말입니다. 참, 사진은 잘 나왔습니까? 지갑에 넣을 수 있는 작은 크기로 한 장 갖고 싶습니다만... (목소리가 머뭇거렸다.) 제가 이상하게 웃진 않았습니까? (잠시 말이 없었다.) ... 마지막으로 약속. 꼭 장수하십시오.

정수,

언젠가 고향에 가기로 했지요. 좋은 찻집이 있다면 진달래 화전에 보리차를... (말이 길어졌다.) 손수건, 감사합니다. 같은 검정이어도 따듯한 색이라 마음에 듭니다. 전장에서도 가지고 다니기에 좋아 늘 품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창고를 갈 때가 되었을 텐데, 이번엔 네잎클로버로 어떠신지요.

진수,

쿠앤크, 여대생들 사이에서 그리 줄여 부른다고 합니다. 다음엔 한번 대학로를 함께 갑시다. 제복 말고 사복으로, 비번인 날에 말입니다. 같이 연극을 보는 것도 재밌겠습니다. 백조와 접동새가 함께하는 내용이라던가, 고른다면 희극이 좋겠지요. ... 그런데 딸기 사탕은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자꾸 생각이 납니다.

「 청룡 분대 」

저수님,

그 후로 스트레칭은 잘 하고 계신지요. 꾸준히 하지 않으면 또 뭉치게 됩니다. 물론 제가 또 풀어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손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에 대련 한번 하시죠. 누가 더 날렵한 탄환일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도발 치고는 시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각수,

눈사람을 다음날 확인해보니 없어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 치우기 전에 당신이 옮겼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여쭤봅니다. 녹아 사라졌다고 한들, 1월에 함박눈이 한 번 더 내린다고 하니 그때는 2개를 만듭시다. 나란히 외롭지 않도록 말입니다. ... 그리고 술 약속, 아직 안 잊었습니다.

기수,

그날 잘난 듯이 말했으나, 역시 나아가는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다만 서로 잘못된 선택을 할 때만 잡아준다면 사는 데에는 충분하겠지요. 참, 명동의 디저트 가게에서 진짜 멜론을 쓰는 빙수를 판다고 합니다. (잠깐 멜론 빙수 이야기가 이어졌다.) ... 그러니 같이 가겠습니까?

미수,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새천년을 맞이해 새로운 체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합니다. 올림픽공원에서 8시에 첫 보급이 된다고 하니 동행해주시겠습니까. 체조를 마치고 패스트푸드점에 들리면 일정이 알맞겠습니다. 아침에만 파는 해시브라운, 이라는 감자튀김이 제법 맛있습니다.

방수,

빙수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골목 가게만의 정취가 있었고, 이 경우 불량식품 같은 쨍한 달콤함이 좋기에... (열렬한 빙수 이야기가 이어졌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우유를 간 빙수도 먹으러 갑시다. 맛이 궁금하여 머릿속에서 떨어지질 않습니다. ... 그리고 아기새라뇨, 성체입니다. 

심수,

늘 전략 회의에서 감사합니다. 심수를 보고 있자면, 꼭 학교의 반장 같아 의지하게 됩니다. ... 학교회장이 더 좋으시겠습니까? ... 그러면 총장님께서 교장... 분대장님들께서 담임 선생님... (한참 엉뚱한 소리를 하더니 장난 어린 목소리가 들린다.) 참고로 주작의 반장 자리는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항수,

항수는 좋은 사람입니다. 언니가 있다면 항수같은 느낌일까 상상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의 꼭지가 별미라곤 하지만, 역시 제가 한번 사겠습니다. 찾아보니 아포가토,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항수가 좋아하는 것과 제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니 이보다 좋을 것은 없겠지요. ...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 마지막으로 말을 남깁니다. 붕대는 12시간마다 갈아주십시오. 아프지 마시고요.

「 백호 분대 」

묘수님, 

금붕어의 이름은 결국 비얀코로 하기로 했습니다. 공모전을 한들, 이보다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도르륵, 태엽을 감는 소리가 들리더니 멜로디가 잔잔하게 퍼졌다.) 어항 옆에 오르골을 두니 금붕어와 백조가 함께 헤엄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는 애만 탈 뿐 부족합니다. 묘수님, 수영복 하나 마련해두시길 바랍니다. (웃음소리가 오르골 소리에 섞였다.)

규수,

(약 3분 정도의 볶음라면 레시피 설명이 길게 이어졌다.) ... 요점은 고기의 색을 내는 것. 그리고 늘러 붙은 감칠맛을 이용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렵다면 부르십시오. 이번엔 28인분을 준비해두겠습니다. ... 규수만 2인분 더 드릴테니 조용히 찾아오십시오.

루수,

이제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루수의 말들과 카페모카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그날 추천해주신 다른 커피 메뉴도 전부 마셔보고 싶습니다. 시간 한번 내주시겠습니까? 피크닉도 가야하니 말입니다. 커피는 루수가 추천하는 커피로 준비해주십시오. 샌드위치는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베이글에 크림치즈, 베이컨과... (말이 길어졌다.)

삼수,

육포는 입에 맞으셨는지요. 그날 양념 육포를 드리지 못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주작 분대실, 제 사물함의 마지막 서랍을 여시면 그 곳에 육포를 추가로 구비해두었습니다. 나름 명동에서 어렵게 구한 육포이니, 맛은 보장드릴 수 있습니다. 원하시는 만큼 챙겨가셔도 좋습니다.

위수,

어쩐지 위수가 생각나 더위사냥을 들고 간 날엔 위수가 쌍쌍바를 든 채로 만났지요. ... 생각해보니 위수와 함께 제대로 식사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늘 ‘고독한’ 식사를 하는 편입니다만, 다음에 함께 뷔페에 갑시다. 단, 소파는 드시면 안 됩니다.

자수,

그... 말입니다. (갑자기 목소리가 급격히 작아졌다.) 그러니까... 저희는 분대도 다르고, 애초에 이번 작전으로 처음 대화를 했으니 기회가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만... (점점 목소리가 작아진다.) ...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 꼬리... ...

필수,

누나분께는 연락을 드렸습니까? 때로는 말이 어색하고 글이 정리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직접 만나서 안아주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히 필수의 마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남자답게, 끙끙 마음앓이 하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참, 저는 배구는 잘 모르나, 피구라면 자신 있습니다. 지지 않습니다.

「 현무 분대 」

두수님,

발레 공연 티켓을 준비해두었습니다. <빨간구두>입니다. 빨간구두를 사랑, 아니 집착한 카렌은 평생 춤을 추는 저주를 받게 되지요. 모든 것을 잃고 춤을 추던 카렌은 사형집행인을 만나 애원을 하고, 그는 결국 도끼로 다리를 내리찍습니다. 그 후로 카렌은 발 없이 참회의 길을 걷습니다. 그녀는 용서받았을까요? 누가 카렌이고 누가 사형집행인일까요. 궁금하시다면 보러 가시지요.

벽수,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날 많이 놀랐습니다. 벽수가 더 놀랐겠지만 말입니다. 부디 쓰러지는 일 없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모두 많이 걱정했습니다. (뭔가 생각하는 듯이 잠시 말이 없어졌다.) ... 그리고 혹시 말씀하신 데이트란, 남녀 간의 그것을 의미하신 겁니까? 

실수,

동해 바다가 좋겠습니다. 기상예보를 보니 1월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희는 그날 물이 될 것이니까요. 깊은 푸른 색에 함께 몸을 담급시다. 당신이 제 아가미와 지느러미가 되어주십시오. 깊은 바다 속으로. 무대가 시작하기 전 늦지 않게 찾아갑시다. 넘실거리는 플랑크톤의 별빛 아래, 바다의 천사는 심해와 함께 연무를 시작할 것입니다. ... 그때 천사가 착용할만한 귀걸이를 하나 골라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여수,

서점을 가니 이미 제가 읽었거나 여수가 들려준 괴담집밖에 없었습니다. 새삼스럽게 괴담이 얼마나 저를 찾아오고, 제가 괴담을 찾아갔는지... 낭만이 죽어가는 시대에서 여수의 존속을 한때 걱정한 적이 있었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이상하고 괴상하고 무서운 것을 찾습니다. 떠드는 것도 좋아합니다. 혹시 하이텔, 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걱정은 필요 없겠습니다. (잠시 말이 없어졌다.) ... 혀는 정말 괜찮습니까.

우수,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에 성공했습니다. 휘핑크림을 쓰니 과육과 잘 뭉쳐져 제법 고급스러운 맛이 납니다. 장사는 가게보다 트럭이 좋겠습니다. 그래야 ‘떼돈 벌고 해외로 튀죠.’ (어색하게 당신의 말투를 따라했다. 그 뒤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다만 그 전에... (녹음기 가까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 2시, 뒷산에서 별을 먼저 봅시다.

위수,

샤브샤브 고기는 등심, 차돌박이, 채끝, 우둔살, 우선 이렇게 4가지를 준비해두었습니다. 더 원하신다면 구매해오겠습니다. 구매는 엊그제 했습니다만 조위를 찾지 못하여, 우선 냉장고에 넣어두었... (잠시 말이 없어졌다.) ... 어쩌면 제가 조위를 못 보고 지나쳤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허수,

초코파이가 좋습니까, 몽쉘이 좋습니까, 아니면 오예스가 좋습니까? 초코파이는 쫀득한 마시멜로가 좋지요. 몽쉘은 부드러운 생크림이, 오예스는 단단한 식감이... (맛에 대한 비교와 평가를 한참동안 했다.) ... 뭐가 더 좋은 지 역시 못 고르겠습니다. 그러니 전부 사오겠습니다.


테이프가 끝나간다.

1999년도 끝나간다.

단, 우리의 끝은 없을 것이다.

28개의 별은 ‘인연’ 이라는 별자리를 만들었다.

이제 와서 싫다고 내빼도 우린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를 기억하고 추억하고 사랑할 것이다.

「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

마지막 28번째 별이 마무리를 장식한다.

테이프의 끝이 감기며 끼릭, 소리가 섞였다.

「 모두 좋아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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