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이 맞았어
네버랜드에 살 수 있다면 좋을텐데
이수진은 최근 본인이 겁이 많아졌다 생각했다. 지켜야할 것이 많아진 순간부터 그녀는 예전처럼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몸을 던지는 것도, 싸우는 것도, 자신을 희생해가며 전투를 빠르게 끝내는 것도 모두 지킬 것이 없었을 때보다 어려웠다.
그녀의 작은 애인-이라고 하지만 제법 거대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1년이란 유예기간 동안 어떻게 그를 현세에 붙들어놓을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몇 번을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기에 몇 천번을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째깍, 째깍, 째깍. 악어의 뱃속에 있는 회중시계 속 초침이 호를 그렸다. 달칵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초침 소리가 멈췄다.
"아, 허수 왔니."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허리에 제 팔을 둘렀다. 그리곤 가볍게 끌어안아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수진이 어리광을 부릴 때 자주 하는 짓이었다. 허수, 그러니까 이 한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그렇게 하고 있을땐 아무 말 없이 제 어깨를 내어주곤 했다.
"애기야, 오늘 있지~.. 그냥 놀러 갈까?"
"... ...왜?"
"일 다 끝났잖아. 호출 더 오면 현무 분대원한테 대신해달라고 부탁하자."
이한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수진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종적인 편이었다.
그렇게 나와서 기껏 본 게 영화였다. 피터팬을 원작으로 했다는 영화는 후크선장의 시점에서 네버랜드를 떠난 피터팬을 그리고 있었다. 수진은 팝콘을 씹으며 화면을 무료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영화를 보는 것보다 영화를 보는 옆 사람의 얼굴을 보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이한은 영화를 멀뚱거리며 보고 있었다. 재밌는지, 재미없는진 몰라도 꽤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허수는 피터팬일까?'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콩깍지에 의하면 그녀의 연인은 어리고 귀여우며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으면서 그녀를 늘 꿈의 나라로 데려가 주었다. 한번도 발 딛어본 적 없는 네버랜드는 그를 통해 온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 내가 웬디인가...'
여자니까. 그런 1차원적인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해보다 수진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 후크선장은 어째선지 피터팬을 환영하고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미 놓친 내용을 되감을 순 없었기에 수진은 눈을 감았다. 피곤하기도 피곤하고 긴 영상물은 이래서 취향이 아니었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 어떻게든 이한과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않으면?
한번 든 의문이 모든 생각의 댐을 부쉈다.
그리고 수진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웬디가 아닌 후크선장이었다. 더이상 아이가 아닌 피터팬을 꾸역꾸역 어린 아이처럼 보려고 하는 나쁜 악당이었다. 그런 주제에 피터팬이 없으면 제 네버랜드도 없단 걸 알기에 이미 어른이 된 그에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애꾸눈에 한 쪽 손은 쇠갈고리, 불쾌한 웃음을 짓는 어른.
'그래도 놓고 싶지 않아.'
이기적이라 불려도 좋았다. 그녀는 자신의 작은 피터팬이 사라지지 않길 바랬다. 그를 보고 희망을 얻었다. 수진이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자 이한은 이미 고개를 돌리고 화면을 보지 않냐는 눈길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
평일 3시, 애매한 시간이라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느닷없이 울음을 터트린 여자가 한 명. 그녀의 애인은 그녀를 어떻게 달래야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하다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눈물에 젖어 짠 맛이 났다.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