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1998년 12월 9일, 翼星에게.
이 편지, 안 가져가셨어요.
평안하니, 익수야.
기억과 능력을 교환하자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네 생각이 났다.
어떻게 서두를 떼야할지 몰라 멋대로 너의 마음을 어림짐작해보며 편지를 쓴다.
가해자된 입장으로 감히 너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겠으나 이 이후의 너가 썩 편안하길 바란다.
이제 와서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너의 무용단에 관한 일이다.
국립 발레단의 무대 붕괴는 종말의 악마가 한 짓이 아니라 단순히 신재강회가 저지른 테러였다.
그리고 나는 신재강회의 일원으로 그 테러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가끔 발레 공연을 보러 다니는 입장에서 무용수인 너의 존재또한 모르지 아니했다.
그럼에도 별 생각 없었다, 나는.
백도 소대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고 네가 종말의 악마를 끝장내고 싶어할 때도 나는 굳이 네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비겁하게도 너의 온기에 모든 게 괜찮을거라 믿고 싶었다.
너는 모든 게 괜찮을거라 말했다.
내 페이지를 찢어 흔적을 지워달라는 못된 말에 너는 ‘모든 게 괜찮을거다’ 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그런 너의 마음에 속죄하고 용서받지 못할지언정 구원 받을 수 있었다.
용서받지 못하더라도 좋았다. 그건 내게 하나의 빛이었다.
어둠이 드리워진 인생에 한줄기 빛을 봤을 때서야 이 이상 미친 여자 행세를 관두자 마음 먹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될 수 있었다.
종말까지 아흐레가 남았다.
아흐레 간 담지 못할, 담지 못했을 나의 무한한 애정을 알아주길 바란다.
두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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