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생자필멸 러닝 후기

백도소대 현무분대 사랑한다!

격조했습니다! 간만에 즐거운 커뮤를 뛰었습니다. 거의 1년 반만이네요. 체인소맨을 보고 너무 재밌던 나머지 기반 자캐를 짜고 퍙님에게 열어달라고 땡깡 피워서 연 커뮤 치고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거기다 그때 짠 자캐는 실제로 내지도 않았군요.) 

일단 이수진이란 캐릭터는 이 커뮤에 올 생각은 조금도 없던 캐릭터입니다… 이단심문관 여캐, 한 쪽 눈 없는 미친여자가 보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짰습니다. 문제는 체인소맨 기반 자캐라고 짠 캐릭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남은 창고캐가 이 녹발 여캐 뿐이라 이 친구를 끌고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름을 안 정해서 현무분대 대장, 현무라고 불렀습니다)

성격이나 특기는 그냥 되는대로 적었습니다. 그때부터 생각했던 설정의 굵은 줄기는 '이중성' 이었습니다. 이때 이름도 그냥 대충 지었군요. (별도 그냥 현무 대장이니까 머리 두 써서 두수 했습니다. 별 생각 없었습니다. 지금도 수진이란 이름이 더 익숙해요.)

이중성이란 키워드를 잡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냥 제가 계속 생각해온 주제가 '폭력이나 잔인한 매체를 습득한 사람은 왜 아닌 사람보다 그런 종류의 콘텐츠에 중독되게 될까?' 였거든요. 어쩌면 취향과 선호는 자극에서 오고, 자극은 그런 종류의 호불호를 구별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논문을 읽었습니다. (이 자극이 부정적인 자극이라도 나중에 긍정적인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수진이란 캐릭터는 지극히 이중적입니다. 섹스를 그닥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섹스에 열중해서 얻는 쾌락에 목을 매고, 두려운 게 없다고 말하면서도 항상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쫓기죠.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라고 하지만 실제론 고민이나 생각, 죄책감이 계속 나오고 정리하지 못한 채 엉켜버려 결국 내게 된 결론에 가깝습니다.

사실 수진의 아버지는 IMF로 도산해 자살했다는 설정이었는데 다른 스탭들이 실제 사건은 조금 재고해보란 말을 해서 맞는 말이라 생각하고 고쳤습니다. 수진의 인생은 계속 꼬이는데 저는 이 흐름이 최대한 자연스럽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자신이 장녀란 이유로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을 좋아하는 명문대생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 남자를 결국 좋아하지 못한 것에서 이 흐름이 가장 잘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녀가 신데렐라처럼 사랑에 빠지면 좋을텐데 도저히 그러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결혼이 아닌 재수를 선택할 정도의 간절함이 있었지만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공장을 다니며 밤을 새더라도 할 수 있었겠죠. 수진은 강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미 결혼은 해버렸고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 괴로웠기에 마주하지 않습니다. 수진은 도망치는 걸 택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수진의 남편이 신재강회의 간부 '윤경아'에게 죽고 복수하러 가는 장면… 이 장면에서 수진의 감정 묘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일절 넣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수진은 복수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남편을 그닥 사랑하지 않았고 (이름이 아닌 '남편'으로만 존재하는 이유기도 하죠) 그 정도의 정의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수진은 복수를 하러 칼을 쥐고 발을 옮깁니다. 저는 이 계기가 복수감이 아닌 '현상황의 고착에 대한 두려움' 이라 생각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보험금과 유산으로 더 잘 살아갈 수 있겠지만 그런 지독한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세번째, '윤경아'를 죽이는 장면.

이 장면에서도 수진의 감정 묘사를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경아를 죽였다. < 이 정도로만 넣을 수 있도록 구조를 짰어요. 경아를 왜 죽여? 그 정도로 남편을 사랑했어?? 싶은 생각이 들도록 의도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그닥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아를 사랑했죠. 그럼에도 경아를 죽인 이유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현 상황의 고착에 대한 두려움' 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이 잘못 돌아가는 걸 눈치챘는데 그걸 되돌릴 수 없다면, 되돌릴 계기를 찾을 수 없다면. 

저는 그 탈출구로 수진이 살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처구니 없었다면… 죄송합니다. 제 설득력이 그 정도인거겠죠.

위 세가지 사건으로 수진의 '현 상황의 고착화에 대한 공포'가 제대로 생성되어 도망치는 삶에 적응되었으면 했습니다. 국안특전에 들어온 이유조차 총장이 감옥에서 빼내 주겠다고 설정했으니까요.

캐치프라이즈인 '미친 여자' 또한 그렇습니다. 수진의 한마디인 '생각이 없고, 제정신이다.' 라는 말은 미친 여자와 어울리게 짰습니다. 생각이 없는데 제정신일 순 없으니까요.

제정신으로 세상을 견디기 힘든 캐릭터가 나왔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커뮤에 가니까 애가 제법 잘 지내더군요. 문제는 제가 짠 텍관입니다. 대부분 귀엽고 재밌는 텍관을 짰는데 '익수'라는 캐릭터의 발레 무대사고 사건을 보고 직감했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고 있기도 하고) 저걸 종말의 악마가 아니라 신재강회가 한 사건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익수의 무대사고를 수진이 신재강회에 있을 당시 저질렀다고 설정했습니다.

수진은 한 번도 사람을 제대로 마주한 적 없습니다. 신재강회에 있을 당시에만 해도 사람을 사람이 아닌 거죽과 살덩이 정도로 봤고, 심영인은 그런 그녀를 알기에 마인이 많은 현무 분대의 분대장으로 넣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익수는 전부 괜찮을거라 말하며 수진을 안아줍니다… (심지어 함께 준 노래가 투더문의 오슷인 에브리띵 오라이…) 조금씩 쌓이던 죄책감이 이때 폭발합니다. 수진은 자신이 지은 죄로부터 도망치길 선택합니다. 속죄할 수 없다면 다시 태어나길 원합니다.

그렇게 기억을 지웠습니다…. (이때 진짜 괴로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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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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