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정말 멋진 사랑을

이해는 하겠어. 그런데...

기억이 돌아오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일것이다. 

나는 네가 잠시간 미웠다. 오랫동안 미워하지 못한 것에 대해 네가 슬프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뻐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아니꼽겠지만.

그에 대한 이유는 굳이 덧붙이지 않겠다. 그건 고문의 미학을 다루는 신사숙녀답지 않은 행동이니까.


최근 나는 조각상을 들여왔다. 허수는 그 조각상을 가끔 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그가 추상적이고, 어찌보면 아름답지 않다고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투박한 조각상을 오랫토록 보고 있는 것이 의외였다. 그저 그의 유명세를 보고 사기라도 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하지만 허수는 아주 오랫동안 그 조각상을 바라보고, 가끔 새벽에도 잠깐 복도에 나가 그것을 보곤 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따금 알 수 없는 것에 푹 빠져버리곤 하지만 (나라든지.) 내 이해의 영역 밖에 있는 것에 빠진 건 처음인 것 같아 나는 그의 옆에서 자주 그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이 기묘한 조각상은 완벽한 형태를 띄지 않았기에 공허한 부분이 있단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공허한 내면은 각도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안 보이는 날이 있으면 힐끗 보기만 해도 그 안이 오싹할 정도로 낱낱이 보이는 날도 있었다.

변덕스럽지만 그 사이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틈새는 결국 조각상의 존재로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어쩌면 외로움 또한 그럴지 모른다. 

그렇지 않은가? 슬픔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공간은 허무기도 했고, 공허기도 했으며, 무(無)기도 했지만 존재기도 했다.

명백히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 아무리 관찰해도 의미라곤 찾을 수 없지만 그렇기에 값진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아아. 정말 멋진 사랑을 했구나. 하고 생각하고 말았다.

네가 허수라는 마인을 빼앗은 게 괘씸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네 큰 손이 이마를 감쌀 때 손 사이사이 생기던 틈새와 같은 것을 여전히 사랑해 마지않는다.

그리고 그 부재에 아무 의미도 없다 생각하지 않음을 알아줬으면 한다.

영원히 아름다울 웅덩이의 악마에게,

너의 영원한 연인이었던 사람이.

사랑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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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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