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D-1.

축하 준비 대소동! 이라 쓰고 연하연의 요리 교실이라 읽는다.

헷헤 by 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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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하연에게 생일이란, 그리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날.

형과 함께하고, 마을의 아이들은 소란스러우며, 어머니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선물하고 입는 날.

그리 좋아하지 않는 단것을 선물로 받아먹고, 온갖 화려한 것들이 터져나가는 날.

그 건조한 감상은 연하연이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되어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니까, 1850년의 연하연은 말이다.


달력을 보던 연하연은, 문득 무언가를 잊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아마, 초하 씨와 관련된 일. 무언가 약속한 것이 있던가, 고민하다 지나가듯 나눈 이야기를 떠올렸다.

“초하 씨의 생신은 언젠가요?”

“나? 4월 21일이던가.”

…오늘은 4월 20일이었다. 어머니 맙소사!

연하연은 일단, 카페의 문을 닫고 생각하기로 결심했다.


“어라, 어디 가세요?”

열심히 일하던 직원이 카페 문을 닫으려는 연하연을 말려 오늘 하루 가게를 직원들에게 맡기기로 한 연하연이 카페 문을 닫고 나오자, 아래층에서 느긋하게 올라오던 분홍 머리의 청년, 강화도가 말을 걸었다. 시선을 돌려 카페 안에 있는 시계를 보자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저 작은 재앙이 늘 홍차를 마시러 올라오는 시간이었다. 할 일도 없나 보지. 꽃집이 한가하긴 한 모양이야.

“네, 뭐.”

“아쉽네~ 오늘은 케이크 먹고 싶었는데.”

“…케이크요?”

아, 그러고 보니 생일에는 케이크가 필요하던가. 어렸을 적 입안을 가득 채우던 달콤한 맛을 떠올리며 연하연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녁을 차리고, 케이크를 만들 시간이 충분할까? 아니, 조금 힘들지도. 그렇다고 해서 케이크를 살 마음은 없었다. 그런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음식 같은 거, 내 집안에 들일 리도 없었고 초하 씨에게 먹이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럼, 조금 빠르게 움직여야겠는데. 무슨 케이크를 줘야 좋아할까. 저번 빙수는 실패였으니까 차가운 건 제외하고,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거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역시 정석적인 케이크가 제일 무난하고 괜찮으려나. 시트를 굽고 크림을 발라 가벼운 장식을 하는 정도라면 3시간이면 충분했다.

…늦게 돌아오셨으면 좋겠네.

“…안 듣고 있는 거 같으니까 갑니다?”

강화도는 생각에 빠진 연하연을 떨떠름한 눈으로 바라보다 몸을 돌려 1층으로 내려갔다. 어쩐지 무시당한 느낌. 어? 좀 화나네? …어머니 저새끼가 먼저…!


퉤, 입 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연하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6시 30분.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해 버렸네.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가볍게 빗어 정리하고, 비타의 생명 어쩌고 하는 힘으로 치료를 받았다. 지금부터 만들어도 9시. 조금 곤란할지도.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바닥에 쓰러진 분홍 물체를 짓밟았다.

“아, 항복. 항복! 비타님이 오셨는데 더 싸울 생각 없다고요!”

“당신 때문에 시간이 낭비됐잖아요. 템포가 알면 분명 눈물을 흘릴걸요.”

“훗…. 하지만 이 또한 어머니의 뜩, 아,ㄱ, 잠, 잠시만.”

“너희 계속 싸우면 나 그냥 가요? 더는 귀찮으니까 치료 안 해줄 겁니다.”

“저도 이제 놀아드릴 시간 없어요. 할 일이 조금 많아서요.”

“스읍, 내 취급 좀…. 너무하지 않나?”

강화도는 무시당했다. 아, 어머니. 제발요.


초하 씨, 생신 축하드려요.

이 편지를 보고 계신다면 제가 너무 늦지 않았다는 이야기겠죠.

예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편지를 쓰는 데에도 말에도 그리 재주가 없어요.

특히나 다른 것들도 아닌 생일을 축하하는 데에는 더더욱이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초하 씨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걸 해야 기뻐하실지 같은 것들을요.

그런데, 문득 제가 초하 씨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아는 초하 씨는, 단 것을 좋아하고 밝은 듯 생각이 많은 사람이에요.

모든 것을 쓰기엔 종이가 작으니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그래요.


7시. 시간이 촉박했다.

연하연은 일단 계란을 깨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케이크 시트, 어떻게 만들어야 좋을까. 익숙하게 노른자와 흰자를 분리하면서 빠르게 생각을 돌렸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겉면에 초콜릿을 코팅한 케이크. 템퍼링을 할 시간이 부족하니 패스. 달콤한 것으로 치자면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좋긴 하나, 너무 차가운 것은 초하 씨가 좋아하지 않아 패스. 애초에 만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역시 정석적인 케이크가 역시 가장 무난할까. 아까부터 같은 생각만 나는 것이, 아무래도 그것이 해답이라 말하는 것만 같아서 연하연은 고민을 끝냈다. 흰자와 분리된 노른자를 풀고, 설탕과 소금 조금을 넣어 섞는다. 이후 식용유와 물을 설탕이 녹을 때까지 섞고, 박력분과 베이킹파우더를 체에 쳐 섞는다.

과도한 설탕은 설익고 색이 어두운 시트로 이어질 테니 단맛을 첨가하는 것은 크림을 만들 때로. …초하 씨가 과일을 좋아하시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단, 크림은 초콜릿을 넣어 만드는 것이 무난할까. 노른자와 분리당해 남은 흰자에 설탕을 나눠 넣으며 머랭을 쳤다. 다음에 생각이 나면 전동 블렌더를 사겠다는 5년째 하는 생각을 이어가며, 조금 단단해진 머랭을 노른자 반죽에 조금씩 섞으면….

…잠시만. 아까부터 묘하게 무언가를 잊어버렸다는 이 감각과, 어딘가 서늘한 주방의 온기.

내가 오븐을 예열했던가?

급하게 오븐을 보았다. 오븐은,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 어머니 맙소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일단, 오븐을 켜 예열하면서 빠르게 생각을 돌렸다.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난제야. 지금 시간이 남는 내가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세요. 시폰 케이크를 만들면서 머랭을 다 친 상황에서 오븐을 예열하지 않았다면 제가 뭘 해야 하죠?

뭘 하긴 뭘 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셔야죠. 거품 다 죽은 거 안 보이세요?

보이니까 하는 말이잖아요. 연하연은 마른세수 하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 케이크 틀도 준비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일지도. 선반에서 틀을 꺼내 물로 행군 뒤 뒤집어둔다. 은근슬쩍 거품이 죽은 반죽들을 방금 대답한 연하연에게 보내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쌍욕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조금 먼 곳에 있던 연하연인가 싶었다. 아니, 연하연이 아닌가? …당장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8시가 되어간다. 서둘러야겠는걸.

다시 노른자 반죽과 머랭을 만들고, 노른자 반죽에 나눠가며 머랭을 넣어 섞는다. 머랭이 잘 섞이지 않아 뭉친다면 구운 다음 구멍이 생기니 뭉치지 않게. 그렇다고 해서 거품이 죽어서도 안 된다. 준비해 둔 팬에 물을 한 번 더 뿌리고, 틀의 절반 이상이 차도록 팬닝한다. 젓가락으로 평탄 작업을 하고 가볍게 내려쳐 기포를 제거하고 예열해둔 오븐에 집어넣으면 끝.

이제 크림을 준비할 차례다.

크림을 만드는 과정은 특별한 것이 없다. 생크림에, 설탕을 넣고, 휘핑한다. 하는 김에 초콜릿을 녹여 섞어주면 초콜릿 크림이 만들어진다. 오늘만 세 번째 다짐하는 전동 블렌더를 사겠다는 생각이 이어지고, 오븐에 들어간지 30분이 다 되어가는 케이크 시트를 꺼내 뒤집어둔다. 행주 하나를 가져와 찬물에 적셔 팬을 덮은 뒤 식을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그래. 기다림. 시간이 부족한 지금 이게 식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꺼내면 틀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크림이 녹을 것이다. 빠르게 머리를 굴린 연하연은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일단, 그릇에 물을 한가득 담고 탁자 위에 올린다. 그리고 그것에 가볍게 전류를 흘리면 완성!

“아니, 아니. 완성이 아니잖아 형제.”

“바쁘니까 좀 도와주세요.”

“돕기야 하겠는데…. 나 부르겠다고 물에 전류 뿌리기 같은 거 이제 멈추라니까? 아프다고!”

“아파하라고 한 거니까 잘됐네요. 식히세요.”

“하….”

나디아는 좋은 냉각장치였다.


잡설이 조금 길어졌네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해요.

아마 저희는 앞으로 더 긴 시간을 함께하게 되겠죠.

어쩌면 만나지 못한 시간보다 만난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겠고요.

함께 한다는 것은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지만 한없이 익숙해진 것이어서,

이제는 초하 씨가 사라진다면 어쩐지 외로울 것만 같아요.

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도 함께했으면 좋겠네요.

진심으로, 정말 좋아해요.


충분히 식은 시트를 틀에서 분리하고, 상단부를 잘라낸다. 시트가 부풀며 만들어진 부분은 외관상 그리 좋지 못했다. 세 개의 층으로 시트를 나누고, 나누어진 시트 사이사이에 초콜릿을 섞지 않은 크림을 얇게 펴 바른다. 속에 들어가는 크림은 과도하면 느끼한 느낌을 줄 수 있으니 양 조절이 필수적이었다.

아, 딸기 잼을 넣어볼까. 잠시 고민하다 중앙에 위치할 시트 위에 딸기잼을 가볍게 펴 발랐다. 시트, 크림, 시트, 딸기잼, 크림, 시트.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층층이 쌓아진 시트의 겉에 가볍게 초콜릿 크림을 덮어 정리하고, 시계를 확인했다. 9시가 되어가는 시간, 초하 씨는 아직인가? 그렇다면 더 할 시간이 있을지도.

아니, 생각해 보니 초하 씨의 생신은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었다. 왜 급하게 하고 있었던 걸까, 가벼운 고민을 하며 초콜릿을 녹일 준비를 했다. 초콜릿 크림 위에 초콜릿을 덮을 생각이었다.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먹게 될 케이크지만, 12시간 이후에 먹을 것이라 예상되니 조금 신경을 쓸 필요가 있었다. 블룸 현상은 그리 보기 좋지 않고 제 마음에 들지도 않을 테니까.

다행이라 해야 할지, 제 바로 옆에는 적정 온도의 물을 바로 뿜어낼 수 있는 정령이 있었다.

“나디아.”

“…나 또 뭐 해?”

“오늘따라 참 쓸모가 많네요. 역시 형제예요.”

“아, 음. 좋아. 도와줄게 형제! 나만 믿으라고!”

심지어 이용하기 쉬운!

템퍼링이라는 것은 온도를 올리고 낮춰 안정화하는 것이어서, 이런 습도와 온도를 동시에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주위에 있다면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우선, 나디아의 손 위에 있는 볼에 초콜릿 절반을 넣어 녹이기 시작한다. 천천히 저어주며 적절한 온도가 되면 나디아의 온도를 내려준다. 남은 초콜릿 절반을 넣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적당한 온도로 초콜릿의 온도가 내려간다면 나디아의 온도를 살짝 올려 초콜릿의 온도를 올려주면 된다. 사람의 체온보다 살짝 낮은 정도가 좋다.

덩어리가 사라진 초콜릿을 거품기로 저어 기포를 한번 제거한 뒤, 이전의 작업을 반복하면 완성이다.

준비한 케이크를 액체가 아래로 흐를 수 있을 곳에 두고 초콜릿을 그 위에 부어준다. 매끄럽게 흐르는 초콜릿에서 달콤한 향이 올라와 코끝을 찡그렸다가, 케이크의 크림이 뭉개지지 않는지 확인한 뒤 나디아를 사용해 초콜릿을 굳혀주면 케이크는 드디어 완성이다.

이제는 쓸모없어진 불청객을 적당한 말로 구슬려 돌려보내고, 케이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다.

…시간이 조금 남았네. 언제 돌아오시려나.

괜히 문을 한번, 창밖을 한번 보았다가 어질러진 주방을 정리하기로 했다. 사용한 볼들을 모으고, 오븐은 전원을 내린다. 쓰레기를 버리고 설거짓거리를 싱크대로 모은 뒤 테이블을 닦는다. 그리고 시계를 한번 확인. 문을 한번 봤다가, 몸을 돌려 설거지를 시작한다. 초하 씨의 생일이 왔으니 이제 여름이 오겠구나. 올여름은 또 어떻게 보내야 할까, 짧게 고민하는 사이 설거지를 끝냈다.

다시 한번 시계를 확인하고, 문을 봤다가 창밖을 본다. 이어지는 정적이 어딘가 어색해서, 괜히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노래라도 틀어볼까, 카페를 다시 내려갈까, 꽃집이라도 다녀올까, 고민하다 정착한 곳은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소파였다. 소파에 앉았다가, 시계를 확인했다가, 1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쩐지 자세가 불편해 옆으로 돌아누웠다가,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가, 이번에는 3분이 지났다는 사실에 바른 자세로 누웠다가, 한참 멍하니 천장을 보았다.

그리도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왜 이렇게 느리게 흘러가는 기분인지. 눈을 몇 번 깜빡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하룬데, 당신이 이리도 기다려지는 것은 내일이 당신의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이어서 그런 것일까.

어쩐지, 지금까지 제 생일을 축하해주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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