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일지

05.

삭망 by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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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마도 당신. 당신. 당신.

네에 내 밀어는 모두 당신을 위한 것, 당신만을 위한 것. 등나무 덩굴 사이를 쏘삭이고 늘어트려진 가지를 젖히며 당신을 찾는 방황. 잊혀질 리 없는 꿈. 현실에 도래한 망상. 푸른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백발. 길게 늘어져 지층 사이에 낀 석영의 자란 줄기처럼 시간을 서술하는 당신의 머리칼. 나는 그 뒤를 쫓는 것 밖엔 할 수가 없었던 시간들. 잎사귀 사이를 지나 젖은 이끼를 밟고 쓰러진 고목을 타넘으면 보이는 건 당신, 당신의 뒷모습, 당신의 뒷모습. 기울어지는 귀, 눈꼬리, 눈매, 콧대, 옆얼굴, 다물린 입술, 어여쁜 회색 눈빛. 당신이 나를 보는 회색 눈빛. 비록 시선의 온도는 인공 바다 안의 물고기를 어를 때와 다르지 않게 차가우나 본디 차게 태어난 것들이란 이상하게 뜨거운 정온동물의 손길을 타게 되면 지극히 놀라고 데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내게 시야를 넓히라 꾸짖습니다. 그럼 당신 바라는 대로 시야를 늘려보겠습니다. 얕고 깊게 고여 투명하지 못한 인공 바다, 그 안을 헤엄치는 작은 무리, 거기 비치는 검은 우주. 저 멀리엔 바이옴을 격리하고 구성하는 격벽, 거대한 격문. 더 위에는 담쟁이덩굴이 잠식한 [2 바이옴]이란 명패. 한참을 올라가면 끝나는 벽, 바깥을 투영하도록 설정된 외벽. 이 거대한 방주의 외벽. 바깥으로 검은 우주가 비쳐보이는 영원한 밤. 때로 적당한 항성의 골디락스 존을 공전하며 자연광을 받아먹는 인공된 생태계. 옷가지를 모두 벗고 광합성했다는 어느 생물종처럼 외벽을 모두 투명하게 바꾸고 유유히 회전하는 방주. 이십사시간이란 아리송한 기준에 따라 느리게 자전하는 방추형 세계. 당신의 손가락은 10개이고 발가락까지 합쳐도 20개인데, 어째서 모든 수를 센 뒤에 네 개를 더 붙여야 하는 숫자를 생활의 기준으로 삼습니까? 아니, 당신의 일 초는 어떠한 기준으로 만들어진 일 초입니까? 일 분, 한 시간은 일 초의 육십 배요 삼천육백 배라고 말했던 것은 기억납니다. 그런데 근본이 되는 일 초를 모른다면 나는 하루란 개념도 모릅니다. 나의 손가락은 다 합해서 여덟 개요 발가락까지 합치면 열네 개입니다. 나는 감히 나의 하루를 열네 시간으로 쪼개어 봅니다. 아니, 그러려면 나 또한 일 초의 정의란 덫에 걸리지 않습니까?

당신의 뒷모습을 쫓아가 붙잡았습니다. 어깨에 손을 얹자 당신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봅니다. 입 열어 묻습니다. 일 초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무언가 길고 어려운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내 짧고 간결하게 뭉개버립니다-잠들기 직전이 되도록 편안하게 누워 봐요. 그 뒤에 고요히 심박을 세면 그것이 일 초가 되니. 나는 그대로 따라해 보았습니다. 늘 비슷하게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는 당신과 달리 나는 바이옴을 오갈 때마다 미묘하게 고조되거나 침체됩니다. 가장 좋아하는 온습도는 이곳입니다. 적당히 미지근한 기온, 적당히 촉촉한 습도. 마치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듯이 외부와 내부가 합일되며 바람이 나를 관통하여 부드럽게 스쳐지나가는 듯한 동질감. 부드러운 이끼가 간질거리고, 나직한 파도 소리가 잠을 부추깁니다. 이이일초오오오가느으으려지이이입니이이다.

자박, 작은 발소리가 정지에 빠져드는 나를 당겨올립니다. 당신은 다가와 내 곁에 앉더니, 뿔에 걸린 머리칼을 빼내어 정리하고 눈을 가립니다. 자전하는 방주의 지평선이 기웁니다. 이름 모를 항성의 빛줄기가 눈꺼풀을 찌르지 않도록 손을 펼쳐 그늘을 드리워 줍니다. 그때 나의 일 초는 틀림없이 당신보다 빨라지지 않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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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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