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뮤

무제

뮤지컬 광염소나타 JS 단문

보관함 by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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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ㅁㅌㅇ J x ㄱㅈㅊ S
*17년도 글 백업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절로 눈이 떠졌다. 처음 듣는 멜로디였다. 작업을 하다 잠깐 눈을 붙인 게 몇 시였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아는 게 없었다. 소리가 계속 흘러들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숨을 죽였다. 평화로웠다. 이대로 내가 숨 쉬는 것만 들키지 않는다면.

처음 그의 멜로디를 받아 적었던 날은 꽤 어릴 때였다. 그가 기분이 좋다며 휘파람으로 냈던 멜로디였다. 나는 발을 멈추고 그것을 들었다. 계속 해보라며 답지 않게 재촉도 했다.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모르겠다며 더는 들려주지 않았다. 난 그 자리에 선 채로 노트를 꺼내 오선지를 그렸다.

“이게 뭔데?”

내가 뭘 그렸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가 악보를 볼 줄 모른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며 얘기를 했다. 그가 만들었던 멜로디라고.

“연주해주면 안 돼?”

나는 한숨을 쉬면서도 피아노를 찾아 연주해줬다. 그의 곡이었으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침이 마르도록 나를 칭찬했다. 정말 제가 무슨 음악을 만들었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어떻게 기억을 하냐, 어떻게 악보로 옮겼냐 쫑알쫑알 질문들을 했다. 교복을 입고 있던 그때의 나는 어쩌면 좀 우쭐했는지도 모른다. 멍청했다.

"야.”

노트를 던졌다. 피아노에 엎어져 또 다른 멜로디를 만들어대던 그는 냉큼 노트를 주웠다. 나의 눈치를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 굳이 표정을 관리하지 않았다. 내가 숨 쉬는 걸 발견한 대가였다.

“고마워.”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럴 때 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언제부턴가 그의 처세가 되었다.

“다음부턴 혼자 해.”
“어?”
“혼자 해. 악보 그리는 거.”
“야~ 나 너 없이 못하는 거 알잖아.”

이 말을 시작한지도 조금 된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까지 착실하게 노트를 던지고 있는 꼴이 웃기지도 않았다. 그의 곡은 내가 아니면 조금도 이 공간 밖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단 한 개의 음도. 난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스스로를 갉아먹을 만큼.

“나가.”

엄밀히 말하자면 그와 나의 작업실이었지만 기실 그가 작업실을 필요로 하는 일은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건 음악을 뽑아냈다. 그곳을 거의 집으로 쓰고 있는 나와는 달랐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어깨를 늘어뜨리고 나가려던 그가 머뭇거리더니 말을 붙여왔다.

“아니.”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
“바빠.”
“많이 바빠?”

그의 변하지 않는 특기는 질문이었다. 이럴 때마저 줄어들질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몰라.”

그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내 대답이 긍정이란 걸 그가 모를 수는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 그는 신이 나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나를 잠에서 꺼낸 멜로디가 다시 시작됐다. 피아노를 치느라 들썩이는 등은 굳이 쳐다보지 않고도 눈앞에 그릴 수 있었다.

“그거 아냐.”
“어?”
“아까 그렇게 안 쳤잖아.”
“그런가?”

나는 결국 피아노 옆에 다가서서 건반을 눌렀다. 그가 웃는 게 느껴졌다. 난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끈질기게 건반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고 있던 탓에 소리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 진동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의 옷에 파묻혀있었다.

“뭐 먹을래?”
“몰라.”
“술?”

장난스럽게 하는 말에 이를 세우고 싶어 입을 벌리다 다시금 다물었다. 그는 그의 음악과 같았다.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나의 숨을 막았다.

“가까운 데로 가.”
“그래.”

몸을 물리자 일어나는 그가 시야를 채웠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도 같았다. 이대로 움켜쥐면 그가 여기서 멈춰 영원히 머무를 것도 같았다. 나 없이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악보 위 음표처럼.

"이따 저거 연주해주면 안 돼?"
"네 곡이잖아."
"아니지, 우리 곡이지."

그것 또한 견디지 못할 걸 알면서. 숨을 들이켰다. 숨을 뱉었다.

"그래."

나를 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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