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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C

ㅇㄹ님 커뮤 로그 작업물/24.08.26/시간제 빠른 마감

사 학년 수업 시간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보가트는 아마 대부분의 학생에게 공포와 긴장을 주는 것일 테다. 아무리 모습을 우스꽝스레 만들어 무서운 것은 극복할 수 있다! 하는 교훈을 주는 수업이라지만 그 전에 무서워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두려움의 공포에는 각자의 사유가 있지 않겠는가.

 

 

A! 불리는 이름에 A는 옷장 앞으로 선다. 무서워하는 것, 내가 무서워하는 것. A는 벌레는 떠올렸다. 학우들 또한 모두 벌레를 생각했다. 공간의, 교실 속의 모두는 A가 평소 얼마나 벌레를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교실에서나 기숙사에서 조그마한 벌레가 안녕 인사만 하더라도 얼마나 놀랐는지, 혹은 머리에 벌레 붙어 있다고 말하기만 해도 얼마나 큰 소리를 질렀는지. 짓궂은 이들에게 벌레는 A를 놀리기 가장 좋고 편한 방법이었으며, A는 그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쉬이 고칠 줄은 몰랐다. 이번에는 어떤 벌레를 내밀어도 절대 도망가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고 마음을 먹은 다음 교실 문을 지나도 지네 한 마리만 내밀어지면 꺄아아악 미친 듯 소리를 지르며 쌩하니 백 미터 달리기로 도망가 버리니 말이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은 최악 최저, 바닥을 뚫고 너머로 들어간다. 괜히 상상했다. 그렇다면 동시에… 기분 전환을 하자. 보가트가 보여 주는 벌레에게 리디큘러스를 정확하게 성공하길 상상했다. 머릿속엔 거대한 사마귀 한 마리가 우스꽝스러운 꽃이 달린 모자를 쓰고 왈츠 음악에 맞추어 탭댄스를 춘다. 아, 이거면 그렇게 무섭지는 않을지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집어먹은 겁을 가까스로 다시 뱉는다. 그래, 어차피 그렇게 무섭지는 않을 테니까. 옆에 교수님도 있고…. 어차피 보가트일 뿐이다, 어차피 보가트일 뿐이다. 자신을 다독이듯 암시를 반복하며 지면 위에 양발을 올바르게 디뎌 중심을 잡는다.

 

 

준비됐어요.

교수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결연함과 확신을 가득 담아.

 

 

옷장 문이 열리면 보가트가 나온다. 고작 몇 초 A에게 시선을 준 보가트는 금세 검은 형체가 되어… 생각보다 조그맣게 웅크린다. A에게는 충격적인 모든 과정이 눈앞에서 천천히 느리게 보이는 듯했다. 하나, 검은 천의 재질이 보이고. 둘, 사람이 허리를 잔뜩 접어 웅크린 모습에서. 셋… 점점 일어난다. A와 아주 같은 모습을 하고서.

지금의 A와 아주 다르지도 않은 모습이다. 까맣고 파란 머리, 양쪽이 서로 다른 눈동자의 색. 그러니까, 멀리서도 모두 그 형체가 A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을 아주 똑 닮은. 아니? 가까이서 봐도 A의 모든 것을 그대로 베껴간. 저게, 저게 뭐야? 아니, 무엇인지는 알지. 정확하게는… 저게 왜 저기 있어? 모든 게 혼란이다. 저게, 내가 왜 저기 있어. 옷장에서 방금 기어 나온 것은 나인가? 혼돈. 에이, 나를 무서워할 게 어디 있어. 내가 무서워하는 건, 나는 나에 대한…. 몰각沒覺, 이것은 새로운 인지가 될까. 혹시 있던가? 이번에는 의심. 내밀內密 까짓 마음은 어디로 숨어 있었기에 주인인 나조차 채 똑바로 보여 주지 않았던 것인가, 차례대로 원망.

 

그리고 보가트—A는 절망하는 X—A를 표현한다.

A는 상처받아 절망하는 A를 표현한다.

 

(중략)

언제나 사랑과 함께 한 A는 사랑받지 못함에 대해 무지하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지 않았다. 그게 뭐야?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한 경우도 물론 있으리라 머릿속으로는 상상한 적 있지만 역시나 막연하여 이입에 성공한 적은 없었다. 행복하고 건강히 자란 X 가의 공주님은 이해할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

무지⁶. 친애하는, 사랑스러운 A에게. 알지 못하는—미움받는—공포는 생각보다 온전했다. 그의 벌레마저도. 무학無學 하여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없는 게 되는 일은 아니므로. 아아, A. 불쌍한 A. A은 무의식에 행하던 본인의 행동을 마침내 모두 이해했다. 평소에도 미움받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살피고, 말을 골라 고민해서 건네는 모든 행위를. 너는 과하게 조심하는 것 같다?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들어도 고개를 갸웃한 이유를 마침내 이해했다. 그게 전부 A* 덕분이라니 웃기는 꼬락서니가 아닐 수 없겠으나….

 

온전한 공포, 힘없이 툭 접혀버린 A의 오금은 더 이상 몸체를 지지해주지 못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꼴이 된 A의 지팡이는 어느새 허공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녔으니. 주저앉은 A*와 A는 꼭 거울처럼 닮은 자세가 된다.

도움에 대한 물음, 교수님의 차갑지만 따스한 음성에 겨우 든 정신으로 다시 지팡이를 주워 든다. 대답 이전에 가만히 생각한다. 마음 같아서는 저 멀리 지팡이를 던져 버리고만 싶었다. A는 빠르게 교실 안을 둘러본다. 수군대는 학우들의 소리. 아, 이러면. 손에 지팡이를 고쳐 잡는다. 이제 A를 차지하는 건 아마 절망이 아닌 다급함, 절박함. 빠르게 손을 뻗어 앞의 A*를 겨냥한다. 이미 A는 수업의 큰 교훈보다도 다른 것 하나—자신은 타인의 미움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를 배웠으므로. 가르침은 충분했다.

 

리디큘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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