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허망함을 믿던 때가 있다. 죽음이 남기는 것은 오직 삶의 허망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그렇지 않은가. 죽음 이후 대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혹자는 내세가 있으리라 믿지만, 그런 것이 있다면 현세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세를 위한 현세라면 죽음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허망해지는 것 아닌가. 삶이란
“한때는 하루의 시작이 해가 질 무렵이었다는 거 알아요?” “그랬습니까?” “오래 전엔 해가 질 무렵 하루가 시작되고 끝난다고 생각했대요. 지금은 해가 뜰 무렵 하루가 시작되고 끝난다고 생각하는데, 참 신기하지 않나요?” “별 게 다 신기하군요.” “당신은 너무 이성적이에요. 가끔은 이런 것에 놀라며 꺄르르 웃을 필요가 있다고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서로가 경쟁하듯 하늘을 뒤덮던 나무의 푸름은 온데간데없고, 사위가 온통 붉게 물들어 버렸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푸른 하늘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기억하십니까? 우리의 첫 만남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던 햇볕 한 줌조차 들지 않고, 구름만이 어둠을 맴돌던 그때 그 장소를 기억하십니까. 저는 여태 그날을 잊
당신과 제가 만난 날은 봄이었습니다. 아직은 추위에 떠는 가련한 것들이 숨어있던 이른 봄이었지요. 우리의 만남은 꽃잎이 흩날리는 푸른 하늘 아래가 아니었고, 그리 낭만적이지도 못했습니다. 해가 반겨주지도 않았고, 구름만이 어둑히 침묵을 유지했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도로의 불빛에 빛을 머금고 요정인마냥 날아다니던 눈가루들, 그리고 그 속에 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