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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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우기 by B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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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제가 만난 날은 봄이었습니다. 아직은 추위에 떠는 가련한 것들이 숨어있던 이른 봄이었지요.

 

우리의 만남은 꽃잎이 흩날리는 푸른 하늘 아래가 아니었고, 그리 낭만적이지도 못했습니다. 해가 반겨주지도 않았고, 구름만이 어둑히 침묵을 유지했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도로의 불빛에 빛을 머금고 요정인마냥 날아다니던 눈가루들, 그리고 그 속에 자연스레 어우러지던 당신. 그래요, 그날 저는 당신을 마음에 들였고, 겨울에 가깝던 그 날을 봄이라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 애매한 계절을 사랑하게 되었고, 여흥 없이 짓밟던 눈마저도 연민으로 인해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오로지 당신의 존재로 인해서요.

 

당신의 존재를 제가 느끼지 못하게 될 때, 이 모든 것은 다시 마음속에서 떠나 부유할 것입니다. 추위가 채 떠나지 않은 계절과 어둑한 하늘, 추락해 더럽혀지고 마는 눈송이들, 그 모든 것들은 저에게 의미 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어쩌면 협박이라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제가 하려는 말이 크게 다르지도 않고요. 다만 당신의 존재는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저를 이루고 있습니다. 단순히 소중하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만큼이요. 당신의 부재는 제 감각을 마비시킬 것입니다. 그 어떠한 기능도 하지 못하게 되겠지요. 기억마저도 잊혀질 것입니다. 당신과의 기억을 비롯해, 제 존재에 대한 기억까지도, 전부.

 

떠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의 마음에 제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애정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저를 가엾게 여기고, 낮춰 보아도 좋습니다. 그저 떠나지만 말아 주세요. 정녕 저에게서 봄을 앗아가고 싶으시거든, 다른 이들에겐 겨울을 안겨주어 봄이 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그 누구도 봄날의 당신을 알 수 없도록, 봄날의 당신을 저만이 기억하고 온전히 소유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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