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미덥게도
잘리지 않는 케이크
나는 탄생을 하려고 했었다.
태어나면 먼저 얼굴부터 쥐려고 했다. 온 몸을 온 몸으로 끌어안으려 했다. 모두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존재를 긁어 부스럼 내려고 무슨 짓이든 했을 테다. 이를테면 울상을 짓고 목청이 찢어질 듯 울고 패악질을 부리다가 잠이 오면 금세 고요해진다. 그렇게 존재에 손상을 일으켜야 했다.
그런데 나를 축하하는 첫 번째 케이크가 기어코 잘리지 않았단다. 인물 ⓐ 아버지는 작은 원기둥 형의 생크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비장하게 칼을 쥐었다. 무슨 결단이 있었던 것처럼 위에서 아래로 단번에 찍어 내렸다.
꽝!
케이크는 잘리지 않는다.
꽝!
케이크는 잘리지 않는다.
꽝!
헛된 시도다.
케이크가 부서지지 않는다고 해야 더 말이 되나. 너무나 완고한 절대에 가까웠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가 문득 무너져내릴 듯이 위태로운 사물이었다. 그래서 인물 ⓐ 아버지와 인물 ⓑ 어머니는 이 가련한 사물을 둘러싸고 주춤거리다가 그만 옆집 문을 두들겼다.
"저기요, 혹시 칼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냉큼 건네진 칼. 그러나 이 사태가 오로지 도구의 탓인가?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 녹슨 칼이 문제라고 수군거리는 이 부모들 사이에서 나는 한 가지 일침을 가해보고도 싶었다. 칼을 바꾸어도 케이크는 여전히 불가침일 수 밖이라고.
꽝!
케이크는 불가침이다.
꽝!
케이크는 불가침이다.
꽝!
즉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나를 이리 집어넣었다 꺼낼 수 없는 것처럼 이 케이크는 이 케이크의 생크림은 이 케이크의 지반은 이 케이크는 불가침을 비명 지르고 있다고 해야 옳겠다.
민망해서 두고 못 볼 지경이었다. 나는 요람에서 벌떡 일어나 빵을 파내든지 주먹으로 휘두르든지 하고 싶었다. 사물은 이렇게 손상하는 것이고 사람은 이렇게 손상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라. 어쨌거나 탄생을 위해서는 둘 다 동반처럼 파괴되어야 한다.
그런데 부모도 부모이고 나도 나. 나는 도저히 걸어 다니지 못할 생명. 결국 팔을 꼬고 한심스레 천장을 올려다본다. 와르르 부모가 소란을 내는 사이에 인물 ⓒ 이웃이 문을 두들긴다.
"저기요, 혹시 칼 좀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이제는 자기도 요리를 해야 한대서. 아버지는 식칼을 깨끗이 씻어낸다. 생크림조차 묻지 않은 스테인리스강이 그대로 물에 젖는다. 또한 왼손으로 건네면 오른손으로 받는 법이다. 날을 잡은 사람이 손잡이를 잡을 사람에게 건네주어야 한다.
롤백.
이 방에 덩그러니 우리 셋이 남는다. 진척이라면 진척이다. 나는 일들이 못마땅해졌으며 부모는 갖가지 도구를 들고 와 케이크를 손보고 있으니 말이다.
가위는 안 된다. 편협하기 때문이다. 입체를 평면처럼 다루겠다는 건 모욕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부모는 서로를 너무 아낀다. 사랑하기 때문에 안 된다. 어느 어릴 적 색종이를 잔뜩 늘어놓고 오리는 식으로 부부는 서로를 보고 앉아 별이나 토끼 따위를 기어코 접어내면서 소박하게 웃기나 하고 하찮은 얘기나 떠드는 탓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냐고 아버지가 묻는다. 그러면 꼭 사랑 받고 사랑하도록 자랐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러한 토론들이다. 시답잖다, 오래됐다, 구식이고 두 번 이상으론 듣고 싶지 않다고 하는.
서글픈 생각이다. 왜 나는 하필 이 부모에게서 잘리지 않는 케이크를 안고 탄생했는가 이 뜻이다. 울컥 하여 또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새하얀 천장에 새하얀 집에 새하얀 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오래도록 잠을 자고 싶어지고.
꽝!
케이크가 부서질 쏘냐.
안쪽에서 걸어 잠근 문이지 않나.
꽝!
바깥에서 열어젖히는 것은 폭력일 테다.
살해 이상으로 살해일 테고
죄 이상으로 죄일 테다.
꽝!
손해 보는 장사일 테다.
어느 누가 고단해지면서까지 살 것인가.
갑이 아닌 계약서에 서명을 하며
잘못 태어나 절뚝거리기만 하고……
꽝!
수영장 물기처럼 미끄럽다. 화장실 타일처럼 어색하다. 구겨진 종이처럼 못 미덥다. 상처처럼 비릿하고 한숨처럼 무덥다. 머리카락에 눈물이 스며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창피라면 먹는 대로 먹고 의도 없이 추해진다.
왜 자기를 공터에 내놓아버리겠는가. 한번 내놓아지면 끝까지 새어나가리라고 나는 알고 있다. 어느 날엔 공이 되어 채이고 어느 날엔 바람처럼 실종할 미편이라는 것도.
꽝!
그러니 나는 끝까지 팔을 꼰다.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어떤 사달을 일으키고 사라질지 눈을 동그랗게 떠서라도 보아야 한다.
아버지는 팔을 부들거린다. 힘이 다 빠졌기 때문이다. 한낮도 아닌데 땀을 뻘뻘 흘리고야 만다. 손수건에 물을 적신다. 천 쪼가리는 볼품없이 흐느적거리고, 주변으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바닥은, 바닥은 언젠가 물바다가 된다.
무엇이든 어지러이 떠다닌다. 그런데도 진창을 첨벙거리며 계속 허사를 한다.
드릴―말도 안 된다.
숟가락―귀엽기는 하다.
손수건―손수건은 왜일까.
플라스틱 데코―무얼 할 속셈일까.
초―나는 의도를 알 수 없다.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이것저것을 줄줄이 꺼내오는 이 부부를 나는 그냥은 보고 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 아무래도 나는 나. 연약하게 요람에 누워 이따금 탄성을 지르는 것 외에 방도는 없다면. 으아! 말려보고 싶었다. 으아! 신물이 나서 그만두고 싶었다. 으아! 이제 와서 초에 불을 붙이면 어쩌자는 건가. 단번에 나는 울고 부부는 달래고 케이크는 부드럽게 잘리며 환하게 밤이 저물어가지 못했다면 왜 굳이 탄생을 해야 하느냐 나는 괴로워졌다.
으아! 부부의 밝은 낯이 그제야 두려워졌다. 한심스럽게나마 나의 탄생을 축하해주고 말겠다는 거다.
가냘픈 싸구려 초를 들고, 다섯 번이나 불붙이기를 실패하고, 촛농은 케이크에 떨어지고, 단숨에 꺼지지도 않을 일을 미련하게 시작하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극심히 초조해졌다. 결국에 아무런 숙고도 통찰도 없이 문짝을 헐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응, 괜찮아, 괜찮아. 다 됐어.”
됐다는 말인가? 되지 않고 오히려 망가져 버렸단 걸 부부는 알까? 첫 순간에 잘리지 못한 케이크는 끝까지 못 미덥다는 점을. 내가 나로 인해 손상되지 않았다는 건, 타의에 부당하게 잘려나왔단 건…… 나는 버둥거렸다. 당장에 모든 일을 그만둘 것이다. 도저히 삶에 바보들을 채워나갈 수 없었다.
“아, 아기야…… 이제 정말 시작이야, 괜찮아…….”
부부는 정녕 희망에 차 나를 죽이고 있는 거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니 덜컥 울어버리고 싶었다. 고함을 질러 사람들을 쫓아내려고. 고독해지려고. 그러나 촛대는 식칼로도 파괴되지 않던 케이크를 무르게 뚫어버리고 부부는 호들갑을 떤다. 자기들끼리 박수를 치면서 한번 진이 빠진 몸을 힘차게 일으켜 세우거나 한다. 나는 운다. 나는 운다. 한참을 서러워진다. 이제 울면 또 언제 고독에 빠질지 모르고 하여……
“이웃집이죠? 다시 식칼을 빌리려 하는데요.”
왜 이만큼 녹슬어놓고는. 억울하게도 다정한 말소리가 울린다. 이웃집 문을 두 번 두드리는 소리는 사뭇 경쾌하기까지 한다. 철문을 토닥이시는군. 칼이 아니라 희망을 전해 받으려고 간 거군, 아버지는. 그림자에 흔들리는 노오란빛 전등. 어머니의 팔 사이를 비집고 오는 싸늘한 공기. 어머니, 어머니, 나는 마른 눈가를 눈물로 비비적대며 언덕처럼 높은 이마에 대고 묻고 싶었다.
생일이며 난투며 금방 지루해질 거예요. 그러면 그다음엔 무엇을 하죠. 우리는 알고서 태어난 게 맞나요?
답이 없었다. 때문에 영영 잊었다. 그러나 조만간 아버지는 한손에 자랑스럽게 희망을 이고 와 싱글벙글 웃거나 다 같이 엉뚱한 탄성을 내지르거나 해서.
소란도 소란이고 모든 것이 참 아찔한 나머지 얼굴을 쥐고 온 몸을 온 몸으로 감싸 안았다. 이를테면 울상을 짓고 목청이 찢어질 듯 울고 패악질을 부리다가 잠이 오면 금세 고요해지듯이. 그렇게 모조리 저물어간다, 모조리 녹슬어간다. 하여 나도 한때는 탄생誕生을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하잖게 난 것을 쭈글쭈글한 다섯 손가락으로 쥐어보면서 나는 우리는 영영 주름이 지게 생겼다든지 살이 토실하게 오른 다음에도 골이 남겠다든지 하는 생각을 한다.
다만 오늘은 햇빛에 비친 먼지 따위나 만진다. 어린 손톱을 깨물며 나른해진다. 잠잠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 또 꿈을 꾸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하나. 새하얀 천장에 새하얀 집에 새하얀 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결국에 희미해질 그 꿈들이 아득히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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