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허망함을 믿던 때가 있다. 죽음이 남기는 것은 오직 삶의 허망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그렇지 않은가. 죽음 이후 대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혹자는 내세가 있으리라 믿지만, 그런 것이 있다면 현세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세를 위한 현세라면 죽음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허망해지는 것 아닌가. 삶이란
때 끼인 욕조에 헐벗은 육신 진작에 시원치 못한 배수 웅크러들고 뒤엉킨 오물 팔꿈치 굽혀 무릎을 안고 완전히 망가진 수전처럼 떨고, 떨고, 떨고, 떨다가... ........................................ 낭비 않고 ........................................ 모은 죄에 ...............
증기가 반죽과 고기 향을 입었다 기름때 낀 계산기의 버튼으로 장난한다 종업원이 다 무언가? 요리가 익어간들 걸음 없는 식당은 송장이나 같은 것을 굴뚝만 한 냄비 옆구리에 맺힌 것은 물방울 벽지의 양념 얼룩을 다 세 가던 참이다 간판이 다 무언가? 안료가 멋을 낸들 우뚝 솟은 네온만은 못할 것이 분명한데 이제는 어느 둥근 벨도 공명하지 못할 테고 어느 우
당신과 제가 만난 날은 봄이었습니다. 아직은 추위에 떠는 가련한 것들이 숨어있던 이른 봄이었지요. 우리의 만남은 꽃잎이 흩날리는 푸른 하늘 아래가 아니었고, 그리 낭만적이지도 못했습니다. 해가 반겨주지도 않았고, 구름만이 어둑히 침묵을 유지했던 것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도로의 불빛에 빛을 머금고 요정인마냥 날아다니던 눈가루들, 그리고 그 속에 자연
난로에서 장작이 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금은 새벽 3시 정도. 우리집에는 벽난로가 하나 있다. 사실 이웃집은 전부 벽난로가 하나씩 있다. 영국에 처음 왔을때는 요즘 시대에 왜 벽난로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영국은 예전에 살던 집을 고쳐 쓰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집은 시골에 있었다. 그래서 이웃집과의 거리도 꽤 되었고 그나마 있는 것이
나는 탄생을 하려고 했었다. 태어나면 먼저 얼굴부터 쥐려고 했다. 온 몸을 온 몸으로 끌어안으려 했다. 모두 안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존재를 긁어 부스럼 내려고 무슨 짓이든 했을 테다. 이를테면 울상을 짓고 목청이 찢어질 듯 울고 패악질을 부리다가 잠이 오면 금세 고요해진다. 그렇게 존재에 손상을 일으켜야 했다. 그런데 나를 축하하는 첫 번째 케이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