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달2회 챌린지 - 단풍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서로가 경쟁하듯 하늘을 뒤덮던 나무의 푸름은 온데간데없고, 사위가 온통 붉게 물들어 버렸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염원하던 푸른 하늘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기억하십니까? 우리의 첫 만남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던 햇볕 한 줌조차 들지 않고, 구름만이 어둠을 맴돌던 그때 그 장소를 기억하십니까. 저는 여태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꿈속 존재를 만난 듯 희미하게 찾아온 희망을 어찌 있겠습니까? 저에게 주어진 유일한 연민을 어찌 외면하겠습니까?
당신은 저를 저로서 존재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의미 없이 떠도는 잿더미에 불을 붙인 것은 당신이지 않습니까. 저를 되살린 것은 당신이지 않았습니까.
떠나지 말아달라, 그리 염원했습니다. 저를 어떤 존재로 여기시든 그것이 당신이라면 좋으니, 버리지만 말아 달라고 그리 애원했습니다. 저에게서 희망을 앗아가시려거든 차라리 모든 이에게 절망을 내려달라 하였습니다. 당신은 제 유일한 것이니, 마지막 순간까지 저를 기억할 존재는 당신뿐이라고, 그리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결국 있지도 않은 것을 좇아 사라져버리고 말았군요.
언젠가 푸른 하늘 아래에 설 것을 기도하고 기대하며. 저에게 살아남으라 말했습니다. 당신이 보지 못한 것을 대신 보아달라고 하셨지요. 훗날 우리가 만나는 그때, 당신이 볼 수 없던 모든 것을 전해달라고 하셨지요.
당신이 없는 이곳은 그저 차갑고 어두운 곳임을, 어찌 모르셨습니까.
해가 뜨고 지는 동안, 제 영혼 역시 타오르고 꺼지는 것을 반복합니다. 세상에 남은 당신의 마음을 따르고 있으나, 당신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떨어지고 싶음은 어찌하면 좋을까요. 매일 후회합니다, 그날의 당신을 따르지 못한 것을.
붉은 나무를 없애고 밀어낸다 한들, 그대가 돌아오는 것은 아니건만. 푸른 나무 너머를 바란다 한들, 그 광경을 바란 사람은 이미 없건만. 전 대체 무엇을 위해 이 모든 것을 불사르는 것일까요.
언제나 제 소원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저의 빛이 스러지지 않는 것, 그 하나뿐이었습니다. 이젠 어둠만이 존재하니, 저라도 빛이 되어야겠지요. 당신이 원했듯, 당신의 불을 이어받아야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자격이 없다는 것 정도는 언제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유일한 것을 남에게 주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남긴 것은 전부 저의 것이니, 뒤이을 자 역시 저입니다. 당신이 알면 슬퍼할까요? 또는 욕심을 내는 저조차도 품어주려 할까요? 탐해선 안 될 것을 탐해 벌을 받았으나 여전히 반성하고 싶지 않은 걸 보니 저도 참 못된 짐승입니다.
그러나 저 하늘을 덮은 것들에 비하면 괜찮겠지요. 저것들에 비하면 저는 양호한 것이리라 믿습니다. 당신이 말했듯, 저것들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하늘이 드높은 줄 모르고 자신들만이 오롯한 것이라 착각하는, 그야말로 눈이 가려진 치들 아닙니까?
당신의 길을 따르겠습니다. 자신을 하늘이라 일컫는 것들을 땅으로 떨궈 짓밟겠습니다. 붉은 잎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날, 그리하여 이 어둠이 끝나는 날이 오면, 저는 저의 빛을 따라 스러져도 괜찮은 것이겠지요. 당신을 따라도 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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