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백은 쥐어짜듯 조이는 심장을 콱 움켜쥐며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호흡하는 것마저 고통스러울 만큼 폐는 깊숙이 말라 있었고 공기 중에 산소는 턱없이 부족했다. 날숨마저 아까워 헐떡이는 입에선 차마 삼키지 못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메케한 연기에 사고가 흔들렸다. 땀방울이 눈에 들어가 똑바로 앞을 보기 어려웠다. 거추장스럽게 내려온 앞머리 사이로 일그러진
자네, 루프라는 말을 알고 있는가? 루프요?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뜻이지. 1 마지막 날에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서재호도, 양시백도 침묵한 채 내리는 비를 우산도 없이 맞고 있었다. 백석 빌딩 앞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듣고 만 소리에 못 박힌 것처럼 허망한 눈으로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눈을 찔러드는 빗방울에 때때로 시야가 가려지고 바로 옆이
원래도 업무 메모는 잘 해두는 편이었지만 (존경하던 상관이었던 형님이 세월의 흐름을 삼킨 수첩을 늘 지니고 다니며 자주 메모하는 것에 영향을 받았다) 서재호가 본격적으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 건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경찰을 그만두고 기자로 이직했을 때였다. 어느 것이 옥석인지 가릴 수 있는 눈썰미가 길러지지 않은 상태이기도 해서 제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사람의 감정은 언제라고 100으로 유지될 순 없다. 사소한 계기로 10이 될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일로 100을 훌쩍 뛰어넘어 흘러넘칠 수도 있었다. 이 세상, 마음대로 되는 일 하나 없지만! 감정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서재호는 괜히 굴러다니는 깡통을 발로 찼다. 깡! 하는 소리가 골목길에 울렸다. 깡, 깡, 깡... 몇 번을 굴러가던 것은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복도. 오래된 등에서 나오는 잔잔한 불빛만이 긴 복도를 비춰주고 있었다. 재호는 잠시 숨을 고르다 이내 그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한 발자국씩, 천천히,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걸어갔다. 뚜벅이는 구두소리가 조용한 복도에 외롭게 울려퍼졌다. 한 줌의 무게 W.T. HA_RUT_ 언제였을까. 우리가 술잔을 부딪히며
아이는 침대에 앉아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이젠 집보다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곳은 아이를 돌봐주는 한 남자의 집이었다. 은은하게 맡아지는 담배냄새와 오래된 책들의 냄새가 섞인 방을 아이는 꽤 좋아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남자는 아이를 위한 음료수를 사러 집 앞 마트에 갔다.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아이는 무료함
경찰을 그만 두고 기자가 된 뒤로 이토록 완연한 봄을 느낀 적이 또 있었을까. 나 생일이요, 하고 자랑하는 일은 없지만 한 번 알려주고 난 뒤 달력에 적어두기라도 하는지 12시 땡하자마자 예약이라도 해놓은 듯 문자로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생일날 시간 비어있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말에 고맙다고 인사하고 너무 늦게 자지 말라며 답장을 보내
서재호는 삼복을 잘 챙기는 편이 아니었으나 올해는 달랐다. 초복에는 옛 친구 오미정과 함께 들깨삼계탕을 먹었는데, 엊그제 같았던 초복이 지나더니 중복이란다. 양시백이나 권혜연, 홍설희와 함께 몸보신 음식이라도 먹으러 갈까 했는데 다들 시간이 되지 않았다. 삼계탕을 또 먹긴 뭐하고 감자탕 같은 거라도 먹으러 가볼까. 할 참이었다. 집앞에서 가까운 감자탕집에
"오랜만." 서재호가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인사했다. 당연하지만 오미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과거 같이 일하던 시절에도 오미정에겐 기가 죽곤 하는 서재호였는데, 지금의 오미정의 모습은 서슬이 푸르다 못 해 서늘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다고 해서 웃는 얼굴로 무마하거나, 져 주는 듯 넘어갈 수는 없었다. 오미정은 유상일에게 동조해 죄 없는 아이를 죽
성인이 되고, 일자리를 찾고, 거기에 익숙해져 비로소 정착하고, 또 다시 바뀌고. 스물 남짓, 사회로의 첫 걸음과 함께 철이 들었을 즈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평소에 더 잘해드리지 못 한 것이 슬펐지만 산 목숨, 마냥 울기만 할 순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삐걱거리던 몸과 마음을 수습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더없이 생각나는 날이면 종종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