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다음달이면 졸업식이 있는데, 와주실 수 있으세요?" 아버지 손에서 자란 권혜연에게는 친척이 없었다. 정확히는 어머니가 살아있었지만 그는 부녀와 연을 끊고 이뤄놓은 가정이 있었고, 구태여 그를 돌봐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하던 주정재는 문득 중학교 졸업식 때에도 혼자였던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가 권혜
주정재는 쉴 틈이 없었다. 경찰일을 할 때도, 표면적인 업무가 끝나고 나서도 일, 일, 일. 계속 일이었다. 누군가는 저 놈만큼 느긋하고 뻔뻔하게 일하는 놈도 없을 거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만 본인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고, 그럼에도 주정재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오는 날이면 네까짓 놈이 내가 하는 일들을 다 아느냐고 속으로 욕을 퍼부어주는 게 일상이었다.
"젠~장할, 눈 오는 빨간날 크리스마스면 뭐하냐고! 나 혼자인데." "야, 주! 네 목소리 복도 끝까지 다 들린다!" "뭐야 촐싹이 아냐." "얌마, 내가 한 촐싹 하는 건 맞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촐싹이라고 부르면 섭하다고." "내참, 그럼 뭐라고 불러줘?" "네가 성 따서 주, 하고 불리는 것처럼 나도 '소' 나 '소 형' 쯤은 되지?" "됐네요.
남자는 형사와 함께 종종 밥을 먹곤 했다. 매일 먹는 것은 아니었고, 일이 있을 때만이었다. 그마저도 점심 쯤이었고 형사의 경우 본 업무로 곧장 복귀해야 하곤 했어서 배를 채웠으니 술을 마시자! 는 상황은 두 사람 사이에서 거의 없는 일과 같았다. 밤에 '일' 이 떨어지지 않는 한에는. 하지만 백반집에서 배를 채우고 나오는 길에 담배를 물며 나오는 상황은
-나는, 권현석 경감님의...친구란다. 여자아이는 눈물을 그득 담은 얼굴로 남자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하얀 빗살 섞인 눈물은 희게 흐드러져 볼을 타고 방울져 떨어졌다. 남자는 다른 사람들처럼 무어라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 했다. 여자아이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런 위로를 겉치레로도 건넬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빗줄기가 사방에서 쏟아져내렸다. "두 사람, 내게는 각별했어."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정재는 내게 겨눈 총구를 치우지 않았다. "...정말이야." 쓴맛이 배어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정말로 나를, 경감님을, 처리해 버리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소중했다느니, 각별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 진정 그랬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