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석이 죽었다. 박근태 자신의 선택, 자신의 결단이었다. 그 결정 과정에 장희준은 없었다. 말을 보탠 적은 있었지만 유상일처럼 격양시켜 자멸시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도세훈 경사를 죽인 것은 오인 사격이었다. 장희준이 덮고 스스로 묵인해 오인으로도 자신이 죽였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박근태에게 권현석의 죽음이야말로 최초의 살해나 다름없었다. 살의를 내재하고
자박. 복도의 침묵을 깨던 걸음소리가 멎었다. 두 소리가 겹쳐진 걸음소리 중 하나가 멎은 셈이었다. 멈추지 않은 걸음소리가 자박자박자박 중간에서 끝까지 계속되었다. 소리가 멎은 곳에서 걸음이 멈추고 끽 문이 열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중첩된 걸음소리가 그 안으로 스며들듯이 끌려들어갔다. "오랜만이지." "..잘, 지내셨어요?" 안경을 쓴 남자는 옅게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양시백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상한 바였다. "내가 누릴 수 없었던 44살의 시간을 누리게 해 준 것, 내가 다시는 볼 수 없었던 소중한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해 준 것. 그들과 내가 불행하지 않은 서울을 소망해 준 것까지 모두." 짜릿할 만큼 싸늘한 바람이 불어와 체온을 삽시간에 야금야금 앗아가기 시작했다. 바람
"...쪼그리고 뭐하세요?" 집 안으로 들어오니 경감님이 바닥에 무언가를 잔뜩 늘어놓은 채로 끙끙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종이접기. 같이 할래?" 종이를 접어서 어디다가 쓰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린 시절에도 그런 한가로운 취미에 관심을 둘 만큼의 여유가 없었던지라, 솔직한 호기심이 들어 작은 책을 펼쳐두고 종이를 이리접고 저리접는 경감님에게 다가갔다.
빗줄기가 사방에서 쏟아져내렸다. "두 사람, 내게는 각별했어."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정재는 내게 겨눈 총구를 치우지 않았다. "...정말이야." 쓴맛이 배어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면서도 정말로 나를, 경감님을, 처리해 버리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소중했다느니, 각별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된다. 진정 그랬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