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난영님 3천자

시다 by Cid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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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비가 내리고 있다. 썩은 나뭇가지 떠다니는 냇가가 범람한다. 운전석에 올라탄 마이어가 트럭의 시동을 건다. 버지니아와 앨버트는 짐칸에 트렁크를 옮긴다.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캐리어를 샀음에도 시신 한 구를 모두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톱을 든 것은 버지니아였다. 제아무리 소음기를 장착한다 한들 총은 이웃에게 들킬 위험이 있다고 그는 강변했다. 앨버트가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속을 게우는 동안 마이어는 망을 봤다. 짙은 안개가 낀 새벽이었다. 동네 인근은 지나다니는 쥐새끼 한 마리 없이 한산했다.

시체의 벌어진 입에서는 구렁이 같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목의 절단면, 너덜너덜하게 난도질한 복부, 허벅지와 발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버지니아는 평균 남성의 인체는 42리터가 넘는 혈액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그것을 모두 빼내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바닥에 비닐을 깐 마이어의 화실로 시신을 옮겼고, 그곳에서 해체 작업을 마무리했다. 바닥에 너저분하게 튄 붉은 자국이 페인트칠과 섞여 전위적이었다. 그들은 작업을 하다 말고 방 안을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한 한숨을 내쉬었다. 작업을 끝마쳤을 때는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조각낸 시신을 각 트렁크에 주워 담고 트럭에 오르자 차 내부가 피비린내로 진동했다. 장례 행렬에 오른 유족처럼 엄숙한 공기가 팽팽했다.

먼저 응접실에 놓여 있던 수석을 집어 던진 것은 버지니아지만, 방아쇠를 당긴 것은 운전대를 쥔 마이어였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즐겨 쓰던 엽총에 총알을 채우고 탄약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남자의 머리에 총을 난사했다. 버지니아가 ‘그만, 그만!’하고 외칠 때가 되어서야 그는 총질을 멈추었는데, 때마침 강변에서는 때이른 불꽃놀이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모든 광경을 침묵 속에 지켜보던 앨버트는 그것을 어떠한 운명처럼 여겼다. 마이어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 아니라 배후에 있는 어떤 초인적인 힘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종용한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는 교인이 아니었다. 종교를 믿기에 그는 어떠한 맹목적인 구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트럭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는 내내 버지니아는 조수석에 앉아 글을 썼다. 살인이나 복수 같은 그와 밀접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예의 그 지루하고 현학적인 문체가 아닌 아주 단조로운 기법으로 일기를 썼다. 마이어는 그가 알리바이를 공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그의 때아닌 집필 공부를 나무라지 않았다. 일기 속의 그들은 해가 중천에 뜨는 늦은 오후까지 늦잠을 자다가 골프 여행을 떠날 채비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들 중 골프를 칠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가 경찰의 취조에 언제든 박학다식한 지식을 뽐낼 수 있을 정도로 빠삭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골프채 수집을 즐겼다.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들을 구성하는 상당 부분이 가정환경에서 유래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수석과 골프채를 수집하듯 자식을 수집했고, 버지니아는 나이 열아홉이 될 때까지 자신에게 이미 성인이 된 오빠 둘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 했다. 그에게는 숨겨둔 아내가 넷이나 됐다. 버지니아의 ‘어머니’는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나, 버지니아는 자식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버지니아는 침울한 절망 속에서 글쓰기를 지속했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신념은 일종의 강박에 가까웠다. 글을 써야 한다고 그는 밤이면 밤마다 되뇌었다.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니었으므로 그의 글은 대개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 했다. 마이어의 그림이 보여지기 위한 그림이 아닌 것과 일맥상통했다. 반면, 섬세하고 규범적인 앨버트의 음악은 그 나름대로의 명성을 얻었다. 실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앨버트의 음악은 그들의 예술 가운데 가장 대중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단 한 명의 청자를 위해 곡을 작곡했다.

차량이 무화과나무 언덕 근처 물가에 도착할 무렵, 버지니아는 일기를 중단했다. 그때쯤 그들의 몸뚱이는 습기에 촛농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들은 절단된 시신이 담긴 트렁크를 차체에서 꺼내 들었고, 이윽고 마이어가 가장 먼저 ‘머리’가 든 트렁크를 강물에 실려 보냈다. 앨버트가 ‘가슴과 배’, 버지니아가 ‘팔과 다리’를 맡았다. 삼등분된 시체가 강가 밑바닥에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굵어진 빗발에 시야가 온통 흐리멍덩했다. 머뭇거리던 앨버트가 마이어를 흘긋 돌아봤다. 발자국은 어떡하지? 버지니아가 말했다. 오늘부터 매일 아침 여기 등산로를 산책하면 돼. 내일의 발자국으로 오늘의 발자국을 덮는 거야.

황폐한 나뭇가지를 헤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이어는 차량에 달린 거울을 통해 뒷좌석에 앉은 앨버트와 버지니아를 들여다봤다. 그들은 어느새 서로의 어깨에 기대 곯아떨어져 있었다. 마이어는 살면서 많은 비밀을 만들었고, 때로 그것은 자의적이고 때때로 그것은 타의적이었으나, 앨버트와 버지니아에게 공유하지 못 할 비밀은 없었다. 4년 전, ‘아버지’의 지시에 의해 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 명제는 전환점을 맞이했고, 마이어는 베트남과 태국, 필리핀 등지에서 형제자매들에게 말 못 할 먼지 덮인 기억을 쌓았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그는 화가의 본분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언덕 모퉁이를 돌아 집으로 가는 길에 그는 자신을 향해 손짓하는 수많은 병사들의 혼령을 봤다. 뒷짐 지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혼과, 재작년에 숨을 다한 ‘어머니’의 혼과, 머리, 가슴, 팔과 다리가 잘린 백발 남성의 혼. 슬픈 눈빛으로 뒷좌석의 앨버트를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의 혼을 봤다. 그 많은 영혼 무리를 뚫고 그는 도로를 내달렸다. 운전대를 쥔 손이 땀과 빗물에 자꾸만 미끄러질 때마다 뒷좌석의 앨버트와 버지니아를 봤다. 모르핀에 취한 것처럼 습기가 차올랐다. 비는 하염없이 내렸다. 숲의 울음소리가 먼 길을 떠나는 뒷모습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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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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